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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과 삼성 독일에서 수상한 관계

“삼성 계열사 사장이 최순실 호텔에 왔었다” 독일 교민 전언

‘최씨 모녀’ 추적했던 송호진 기자의 독일 취재 후기
등록 2016-11-08 22:41 수정 2020-05-03 04:28
2_ 의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파생된 여러 의혹들은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까지 하면서 밀어붙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최순실에게 ‘줄대기’ 하면서 은밀한 관계를 맺어온 삼성 등 대기업….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걸까.
최순실씨가 소유한 독일 현지 회사 ‘비덱스포츠’와 ‘더블루K’ 등의 주소지로 돼 있는 독일 슈미텐 비덱타우누스호텔. 최씨를 돕는 직원들이 사무실 겸 숙소로 사용한 곳이다. 삼성 계열사 사장이 이곳에 찾아와 최씨를 만났다고 한 교민은 전했다.

최순실씨가 소유한 독일 현지 회사 ‘비덱스포츠’와 ‘더블루K’ 등의 주소지로 돼 있는 독일 슈미텐 비덱타우누스호텔. 최씨를 돕는 직원들이 사무실 겸 숙소로 사용한 곳이다. 삼성 계열사 사장이 이곳에 찾아와 최씨를 만났다고 한 교민은 전했다.

나의 추적은 실패했다. 국내 언론 가운데 가장 먼저 독일에서 ‘최씨 모녀’(최순실·정유라)를 찾아나섰지만, 최씨 인터뷰는 다른 언론사 몫이었다.

나의 추적은 그들이 남긴 흔적을 하나씩 되밟으며 뒤따라가는 식이었다. 딸 정씨가 훈련하던 승마장에 최씨 모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들이 대한승마협회에 독일 거주지라고 보고한 곳으로 찾아갔으나 최씨 모녀가 호텔을 사서 거처를 옮긴 뒤였다.

딸 정씨가 자신에게 독일 훈련장을 제공했다고 승마협회에 보고한 사람의 주소지도 허위였다. 그런 사람은 살고 있지도 않았다. 정씨가 최근까지 잠시 거주한 집에 갔지만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답답했던 나는 독일 들판에 서 있는 말들 앞에서 혼자 중얼거린 적도 있다.

“너희는 알까? 지금 그들은 어디 있니?”

최씨는 국내로 들어오기 직전인 10월27일 인터뷰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는 최씨와 인터뷰한 지역명을 ‘헤센’이라고 기사에 적었다. 헤센은 독일의 16개 주 가운데 하나다. 한국 지역명으로 바꿔 말하면, 최씨와 인터뷰한 지역을 성남, 수원이 아니라 ‘경기도’라고 포괄적으로 표기한 것과 같다. 최씨의 요청이 있었는지 몰라도 최씨 소재지가 압축되지 않도록 가려준 것이다.

대기업들 ‘최순실 줄대기’ 했을까

그간 언론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최씨의 독일 행적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극소수의 사람과 조직 가운데 눈에 띄는 기업이 등장한다. 바로 삼성이다. 2주 남짓의 독일 취재가 끝날 무렵, 최씨의 독일 현지 법인 사정을 잘 아는 이가 기자에게 최씨와 삼성의 관계를 이렇게 얘기했다.

“최씨의 독일 법인 계좌로 삼성의 돈이 들어왔다고 한다. 매달 80만유로(약 10억원)에 가까운 돈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께 최씨의 독일 회사에 합류한 어떤 직원은 이미 삼성에서 돈이 들어오는 것을 안 뒤 ‘왜 삼성에서 이런 돈을 보내지?’라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매달 (풍족한) 돈이 들어와 최씨 회사에서 돈을 마구 썼다고 들었다.”

나는 최씨 회사의 영수증 등을 처리한 전직 직원과 접촉했으나, 그는 “내가 아는 건 제한적이다”라며 언급을 피했다. 다만 그는 기자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은 “10%가 있다”고 말했다.

그간 삼성은 최씨와 청와대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것 외에 최씨와의 다른 연관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최씨 회사 사정을 아는 사람의 증언처럼, 삼성이 적어도 지난해 11월 이전부터 최씨 회사에 따로 돈을 보낼 만큼 둘의 관계는 밀착돼 있었다. 국정을 뒤에서 흔든 최씨에게 삼성이 깊숙이 줄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검찰도 이런 단서를 잡고 수사하고 있다.

최씨 회사와 삼성의 관련성은 최씨가 독일 법인 설립을 준비하던 지난해 5~6월께부터 이미 극소수 교민들에게 알려졌다. 한 교민은 “당시 최씨의 의뢰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최씨의 독일 회사 법인장 면접에 응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그 회사가 ‘말과 관련된 사업을 하며 삼성이 후원한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최씨 회사에서 일한 직원에게 들었다는 다른 교민도 흥미로운 얘기를 전했다.

“삼성 계열사 사장이 지난해 말에 최씨의 독일 사무소로 활용된 호텔에서 최씨를 만났다고 한다. 그는 최씨 회사의 다른 직원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최씨가 주인인 독일 현지 회사 ‘비덱스포츠’와 ‘더블루K’는 서류상 모두 같은 주소지를 갖고 있다. 그곳이 삼성 계열사 사장이 최씨를 만났다는 비덱타우누스호텔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쪽 마을 슈미텐에 있는 이 호텔은 최씨의 독일 회사 존재가 밝혀지면서 최근에 실체가 드러났다. 호텔이지만 손님을 받지 않고 최씨를 돕는 직원들이 사무실 겸 숙소로 활용한 곳이다. 호텔 1층은 외부 손님 응대가 가능하도록 카페 인테리어를 다시 했다. 결국 삼성은 최씨가 독일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들의 사무실인 이 호텔의 존재를 지난해부터 인지했다는 얘기다.

