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1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대체복무제 도입이 현실화됐다. 2019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현역·예비역·보충역 등 ‘병역 종류’를 정한 제5조 1항 전체가 효력을 잃는다. 징집 절차 진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국방부와 국회의 후속 입법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다만 양심적 병역거부 판단 기준과 주체, 복무 기한, 복무 형태 등을 놓고는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국방부는 6월28일 헌재 결정이 나온 직후 공식 입장을 내어 “국방부는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가 없고 병역의무의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검토해왔다”며 “최단 시간에 관련 정책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6월29일 정례브리핑에서는 대체복무제가 입영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현역 복무하는 것보다 어렵고, 양심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면 현역을 안 가기 위한 선택은 상식적으로 없을 정도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병역 회피 수단 악용 안 되려면…여야도 서둘러 병역법 개정 의지를 밝히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관련 법안들이 국회 국방위에 이미 제출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논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평화당은 “적절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위한 병역법 개정 논의”를, 정의당도 “공정한 대체복무제 방안을 도출해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다 죄인이 되는 비극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때 병역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20대 국회에서는 대체복무제 도입과 관련해 3건의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국민적 공감대 부족 등을 이유로 국방위원회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했으나, 복무 기간과 형태 등을 상세히 규정해 정부의 정책 입안 과정에 참고가 될 전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례브리핑에서 ‘의원 입법에 국방부가 이견을 제시하는 방향인지, 정부 입법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지’ 묻는 말에 “두 가지 다 가능할 것 같다. 정부 입법을 추진하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는 제출된 법안과 병합해서 논의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19대 국회에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은 2016년 11월 20대 국회에서도 처음으로 병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 박주민·이철희 의원은 각각 2017년 5월 병역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세 법안 모두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적 확신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은 일정 심사를 거쳐 대체복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입법 취지를 밝히고 있다. 이들 법안은 현역병이나 보충역으로 복무하는 경우에도 대체복무 편입 결정을 받으면 이미 근무한 기간을 차감하고 전환하도록 했다. 다만 복무 기간은 육군 복무 기간인 21개월의 1.5배(박주민·전해철)와 2배(이철희)로 차이가 있다.
국방부는 현역보다 복무 기간이 길고 근무 강도도 높이는 방식으로 대체복무제 악용을 막고, 현역병의 불만을 줄이는 쪽으로 제도를 설계할 방침이다. 우리나라에서 육군 현역병은 21개월, 사회복무요원은 24개월, 공중보건의와 공익법무관 등은 36개월을 복무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국방부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한해 타 사회복무자보다 ‘어려운 분야’에서 ‘현역의 2배 수준 기간’ 동안 ‘합숙 근무’를 하는 대체복무안”을 제시한 바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없도록 복무 난이도와 기간 등을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복무 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하는 것은) 병역 형평성 확보에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의 1.5~2배로 결정되리라 전망한다.
징병제를 택한 59개국 가운데 20여 개국이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는데, 복무 기간 등을 비롯해 현역보다 엄격한 복무 조건을 규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현역병의 1.5~2배 될 듯2016년 12월 국회 국방위원회 박철규 전문위원이 작성한 ‘병역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핀란드는 현역 165일의 2.1배인 347일을 복무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스는 현역 9개월의 두 배에 가까운 17개월, 스위스는 현역 260일보다 1.5배 많은 390일을 복무한다. 프랑스는 2001년 모병제 전환 이전에 대체복무제를 운영했는데, 당시 복무 기간은 현역병의 2배인 20개월이었다. 대만 역시 징병제 폐지 전 현역 16개월보다 4개월 긴 20개월을, 오스트리아도 현역 6개월보다 긴 9개월을 대체복무하도록 한 바 있다. 독일은 징병제 폐지 전 현역과 대체복무의 기간이 9개월로 같았고, 노르웨이도 각각 12개월로 같았다.
국방부는 대체복무 희망자의 종교와 신념을 심사·검증할 수 있는 절차와 기구도 만들 방침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3건 모두 별도 심사기구를 두는 방안을 담고 있는데, 심사 주체와 관련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전해철 의원은 지방병무청에 지방대체복무위원회를 둬 심사하도록 하고, 이의가 있을 때는 국방부 중앙대체복무위원회에서 재심사하도록 하고 있다. 박주민·이철희 의원은 국무총리 소속 대체복무위원회에 심사 권한을 주도록 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러시아는 국방부 소속 위원에서 서면심사를 하고, 병역 기피 의심자는 대면심사한다. 대만은 내무부 소속 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과거 본인은 물론 증인 면담까지 했다. 판정이 어려우면 1년 이내 관찰하기도 했다. 대체복무제를 한 상당수 국가에서는 국방부가 아닌 별도의 기관이 대체복무 심사를 맡는다.
유엔인권위 “징벌적 성격 돼선 안 돼”1998년 유엔인권위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를 도입하되, 징벌적 성격이 아닌 비전투적 성격이어야 하고 공익적이어야 한다”고 결의했다. 독일은 공공복지 분야와 병원 간호보조 등 공인 민간기관 대체복무를 허용했다. 그리스는 우체국과 법원 등 행정기관 위주로 근무하고, 핀란드는 사회복지와 자연보호, 소방 등 분야에서 대체복무를 한다. 아시아 국가 중 대만의 대체복무자들은 사회 치안·사회 서비스·사법 행정·외교·공공 행정·관광 서비스 등 분야에서 복무하는데, 병역거부로 인한 대체복무자는 사회 서비스 분야에 한정돼 복무하도록 했다. 그리스·스위스·핀란드·독일·오스트리아 등 대부분 국가가 출퇴근을 원칙으로 하지만, 대만은 합숙 생활을 원칙으로 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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