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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죄와 벌’

최순실·안종범 죄 물으려면 박근혜 대통령 ‘공범’ 퍼즐 불가피

“검찰, 최씨에게 ‘제3자 뇌물죄’ 적용하고 기업들 부정 청탁 밝혀내야”
등록 2016-11-08 16:54 수정 2020-05-03 04:28
1_ 범죄
박근혜 대통령은 11월4일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자신의 죄는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은 정말 아무 죄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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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수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수사가 본격 진행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범죄 혐의를 벗어날 가능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씨와 직접 연락하지 않았다. (재단 모금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이다”라는 취지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 역시 안 전 수석과는 연락한 적이 없고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통수에 빠진 대통령

이들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800억원에 가까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 과정은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세부 사항을 말하고 박 대통령이 이 내용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해서 이뤄진 일이 된다.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최씨와 안 전 수석이 공범이 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특히 검찰이 최씨를 구속하며 적용한 범죄 혐의가 공무원이 자신의 직권을 과도하게 이용해 타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직권남용죄)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을 퍼즐 속에 넣지 않고서는 최씨에게 죄를 묻기 힘들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조항이다. 이 죄로 민간인을 처벌하려면 공무원과 공범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안 전 수석과 최씨가 모르는 사이였고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라는 중간 고리가 빠지면, 최씨는 안 전 수석과 공범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노력한 것이 된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때려 기절시키고 그 장면을 목격하지도 못한 C가 우연히 지나가다 B의 지갑을 훔쳤을 때, A와 C는 각각의 범죄를 저지른 거지 공범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검찰이 최씨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려면 박 대통령이 중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수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이 두 재단 모금에 깊이 관련됐다는 정황도 계속 나오고 있다. 는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2015년 10월께 ‘두 재단 출연금 규모를 기존 총 600억원 규모에서 1천억원으로 늘리고 출연 기업도 30대 그룹으로 넓히라’는 취지로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고 11월4일 보도했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모금이 불법이라면 박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 역시 11월4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다”며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박 대통령 수사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수사 가능 여부는 더 이상 문제가 안 된다. 남은 것은 어디까지 수사하고 어떤 혐의를 물을 것이냐다. 이 대목에서 검찰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최순실 등에 가벼운 범죄 혐의만 적용

검찰이 뇌물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최씨에게 직권남용과 사기미수, 안 전 수석에게 직권남용과 강요미수 혐의만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검찰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기업 등에 압력을 넣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자금 출연을 하도록 한 부분과 공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최씨가 실소유주인 ‘더블루K’와 강제로 에이전트 계약을 맺게 한 점과 관련해, 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또 최씨에게는 더블루K가 업무 수행 능력이 없으면서도 K스포츠재단에서 총 7억원을 연구용역 명목으로 타내려다 실패한 것과 관련해 사기미수 혐의가 있다고 봤다. 안 전 수석에게는 차은택씨 측근인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포스코그룹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를 인수한 업체 쪽에 지분을 넘기라고 강요한 뒤 무산된 과정에 연루됐다고 보고 강요미수 혐의를 추가했다.

직권남용은 최대 형량이 5년인데다 사기미수의 경우 실제 금전적 이득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에서 무거운 처벌을 내리기 힘들다. 강요미수 행위도 실제 회사 강탈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높은 형량을 기대하기 어렵다. 1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10년형 이상이 가능한 뇌물죄와 비교하면 턱없이 가벼운 범죄 혐의들만 적용한 것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는 “불법 영득 의사가 없어 뇌물죄 적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영득 의사’란 ‘다른 사람의 재물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거나 지배할 가능성을 가지는 일’을 의미한다. 보통 뇌물죄에서 영득 의사가 인정되지 않는 것은 뇌물인지 모르고 금품을 받았다가 나중에 돌려주는 경우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실제 기업의 돈이 전달된 이상 영득 의사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3자 뇌물죄의 경우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재물을 제공하도록 하면 성립된다. 재단이 돈을 반환할 의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돈이 재단에 들어갔는데 영득 의사가 없다고 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또 “뇌물죄 성립에 필요한 부정 청탁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면 몰라도 영득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뇌물죄 적용이 어렵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만 기업들이 재단에 돈을 출연하면서 어떤 부정 청탁을 했는지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 부분을 확인하려면 대통령 조사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대통령 수사 의지 있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영득 의사 문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기업에서 뇌물을 받아 여당 대선 자금을 모은 혐의로 기소된 안무혁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재판에서도 쟁점이 됐다. 안 전 안기부장은 “뇌물을 수수한다는 것은 영득의 의사로 수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뇌물이 자신들에게 귀속된다고 하는 영득의 의사가 없었고 오히려 전액 대선 자금을 대선운동본부에 보내준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을 뿐이므로 뇌물수수의 고의가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1996년 12월 “영득의 의사라 함은 자신이 직접 소비할 의사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므로 금원의 제공자와 수령자 사이에서 일단 수령자의 것으로 하기로 의사가 합치되어 금원이 교부된 경우에는 수령자의 영득 의사를 부인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돈을 주고받는 것이 합의된 상태라면 영득 의사가 있었다고 본다는 말이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검찰 내부에서도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기업들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돈을 줬다고 진술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 역시 뇌물을 제공한 죄를 받기 때문이다. 현재 단계에서는 검찰이 안 전 수석의 강요로 돈을 냈다는 기업 쪽의 진술만 얻어냈기 때문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기업이 수십억원의 돈을 아무 이유 없이 재단에 냈을 가능성은 적다. 수사가 더 진행되고 부정 청탁을 한 부분이 확인된다면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그는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유죄가 나오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고 최씨 등에게 막대한 벌금을 부과할 수도 있지만, 직권남용죄의 경우는 그럴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수사팀이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고 직권남용죄만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뇌물죄 적용에 걸림돌은 있다. 법원은 직접 공무원에게 금품을 주는 뇌물죄와 달리 제3자에게 이익을 취하게 하는 제3자 뇌물죄의 경우 ‘부정 청탁’이 있었는지 더 엄격하게 본다. 한 서울 지역 법원의 부장판사는 “대상자에게 직접 금품을 주는 뇌물죄의 경우 막연한 대가성만 있다고 봐도 유죄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자 뇌물죄의 경우 부정 청탁이 더 구체적으로 입증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검찰 수사나 세무조사 무마, 세금 감면이나 국가 사업 참여 등의 대가로 뇌물을 줬다는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범죄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것과 수사 의지가 없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검찰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모금 과정에서 이같은 부정 청탁이 없었다고 보고 뇌물죄 적용을 미리 배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뇌물죄를 밝히기 위해 수사하는 것과 직권남용죄를 묻기 위해 수사하는 것은 그 강도와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재단 모금 의혹 수사는 ‘첫 단추’

