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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대통령 탄핵 절차 밟아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원인과 극복 방법에 대해
등록 2016-11-22 22:21 수정 2020-05-03 04:28
은 한국 민주주의 연구를 대표하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만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 국내외 정치 상황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지난호(제1137호)에서는 ‘트럼프 현상’에 대한 의견을 실었고, 이번호에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원인과 이 사태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안수찬 편집장과의 대면 인터뷰는 11월10일 오후 2시간여 동안 진행됐고, 이후 송채경화 기자가 전화통화와 전자우편으로 여러 차례 보강했다. 최장집 교수 인터뷰 전문은 홈페이지(http://h21.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_편집자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친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 위에서 통치해왔다면 법률적 (유죄) 판단이 이뤄지기 전에도 퇴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퇴진할 수 있다. 이제 국회가 통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 청와대가 지금 마비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국가는 작동이 돼야 한다. 그럴 때 대체할 수 있는 제도나 기구는 국회다.

이론적으로도 그렇다. 대통령도 국민이 선출하고 국회를 구성하는 대표인 국회의원도 국민이 선출한다. 둘 다 국민의 대표기구다. 기능이 다를 뿐이다. 하나는 행정과 집행부의 최고수반이고, 국회는 입법부다. 집행부가 마비됐을 때는 국회가 충분히 대행할 수 있다. 국회가 중심이 돼서, 국회의 중심적 행위자는 정당이기 때문에, 각 정당들이 협의 또는 합의해서 내각을 구성하고 집행부를 구성해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일단 청문회부터 열어야 한다 국회가 어떤 구실을 해야 하나.

국회가 할 일은 대통령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이다.

탄핵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탄핵 절차를 밟는 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이 퇴진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헌법 절차를 밟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든 안 하든 국회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단 청문회를 해야 한다. 청문회와 더불어 국회가 조사기구를 만들거나 특검법을 활용해서 독자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청문회는 매우 좋은 제도다. 지금까지 헌정사를 보면, 덜 중요하고 사소한 것도 전부 국회 청문회 대상이 됐다. 이번 문제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관련 당사자를 국회가 소환해서 청문회를 해야 하는데 왜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청문회를 병행해야 한다고 보나.

물론이다. 시민들, 정치인, 정당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많이 가질수록 좋다. 청문회 과정을 통해 소통하고 대안을 발견하고 문제의 소지가 뭔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런 판단의 자료가 될 수 있다.

아울러 국회가 정당 간 합의를 통해 조사기구를 구성해서 독자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검찰은 대통령의 권력기구였고, 그동안의 행태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충분히 얻기 어렵다. 검찰이 대통령의 위법·범법 행위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국회 청문회는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 국회가 독자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검찰 수사 결과와 국회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걸 기초로 탄핵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정치인들 가운데는 대통령 스스로 퇴진 입장을 밝히라고 주장하는데.

대통령 퇴진보다 대통령 탄핵이 더 중요하다. 왜 탄핵이 중요한가. 탄핵은 헌법에 있는 절차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헌법을 제대로 시행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온정주의적 한국 문화에서 적당히 정치적으로 넘어가면 제대로 조사되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좋으니 국회와 정당들이 정식으로 헌법에 있는 탄핵 절차를 제대로 해보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보수적이어서 실제 탄핵 소추의 실효가 없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상관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헌재가 (대통령의) 명백한 범법 행위, 위헌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배치되는 판결을 내린다면 헌법재판소의 도덕성과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지 않겠는가. 이런 문제는 다음 정권에서 지속적으로 대선 이슈가 돼야 하고 그다음 정부까지 지속돼야 한다.

정치권에선 조기 대선 얘기도 나온다.

조사 결과나 탄핵 절차가 종결되는 것과 더불어서 조기 대선이 가능하다. 탄핵돼서 대통령이 궐위가 되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타임 스케줄을 국회가 주관해서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부 형태로의 전환 기회
11월12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11월12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거리와 광장의 힘은 어떻게 보나.

거리와 광장의 에너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보다 더 민의의 소재를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디에 있겠는가? 박근혜·최순실 사건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고, 심층적으로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리·광장의 힘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당과 국회에서 해야 한다.

광장에서의 시민들 요구를 반영해 일정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라고 만든 게 정당이고 국회다. 지금 국회와 정당, 정치인들의 문제는 광장에서 시민들의 대응과 분노 정도에 의존해서 따라가는 데 급급해 보인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미 충분히 의사표현을 했다. 정당 정치인들은 이것을 기초로 논의해서 대안을 만들 수 있다. 그걸 하지 않는 게 문제다. 현재 단계에서 문제는 정당이 굉장히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등 야당 지도자들이 비판받는 것 같다.

