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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혼란 중심에 선 ‘폴리페서’

교수 출신 안종범·김종·김병준의 권력 지향성 “학자적 자존심 버려… 학교로 돌아오지 마세요”
등록 2016-11-12 05:08 수정 2020-05-03 04:28
1_ 범죄
박근혜 대통령은 11월4일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자신의 죄는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은 정말 아무 죄가 없을까.
‘최순실 게이트’ 논란에서 다시 폴리페서(정치 참여 교수)들에게 이목이 쏠린다. 왼쪽부터 성균관대 교수 출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한양대 교수 출신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국민대 교수 출신 김병준 총리 후보자.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최순실 게이트’ 논란에서 다시 폴리페서(정치 참여 교수)들에게 이목이 쏠린다. 왼쪽부터 성균관대 교수 출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한양대 교수 출신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국민대 교수 출신 김병준 총리 후보자.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다시 폴리페서(Polifessor·정치 참여 교수)들의 전성시대다. 통상 이들의 대목은 선거철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때아닌 대학교수 출신 위정자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한때 대학 강단에서 자신들의 학문적 원칙을 강의하던 이들은 숨길 수 없는 권력 지향성을 표출하며 국정 혼란의 중심에 섰다.

최순실에게 ‘안 선생’ 된 안종범

지난 10월27일 성균관대 퇴계 인문관 건물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공범으로 지목되는 인물이 바로 우리 경제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안종범 교수다. 재학생으로서 학교와 우리 경제대학의 명예가 떨어지는 상황을 좌시하고 있을 수 없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재정세제위원회 위원장과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된 뒤부터는 권력의 의중을 읽고 따르는 일에 매진했다.

그는 최순실을 도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발 벗고 나섰다. 대기업들을 압박해 800억원대 출연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곳곳에 흔적을 드러냈다. 안 전 수석은 의혹이 불거지는 동안 “전혀 최순실씨를 모른다. 대기업에 투자하라고 한 적이 없다. 순수한 자발적 모금이었다”(10월21일 국회 운영위원회)며 발뺌했다. 거짓말이었다.

“안 전 수석이 모금에 관여하고, 확인 전화까지 했다”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과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의 증언이 잇따랐다. 다급해진 그는 대포폰까지 만들어 관련 인사들을 회유하려 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결국 안 전 수석은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한 11월2일 당일 긴급 체포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 아래 경제·정책조정 수석을 잇달아 맡은 ‘왕수석’의 몰락이었다.

안 전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과 10년 넘는 인연을 맺어왔다. 2007년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도왔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엔 승승장구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용복지분과 위원을 지냈고, 19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2년여의 의정활동 뒤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박 대통령에게 최순실의 전횡을 경고하기는커녕 최순실에게 ‘안 선생’으로 불리며 심부름꾼을 자처했다. 18년 동안 유지한 교수직은 성균관대가 11월3일 그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끝났다.

‘정유라 지키기’ 앞장선 김종

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핵심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도 교수 출신이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스포츠마케팅센터장과 예술체육대학장을 지냈다. 그 역시 체육계에서 충실히 최순실의 이익을 챙겨왔다. 2014년 4월 최씨의 딸 정유라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특혜 의혹이 제기되자 즉시 반박 기자회견을 열어 “중·고등학교부에서는 독보적인 선수의 자질이 있다”고 방어했다. 그는 이후 승마계를 표적으로 대대적인 스포츠계 4대악 척결을 주도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마 비리 척결을 독려하며 정유라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몰두했다.

김 전 차관은 K스포츠재단 설립 허가 배후에도 개입한 의혹을 사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 1월 K스포츠재단 설립 신청 하루 만에 허가를 내줬다. 그는 최순실이 소유한 더블루K 사업 추진 회의에도 안종범 전 수석 등과 함께 참석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심지어 인사 청탁 전자우편을 최순실 측근에게 보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2013년 취임해 장관이 두 차례 바뀌는 3년 동안 차관직을 지켜온 그는 결국 지난 10월30일 물러났고, 검찰이 출국 금지한 상태다. 한양대 페이스북 커뮤니티에는 “학교의 명예를 망쳐놨다. 후배, 제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한 구석이 있으면 학교로 돌아오지 말아주세요”라는 학생들의 글이 올랐다. 이들 외에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으로 꼽히는 차은택씨의 대학원 스승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차씨의 외삼촌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각각 홍익대와 숙명여대 교수 출신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느닷없이 총리로 지명된 김병준 총리 후보자 역시 국민대 교수 출신이다. 국민대 교수협의회 회장과 행정대학원장을 지냈다. 교수 시절 지방자치 분권을 주장했던 그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정책자문 단장을 맡았고 이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다. 2006년 7월 논문 표절이 불거져 취임 13일 만에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미 교수로서는 치명적인 생채기가 났음에도 신뢰를 잃은 박근혜 대통령이 내민 총리직을 덥석 받은 셈이다.

김 후보자는 “국정이 붕괴되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기 힘들었다. 헌법에 규정된 총리 권한을 100% 행사하는 책임총리의 구실을 하겠다”고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지만 앞길은 불투명하다. 야 3당은 총리 후보자 인준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국민대 학생들도 “김 후보자가 면피용 임명에 부응했다”며 “국민대학교 강단에서 수많은 행정학도를 양성했던 김병준 교수에게도 정의와 민주주의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결단을 촉구한다”고 비판했다.

폴리페서는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고 백남기씨의 주치의 백선하 서울대 의대 교수다. 백 교수는 ‘외인사’로 기재해야 마땅한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기재하라고 지시했다. 서울대병원·서울대의대 합동 조사특별위원회가 “백 교수가 사망진단서 지침을 숙지하지 못한 것”이라며 반박했지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백 교수가 병사 기재의 근거로 들었던 합병증도 그가 집도한 백남기씨 머리 수술 부위의 슈퍼박테리아 감염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백 교수의 병사 진단은 비록 무산됐지만 부검 논란의 근거가 됐다. 그 역시 학생들로부터 “학교를 떠나라”는 지탄에 직면했다.

총리직 덥석 받은 김병준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11월3일 과의 통화에서 “학자 출신이라면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말해온 자신들의 원칙과 중심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안종범 전 수석은 최순실씨와 기업들의 돈을 걷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했고, 김병준 후보자는 누가 봐도 줄타기 행보를 하고 있다. 이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이들은 자신이 말해온 원칙이 현실에서 충돌하면 학자적 자존심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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