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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줄게 창조경제 다오?

‘청와대의 CJ그룹 부회장 사퇴 종용 의혹’으로 본 박근혜 정부 아래 대기업의 생존 방식
등록 2016-11-08 17:27 수정 2020-05-03 04:28
2_ 의혹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파생된 여러 의혹들은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까지 하면서 밀어붙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최순실에게 ‘줄대기’ 하면서 은밀한 관계를 맺어온 삼성 등 대기업….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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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이 ‘팔선녀’ 가운데 한 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청와대가 직접 이미경 전 CJ그룹 부회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MBN 보도가 나온 이후 한 CJ 임직원이 내놓은 자조다. CJ그룹은 박근혜 정부 내내 ‘회장 리스크로 인한 창조경제 코드 경영’ 논란에 휩싸여왔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직접 부회장을 찍어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청와대로부터 경영권까지 간섭당한’ 첫 번째 기업이 됐다.

11월3일 MBN 보도에 등장한 녹취록을 보면 청와대 핵심 수석은 “VIP의 뜻”임을 강조하며 이미경 부회장의 사퇴가 “늦어지면 난리가 난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시점은 2013년 말이다. 과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후 CJ는 어떤 행보를 걸어왔을까.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정황이 드러난 지금 ‘이미경 전 부회장 사퇴 종용’을 확인하는 일은 박근혜 정부하에서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해왔는지 유추해볼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2013년 5월, 박근혜 정부는 취임 뒤 첫 재벌기업 수사로 CJ그룹을 택한다. 전격적이었다. 2013년 5월2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CJ그룹 이재현 오너 일가가 비자금을 조성하고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탈세한 혐의로 CJ그룹 본사 및 경영연구소 등을 압수수색한다.

박근혜 정부의 첫 재벌 수사

전격적이긴 했지만 사건의 시점이 좀 미묘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정국이 한참 뜨거울 때였다. 신문 사회면을 매일 장식한 뉴스는 ‘대기업 횡포’ ‘갑을 논란’이었다. 정권의 도덕성이 시작과 함께 바닥으로 추락해버렸고, ‘경제민주화’를 말하던 대통령이 재벌기업에 뭔가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게시된 CJ그룹 수사는 과거 사건을 현재진행형으로 끌어온 일이었다. 당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빌미는 5년 전이던 2008년, 이재현 회장의 자금 관리 담당 직원 이아무개씨의 살인청부 사건 재판 과정에서 상당 부분 전모가 밝혀진 사건이었다. CJ는 당시 추징금 1700억원을 낸 바 있다.

캐비닛에 묻어둔 사건을 검찰이 다시 들고나온 것에 대해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한 기자는 “5년 전 사건을 다시 들추는 상황을 두고 CJ 수뇌부는 박근혜 정부와 관계를 트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인식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로 진행됐다. 이례적으로 검찰뿐만 아니라 ‘조·중·동’을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이 ‘단독보도’ 경쟁을 벌이며 CJ그룹을 몰아붙였다. 검찰 쪽이 브리핑에서 ‘ , YTN의 특정 보도는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수사 중간에 정정까지 할 정도였다.

CJ그룹은 가장 큰 미디어 기업 가운데 하나다. 2013년은 종합편성채널(종편) 출범 직후다. ‘조·중·동·매’의 적자가 눈덩이 같았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 종편들은 상위 사업자 CJ가 배분해주는 ‘송출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송출 수수료뿐만 아니라 광고료를 두고 CJ와 다투고, 채널 배정에서도 CJ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에서 CJ 비자금 사건은 보도 기능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조·중·동은 순번을 정한 것처럼 CJ를 조리돌렸다. 특히 가 열심이었는데 이를 두고는 ‘삼성과 CJ 사이에 있었던 상속 분쟁’의 여파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았다. 고 이맹희 명예회장이 ‘역린’으로 작용해 삼성이 검찰 수사를 끌어내고, 가 바람을 잡았다는 말이 언론계 안팎에 나돌았다.