동감이다. 야당이 이 문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헌정적 위기가 도래했을 때 정당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더구나 대선이 가까이 온 시기여서 대선 후보라는 주요 정치인들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주요 정치인과 정당이 이 문제에 대해 비전이 있어야 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이에 대한 의견을 별로 볼 수 없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작금의 문제에 대해 대안을 얘기하면서 공론에 부칠 수 있어야 한다. 대선 경쟁 차원에서라도 이것을 선거 공약이나 미래 정부 구성, 정책 내용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은 과거의 대선과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존의 모든 시스템과 국가 운영 원리인 박정희 패러다임이 붕괴된 뒤의 시기, 박근혜 이후 시기에 어떤 정치질서를 만들어야 하는지 비전을 갖지 않고 대선에서 주요 경쟁자가 될 수 있겠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정당, 정치인을 가지고 우리가 무슨 이슈로 대선을 치르겠나. 대선에서 설사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그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 어떻게 보면 지금은 ‘87년 민주화’ 때보다 더 좋은 계기다.

지금이 왜 1987년보다 더 좋은 계기인가.

1987년 민주화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뭔지 정확히 몰랐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고 권위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래서 거리로 뛰어나왔다. 그때 내건 구호가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대통령’이었다. 그것이 민주화가 얻은 최대의 효과이고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결과가 지금 박근혜 정부로 나타났다.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정권 교체도 하고 개혁정부의 실패를 지켜봤고 정당체제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경험하면서 이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 그러니 지금이 87년 민주화 때보다 훨씬 좋은 기회라고 본다. 그런데 제대로 된 정부 형태로의 전환 기회를 갖지 못하면 과거의 사이클을 다시 반복한다. 그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실망, 좌절, 무관심 또는 분노다. ‘정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냉소주의와 실망이 뒤따라온다. 이런 것도 우리가 경험했다. 이렇게 되면 ‘박정희 패러다임’이 다시 다른 형태로 부활할 것이다.

우리에겐 ‘비르투’를 가진 지도자가 없다
11월10일 서울 광화문 인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연구실에서 최 교수(왼쪽)가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11월10일 서울 광화문 인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연구실에서 최 교수(왼쪽)가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이 시기 정치적 리더라면 어떤 방향으로 행동해야 할까.

이번 위기에도 리더들은 광장 시민들의 동향에만 집중하고 있다. 자신이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하는 지도자가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지도자가 빈궁하다. 이런 힘을 조직하고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지도자가 없다. 정당이 먼저 있고 그 속에서 지도자가 나오는 게 보통의 유형이지만 우리 현실이 이러니 그런 좋은 지도자를 바라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미치광이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기 신념이 확실해서 그것이 틀리든 맞든 제쳐두고 언론이, 온 세계가 뭐라든 내 할 일은 내가 한다고 해서 된 거다. 굉장히 희귀한 비르투(virtu·용기, 담대함, 능력)를 가진 정치인의 승리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이런 자질을 가진 지도자가 없고 남의 눈치만 보고 여론만 본다. 언론이 자기 말을 어떻게 보도하는지에만 자꾸 신경 쓴다. 정치인이 전부 그런 일만 하고 있다. 언론에 의해 인도되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려면 언론이 정치하지 뭐하러 정당이 있나. 이것을 넘어서는 정치인이 필요하고 지금은 그런 정치인이 기대되는 시점이라고 본다.

정당 재편 과정에서 진보정당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지금 한국 진보정당의 미래는 어둡다. 진보정당은 민주당과 비슷한 정당으로 병존하는 느낌을 준다. 진보정당의 공간이 생기려면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중도와 좌의 공간이 열려 있지 못한 정당체제다. 이 구조가 변해야 한다.

박정희 패러다임 해체의 중심적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기업군이 국가권력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율적 시장경제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자가 민주적 틀 안에 들어와 노사관계가 민주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박정희 패러다임 해체의 두 조건이라고 본다. 노동자가 자유롭게 움직인다면 노동자 정당이 안 생긴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노동운동도 어떻게 기업과 협력해서 기업 이익을 증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느냐는 태도 변화나 가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온건한 개혁 세력인 민주당의 더 왼쪽에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뭔가가 만들어지는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

‘박근혜·최순실 사태’ 박정희 패러다임의 파탄 한국의 선거에서 사회적 힘이 정당을 통해 발현되는 게 잘 안 보인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당선된 거라고 보나.

박근혜 정부는 1960~70년대 박정희 성장 모델, 더 넓은 의미에서 ‘박정희 패러다임’이 헤게모니를 가졌기 때문에 나타난 정부다. 한국의 정치·사회 시기 구분에는 두 층위가 있다. 먼저 정치적 수준에서 1980년대 민주화라는 역사적·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그다음에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이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을 따라하게 되고 이 경제 운용 원리를 아주 과격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이 지금까지 왔다.