더구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모금 과정에서 부정 청탁 가능성을 암시하는 물증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는 11월2일 K스포츠재단의 2월26일치 회의록을 보도했다. 이 회의록을 보면 K스포츠재단 관계자가 ‘5대 거점 체육 인재 육성 사업’의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자, 이중근 부영 회장이 “최선을 다해서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만 현재 저희가 다소 부당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부분을 도와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세무조사 무마는 부정 청탁으로 볼 수 있다. 이 자리에는 안종범 전 수석도 참여했다. 최씨가 나중에 회의 결과를 듣고 ‘조건을 붙이면 놔두라’고 지시해 실제 지원은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회의록을 보면 기업들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을 지원한 이유가 단순한 ‘선의’ 때문이 아니란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검찰 수사를 받은 롯데그룹이나 최재원 부회장의 특별사면이 걸려 있던 SK그룹, 이재현 회장의 재판을 앞뒀던 CJ그룹 등은 청와대의 의지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좌지우지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그룹들이 두 재단에 적게는 13억원, 많게는 111억원을 낸 과정도 면밀히 수사해야 하는 이유다.

두 재단의 모금 과정 조사는 박 대통령과 관련한 수사의 첫 단추일 뿐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11월3일 밤 11시께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긴급 체포했다. 혐의는 공무상 비밀누설이다. 최씨에게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비롯해 여러 청와대 내부 문서들이 흘러 들어간 경위를 파악하는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서도 빠져나오기 힘들다. 자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연설문 유출 의혹 등과 관련해 10월25일 기자회견에서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최씨에게)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 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다”고 밝혔다. 연설문 등이 최씨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자신이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을 번복해 자신에게 범죄 혐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기 때문에 청와대 자료 유출이 범죄행위로 인정될 경우 박 대통령은 퇴임 뒤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씨에게 전달된 청와대 자료가 어떤 성격을 가지냐에 따라 박 대통령은 외교상 기밀누설, 공무상 비밀누설, 군사기밀보호법과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모두 받을 수 있다.

대통령 범죄 추가 폭로 가능성도

이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된다면 박 대통령으로서는 다행이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 권력의 구심력이 극도로 약해진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 관련한 추가 폭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청와대에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는 보도가 대표적 사례다.

종합편성채널 MBN은 11월3일 청와대 수석이 CJ그룹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내용이 담긴 전화 녹취를 공개했다. 2013년 말께 이뤄진 이 통화 내용을 보면 당시 청와대 수석은 “너무 늦으면 진짜 저희가 난리가 납니다. 지금도 늦었을지도 모릅니다”며 이 부회장의 조속한 퇴진을 요구했다. CJ그룹 쪽이 “VIP(박 대통령) 말씀을 저한테 전하신 건가요?”라고 묻자 해당 청와대 수석은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한다. “VIP 뜻은 확실한 거예요?”라는 질문에도 청와대 수석은 “아유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하며 “그래서 좀 빨리 가시는 게 좋겠다. 수사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라고 말한다. 이 부회장이 물러나지 않으면 CJ그룹이 수사받을 수 있다는 협박이다.

청와대 수석의 말대로 이 과정에 박 대통령이 개입했다면, 박 대통령은 또다시 강요죄나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 유례없는 국정 농단 사건이 불러올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 한가운데에 박 대통령이 ‘피의자’로 서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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