갑자기 창조경제 전도사로 나선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수사받는 기간에 CJ는 갑자기 ’창조경제 전도사’로 나선다. 당시 CJ수뇌부는 박근혜 정부와 면을 트지 못해 오너가 고초를 겪는다고 판단했다. 신문광고 갈무리

이재현 회장이 수사받는 기간에 CJ는 갑자기 ’창조경제 전도사’로 나선다. 당시 CJ수뇌부는 박근혜 정부와 면을 트지 못해 오너가 고초를 겪는다고 판단했다. 신문광고 갈무리

5월부터 7월까지 이어진 수사 국면에서 CJ는 상당히 이례적인 신문광고를 게재한다. 2013년 6월14일치 10대 주요 일간지에 CJ제일제당 명의로 ‘더 살맛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백설이 대한민국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전면광고가 게재됐다. 광고는 새로 시작하는 ‘CJ 리턴십 프로그램’ 홍보였다. 2년 이상 경력 단절 여성들이 생활문화기업 CJ에 재입사하는 ‘Re-Start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것이었다.

CJ제일제당의 광고 게재 보름여 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경력 단절 여성을 거론하며 ‘사회적 편견만 걷어내면 시간제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CJ 광고는 대통령 발언에 대한 첫 화답이었다.

그 무렵 CJ 경영에서 이례적인 일은 이뿐만 아니었다. CJ E&M의 인기 프로그램 가 6월22일부터 3주간 ‘프로그램 재정비’를 이유로 급작스런 휴식에 들어갔다. 생방송 일정을 잡아두었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중단되자 방송가 안팎에서는 “회장 기소를 앞두고 정치 풍자 논란이 있던 프로그램을 알아서 중단하며 몸 낮추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 무렵 CJ는 본격적인 ‘창조경제’ 홍보 전도사로 나섰다. CJ E&M 소유 전 채널에서 “대한민국의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스테이션 아이디(Station ID, 자사 이미지 홍보 영상)가 방송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다.
홍보 영상 첫 회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 은지원씨가 등장했다. 이후 홍보 영상은 CJ 계열 CGV 극장으로까지 확대돼 여전히 CJ 계열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당시 CJ 홍보팀 관계자는 “소나기를 피해가자는 것은 맞다”며 “힘의 관계가 뻔한데 기업 처지에선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재현 회장 퇴장 뒤 이미경 부회장 겨냥한 까닭은
최고 권력과 면을 트기 위한 CJ의 노력(!)에도 2013년 7월 이재현 회장은 기소됐고 그룹 경영에서 퇴장한다. 신속하게 재벌 오너를 처리한 검찰에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다. 이후 종편들은 정부 지원 속에 CJ로부터 원하는 것을 따냈다. 이재현 회장 자리는 어쩔 수 없이 누나 이미경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이미경 부회장은 19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절에 CJ엔터테인먼트 상무를 맡으며 영화계에 등장해 줄곧 문화계의 ‘막후 권력’으로 불린 인물이다. 한때 문화계 안팎에서는 “미키 리(이미경의 영어 이름)의 파티 초대장을 받아야 문화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차은택이 ‘문화계 대통령’으로 불리지만 그에 앞서 “미키 리 라인을 타면 자다가도 CF가 떨어진다”는 말이 횡행했다. 그때 차은택은 일개 CF 감독에 불과했다.
이미경 부회장의 영향력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그 무렵 언론계 안팎에는 “청와대가 이미경 부회장을 불편해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간다. 당시 정부의 차관급 방송통신 관계자는 “영화판이 좌편향된 게 CJ그룹 때문이고, 영화판을 키운 이들이 이미경 부회장과 그의 키드들 아니냐는 인식이 정부 내에 있었다”고 말했다. “(2012), (2013) 같은 영화가 반정부적이란 얘기를 관료들이 해서 답답했다”는 증언이다.
특히 는 노무현 대통령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관객들의 평가 속에 문재인 대선 후보가 관람 뒤 펑펑 울어 화제가 됐다. ‘지상파 방송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을 맞았다’는 인식이 지상파 방송 장악의 시발점이었음을 상기해보면 ‘CJ 때문에 영화계가 좌편향된다’는 인식이 누구를 향했을지 뻔하다. 이에 대해 CJ 홍보팀 관계자는 “알지도 못하고 얘기도 못한다”고 답했다. 알아도 지금은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2013년부터 직접적인 퇴진 압박이 있었지만 이미경 부회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4년 초 결정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미경 부회장은 2014년 1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때 ‘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이란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당연히 ‘원톱 주인공’ 대우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한국의 밤’ 행사에서 그만 박근혜 대통령이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나는 일이 벌어졌다. 이 행사에는 이미경 부회장과 가수 싸이가 참석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건배사를 싸이가 맡았는데 이 장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프레임 아웃된 것이다.
행사가 끝나고 “대통령보다 이미경 부회장이 더 돋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대해 CJ 관계자는 “다보스 포럼이 이미경 부회장 사퇴의 결정타였다”고 했다. 청와대의 사퇴 압박에 이유를 물으며 버티던 이 부회장이었지만, 이날 행사에서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단 얘기다.