독일의 최순실 조력자들, 행방 묘연
최씨 모녀가 최근까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 슈미텐 마을의 단독주택에서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학사 관련 자료, 비행기표 등이 발견됐다(위쪽).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비블리스에 있는 예거호프 승마장(아래쪽). 지난 5월까지 정유라씨가 거주하며 승마 훈련을 받던 곳이다.

최씨 모녀가 최근까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일 슈미텐 마을의 단독주택에서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학사 관련 자료, 비행기표 등이 발견됐다(위쪽).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비블리스에 있는 예거호프 승마장(아래쪽). 지난 5월까지 정유라씨가 거주하며 승마 훈련을 받던 곳이다.

최씨의 딸을 위해 10억원대 돈을 들여 국제대회 우승마 ‘비타나V’를 구입해준 삼성이 명마를 관리할 스페인 조련사까지 동반 지원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최씨의 회사 사정을 아는 또 다른 교민은 “독일 현지에서 채용된 최씨 회사의 일부 직원들은 생각보다 급여가 적어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정씨의 말을 관리하는 조련사를 스페인에서 데려왔는데 이 사람의 급여는 아주 많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비타나V’는 정씨를 위해 삼성이 구입하기 전까지 스페인 선수가 탔던 말이다.

최씨는 삼성 외에 독일에 나온 다른 국내 기업 독일 법인장들의 은밀한 지원도 받고 있었다. 독일 한인 조직의 한 단체장은 “최씨가 독일 회사 설립 과정에서 몇몇 독일 주재 한국 회사 법인장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독일에서 최씨의 움직임을 일반 교민들은 거의 알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독일 주재 한국 회사 법인장들 사이에서도 ‘권력자’ ‘실세’로 통했다. 그 독일 주재 법인장 가운데 한 명이 현재 KEB하나은행으로 통합된 옛 외환은행에서 독일 법인장을 지낸 ㅇ씨다. 그는 지난해 독일에서 최씨의 딸 정씨에게 특혜성 대출을 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ㅇ씨는 최씨 회사에서 일할 실무 직원과 최씨 회사의 법인장 후보자들을 주선하는 일까지 했다고 교민들은 전했다. ㅇ씨는 독일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던 40대 남성에게 최씨 회사를 소개해주며 이런 취지의 얘기도 했다고 한다.

“(최씨는) 권력자다. (최씨) 회사에서 눈에 잘 띄면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다. (최씨가) 끝까지 책임져줄 것이다.”

최씨를 도운 덕분인지 정작 탄탄대로를 걸은 사람은 ㅇ씨였다. 그는 부지점장급인 독일 법인장을 마치고 올해 1월 은행들 사이에서 “목이 좋다”는 서울 삼성타운의 지점장으로 승진해 귀국했다. 그리고 이 은행의 정기인사가 끝났는데도 다시 한 달 만에 임원급으로 재승진했다. 는 최근 최씨가 딸 정씨와 함께 프랑크푸르트공항을 이용할 때마다 편의를 봐준 대한항공 독일 주재원이 승진 코스인 국내 지점으로 발령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또 다른 사례를 보도했다.

최씨의 독일 생활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데는 최씨의 전남편 정윤회씨와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교민 2세 윤아무개씨 같은 이들의 조력이 보태졌기에 가능했을 거라는 게 교민 사회 내부의 전언이다. 윤씨의 부친은 재독한인총연합회장을 지냈고, 그의 동생의 아내가 국내 특정 종교 고위 인사의 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최씨의 전남편 정윤회씨가 독일에 수차례 올 때 통역 등을 도와주며 가깝게 지낸 인연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참여해 독일 복지정책 등에 대한 번역 일도 거들었다고 한다. 사기 혐의로 한국에서 재판받은 전력도 있다. 현재 교민 사회에선 최씨 독일 회사 설립 과정과 자금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알 만한 인물로, 최씨의 모든 법률 대리를 맡은 교민 2세 박승관 변호사와 윤씨 등을 꼽고 있다. 하지만 윤씨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다.

추적 시작되자 ‘장기 잠적’ 준비

독일 취재가 마무리되면서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최씨 모녀’는 나의 추적 속도보다 더 빠르게 먼 곳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딸 정씨가 최근까지 잠깐 거주한 독일 슈미텐 단독주택의 이웃 주민은 나에게 “지난 9월27일 그 집에 가구와 서류 상자 등이 쌓였고 이사업체 트럭이 짐을 싣고 갔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나와 만난 그 주민은 “이사업체 트럭은 덴마크 이사업체였다. 차량번호도 덴마크 번호다”면서 자신이 기록한 이사업체 이름과 차량번호를 알려줬다.

9월27일은 가 ‘최순실’이란 이름을 세상에 끌어올리며 본격적으로 보도를 시작한 직후다. 장기 잠적을 위한 비축인 듯 지난 9월께 최씨 일행이 한인마트에서 약 1300유로(약 160만원) 상당의 식품을 한꺼번에 산 것도 목격됐다. 국내 동태를 살피며 기민하게 대처한 것이다.

최씨 일행이 사라진 집을 둘러보고 나올 때 이 집에 우편물을 전달했던 독일 우체국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이 동네에 퍼진 소문을 들은 듯했다. 그는 나에게 “여기 사람들(최씨)이 돈을 얼마나 탈취한 거냐?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격려와 달리 나의 추적은 실패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지금 이 일은 거액의 돈을 탈취한 것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란 사실을 차마 말해주지 못하고 돌아섰다.

프랑크푸르트(독일)=글·사진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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