정치적 수준에서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운용 원리, 국가 구조 등은 1960~70년대 박정희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화 이전 산업화 체제는 박정희 패러다임에 의해 만들어졌다. 민주화 이후에는 경제나 국가의 운용 방식이 민주적으로 전환될 법한데 이 전환의 계기를 우리는 갖지 못했다. 민주화만 됐고 사회 운용 원리는 그 (박정희 패러다임의) 연속선상에서 지금까지 지속됐다.

물론 (민주화 이후) 당 대 당 정권 교체를 통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두 정부에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대안이 되는 국가 운영 원리와 경제 원리가 없었다. 박정희 패러다임에 더해 신자유주의 독트린을 접목한 것이 (개혁 정부 시절) 두 정부의 국가 운용과 경제 운용 원리였다.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다시 노골화된 것으로 볼 수 있나.

박근혜 정부는 앞선 정부들에 대한 실망 내지 실패에 근거해 이명박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았고, 여기에 더해 ‘박정희 신화’를 큰 자원으로 삼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나는 박정희 모델이 부활하는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은 그 아버지의 신화를 현재 민주화된 조건에서 재현하려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정치를 했다. 이것이 가져온 파탄이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표출됐다고 본다.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해결책이라고 할까 대응 방식은 이것이 단순히 한 정권의 헌법 위반이라든가 일탈적 통치체제라고 해석하기보다는 기존 1960~70년대로 시작되는, 반세기 이상 산업화에 성공하고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만들었던 박정희 패러다임의 파탄이라고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건 시대 변화에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민주화와 공존하기 어려운 패러다임이다.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제조업 중심 산업화 시대에서 발전되고 고안된 모델은 민주화 시대에 민주적 가치와 규범과 상응하지 않는다. 자유무역과 세계적으로 개방된 시장경제, 유연하고 지식·기술 집약적인 고기술 생산체제, 금융이 중심 역할을 하는 세계화된 산업구조에서 제조업 산업 중심의 경직적·명령적·권위주의적 경제 운영 방식은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국가와 경제를 운영하는 방식이 얼마나 이 시대에 걸맞지 않은가 하는 점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난 것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이다. 이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책임지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2014년 1월13일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열린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1월13일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열린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부정·부패 요소가 더 커 보인다.

부정부패는 부차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그것은 문제 현상의 하나다. 박정희 권위주의 체제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듯, 박정희 패러다임은 모든 국가권력이 대통령으로 통하는 권력의 초집중화와 강력한 국가주의적 가치를 갖는다.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나타났을 때 내가 제일 관심 가진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의 구성과 조직 형태 그리고 운영 원리였다. 미래부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재현된 하나의 압축적인 시스템으로 보였다.

그 구성을 보라. 지식경제, 교육, 과학기술, 방송정보통신 등을 관장하는 여러 중앙부서로부터 파견된 행정관료가 들어와 있다. 몇 차례 법이 바뀌면서 최근엔 청와대 정책수석도 들어왔다. 민간 카운터파트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사용자단체가 들어오고 은행도 들어왔다. 이들로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이라는 운영기구가 구성되고, 이들이 새 부서를 공동 운영하는 것이다.

새 정부의 국가 운영 정책을 주도하는 선도적인 중앙부서가 국가관료와 대기업 중심 사용자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2자간 민관합동 운영주체를 통해 운영된다는 것은, 민주주의국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구조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또는 천황제 파시즘 시기, 유럽의 전간기 독일 또는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하에서나 가능할 수 있었다. 그때도 명목적으로는 국가-대기업-노동 3자 기구였지, 정부관료-대기업 사용자단체 대표들 2자 기구가 아니었다. 정부의 공적 기구는 적어도 명목적으로라도, 기업 대표들이 참여하면 노동자 대표들도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공공연히 계급지배를 하는 결과가 된다.

미래부는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창조경제 시행 기구로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해 센터별로 대기업을 붙여 각 시도군 지방 단위를 형성해서 활동하도록 했다. 새마을운동 내지 새마음운동 사업과 조직 형태를 모델로 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직 형태와 활동 방식은 전경련 부회장 이승철씨가 공개적으로 했던 말이다. 기자들이 이게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새마을운동을 다른 형태로 복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문제되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구조도 이것과 비슷해 보인다. 새마음운동과 아주 비슷한 것 같다. 국민체조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시도에서 따라하도록 하고….

이건 무엇인가. 권위주의 체제에선 국가의 공식 기구가 박정희 체제를 운영하고 이를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주의 국가라 옛날식으로 할 수 없어서 비선 실세라는 최순실이 모든 걸 통괄하는 실질적인 지휘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새마을운동이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에서 재현된 것으로 이해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전은 박정희 대통령의 가치와 정치적 사고 속에 있다. 민주주의나 시민사회에 대한 의식과 이해는 상당히 적거나 없다고 본다. 그러니 문제가 안 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헌법에 의해 투명하게 운영되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선거만 했다고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라 선출된 국가의 수반이 공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는 통치 방식은 전혀 민주주의가 아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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