박근혜 밀어내고 주인공 된 이미경
보복은 정확하고 꼼꼼했다. 다보스 포럼에서 돌아와 20여 일 만에 열린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2014년 2월17일)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CJ를 겨냥하는 발언을 한다. 창조경제 2년차 업무 추진 계획을 보고받은 박 대통령은 뜬금없이 “방송시장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방송 채널을 늘리는 등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며 “방송시장 독과점 구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하라”고 지시한다.
당시 방송시장에서 ‘수직계열화’를 논할 수 있는 대기업은 CJ그룹뿐이었다. 업무보고 이후 이미경 부회장은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놓기 시작했다. 그러곤 얼마 되지 않아 이미경 부회장 측근으로 알려진 노희영 CJ그룹 고문이 검찰 수사를 받고 물러났다.
이미경 부회장 퇴진 뒤 2014년 7월부터 CJ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눈에 띄는 전환을 시작한다. (2014년 7월)에서 시작된 이른바 ‘국뽕’(과도한 애국주의) 계열 영화들이 (2014년 12월)을 거쳐 (2016년 7월)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차은택과 ‘밀월’이 시작된다.
CJ는 차은택이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과 K-컬처밸리 사업의 민간 파트너사를 맡는다. CJ는 두 사업 모두 정부가 직접 제안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CJ 관계자는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어느 기업이 청와대가 제안하는 사업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차은택을 곧 청와대로 받아들였단 설명이다.
CJ 쪽은 “‘K팝’이나 ‘한류’는 CJ의 핵심 추진 사업과 연관성이 높아 해볼 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나 마나 한 얘기다. 바로 사업 연관성을 고리로 최순실·차은택 같은 이들이 설친 것이다. 박근혜 정권 내내 CJ는 청와대에 끌려다녔다. 오너는 재판에 끌려다니고, 청와대의 겁박에 휘둘렸다. 앞에선 ‘창조경제’를 응원하고 뒤에선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를 기획했다. 결국 회장님이 풀려나고 기업을 갈취하려던 권력의 민낯이 드러났으니 된 것일까.
삼성이 최순실과 정유라에게 수백억원대 자금을 제공한 것에 대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최순실을 통해 청와대를 관리한 뇌물”이라고 촌평했다. CJ의 경우는 어떨까. 그 많은 광고와 영화는 “창조경제를 통해 청와대를 관리한 뇌물”은 아니었을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생각보다 적다는 질문에 CJ 관계자는 “다른 일을 많이 하지 않았느냐”고 푸념했다. 사악한 권력이 기업을 부조리하게 만든다. 권력은 여전히 시장이 아닌 청와대에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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