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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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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경험

<한겨레21> 독자들이 보내온 ‘젠더 폭력’ ‘일상의 공포’ 경험… 술 취한 남자가 엉덩이 만져도 ‘내가 잘못했나’ 자책
등록 2016-06-01 14:59 수정 2020-05-02 04:28
어깨를 겯자, 연대다. 그리고 떠들썩하게 기세를 올려 소리를 지르자, ‘아우성’이다. 여럿이 어깨를 겯고 지르는 소리는 차별과 폭력, 혐오에 맞설 힘이 있다(제1113호 ‘만리재에서’ 참조). (go21@hani.co.kr)은 독자들이 보내온 ‘젠더 폭력’ 사례, 그 아우성을 모아 익명으로 지면에 싣는다. _편집자

ㄱ씨  내 엉덩이 만진 건 그놈인데

지금 25살이고, 취업준비생이다. 기억하기 싫어도, 동영상을 재생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초여름이던 어느 날 밤 10시30분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작은 골목도 아니었다. 한쪽에 술을 파는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반대쪽에는 교회와 놀이터가 있는 길이었다.

엄마가 사준 캐릭터 반팔 티셔츠와 꽃무늬 치마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다지 짧지도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았다. 갑자기 술집에서 나온 듯, 취한 것처럼 보이는 양복 차림의 아저씨가 다가왔다. 일행이던 다른 아저씨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가까이 와서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내 엉덩이를 쳤다.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112에 신고했다. “술 취한 아저씨가 엉덩이를 쳤다”고 했더니, 경찰이 “바로 가겠다”고 했다. ‘그 인간’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땐 겁도 나지 않았다. 분노에 차올라서 쫓아갔다. ‘그 인간’은 건물이 밀집된 곳으로 숨었다. 눈이 돌아가서 1층 가게들을 다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근처 술집에 있던 남자들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어두운 곳까지는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몇 분 뒤, 경찰이 왔다. 하지만 이미 엉덩이를 친 ‘그 인간’과 일행은 모두 어두운 건물들 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경찰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는 걸 사양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분노가 끓었다.

더 웃긴 건 이런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너무 짧은 옷을 입었나’ ‘치마바지의 꽃무늬가 자극적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물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글을 봤는데, ‘그땐 자기들이 남자니까 저러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여성인 나조차 그런 인식이 주입돼 내면화됐던 거였다. 범죄를 저지른 건 내 엉덩이를 만진 그놈인데, 자책은 피해자인 내가 하고 있었다.


보고, 겪고, 들은 성추행 사례를 전부 쓰려면 끝도 없다. 여자한테 성추행은 보편적 경험인 것이다.

대체 왜? 여기엔 남성은 원래 성욕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강간당하면 여성 너희들이 손해니까 알아서 조심해’라는 사고가 깔려 있다. 그 길은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 사건 이후 한 번도 그 길을 이용하지 못했다. 길에서 술 취한 듯한 남자를 보면 아예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갈 때는 우산이나 휴대전화를 꺼내서 무기처럼 흔들면서 다녔다. ‘당신이 날 공격했을 때 난 당신을 후려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줘야 나를 만지지 않을 테니까. 칼을 지니고 다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운이 나빠서 이런 악몽 같은 경험을 했다고 애써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느 날, 취업 준비 스터디의 동료가 “오는 길에 성추행을 당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지하철에서 “어떤 아저씨가 자기 뒤로 몸을 너무 바싹 붙여서 놀랐다”고. 갑자기 성추행을 겪었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내 얘기를 비롯해 버스에서 무릎에 짐까지 올려놓고 잠들었는데 옆자리 아저씨가 짐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허벅지를 만졌다는 언니…. 스터디에 여성만 4명이었는데, 모두 성추행 경험이 있었다. 여자한테 성추행은 보편적 경험인 것이다.

보고, 겪고, 들은 성추행 사례를 전부 쓰려면 끝도 없다. 중학생 때 학원 엘리베이터에서 성기를 꺼내 자위하던 남자, 고등학생 때 집 근처 초등학교 앞에서 자위하던 남자 등을 직접 봐야 했다. 길거리에서 “허리만 더 가늘면 죽이겠는데”라던 아저씨, 같은 학원 남자애들은 주위에 여자애들이 있는데도 ‘후장’이니 ‘섹스’니 ‘하루에 자위를 세 번씩 한다’ 같은 더러운 얘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최근에도 “대학원 술자리에서 교수님이 엉덩이를 만졌다”며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던 언니, 회사(언론사) 술자리에서 선배가 허벅지를 툭툭 친다며 분해하던 친구도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기자님, 여자분이신가요? 이런 경험 겪어본 적 한 번도 없으세요? 혹시 남자분이시라면 놀라실 수도 있겠네요. 제가 겪은 이런 경험들을 아빠나 남동생을 포함한 어떤 남자에게 얘기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제보하는 거예요. 남자들도 읽어보시라고. 보시고 좀 알아달라고.

ㄴ씨   나도 공중화장실이 두렵다

나도 공중화장실이 두렵다. 인적이 드문 어느 골목의 공중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홀로 갇혔던 적이 있다. 당시 화장실에 있는데 누군가 밖에서 거세게 문을 두드렸다. 이내 문고리를 잡고, 힘차게 문을 흔들었다. 문고리를 흔들고, 돌리고를 반복했다. 문고리가 뜯겨나가고 이내 문이 열려버릴 것 같았다. 무서웠다. 그 순간 나는 증발하고 싶었다. 문밖에 누가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인기척을 줄이고, 화장실 안에 아무도 없는 척을 했다.


폭력의 개연성이 높은 공간에서 사는 여성의 일상은 어떤 것인지 말하고 싶다.

잠시 뒤, 바깥은 잠잠해졌다. 익명의 그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듯이, 그가 갔다는 확신도 없었다. 좁은 화장실 안에서 수많은 생각을 하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휴대전화를 들고 나오지 않은 나를 원망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밖에서 술 마시고 있을 친구들도 생각했다. 그때 골목 저편에서 여성 행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때가 아니면 절대로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을 휙 열어젖히며 골목 밖으로 뛰쳐나왔다. 안도했다. 살아남았다. 친구들은 “누군가 길을 가다가 화장실이 많이 급했나보다”며 한바탕 웃었다.

내 경험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문밖에 있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가 여성이었는지, 남성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여성이 얼마나 매일같이 이런 종류의 공포에 시달리는지 말하고 싶다. 폭력의 개연성이 높은 공간에서 사는 여성의 일상은 어떤 것인지 말하고 싶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추격자>의 촬영지인 서울 성북동 골목(위). 성폭행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 <한공주>(아래)는 여성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며 ‘2차 가해’를 멈추지 않는 사회 모습을 그렸다. 씨네21 서지형, 한겨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추격자>의 촬영지인 서울 성북동 골목(위). 성폭행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 <한공주>(아래)는 여성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며 ‘2차 가해’를 멈추지 않는 사회 모습을 그렸다. 씨네21 서지형, 한겨레

ㄷ씨   ‘아빠사자’ 택시만 탄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을 때, 난 일종의 성인식을 치른 듯했다. 스무 살 대학생이 되고 난 직후였다. 그건 가히 ‘자유의 기쁨’이라 할 만했다. 특히 밤이 늦어도 자전거로 거리를 누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사색하며 혼자 걷는 게 좋았다. 하지만 한밤 인적 드문 길에 들어서면 생각은 흩어지고, 몸은 긴장했다. 동행이 있거나 내 차가 있지 않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늦은 시각 산책·야경·밤공기·달빛 같은 건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무서움을 이겨내고 그냥 걸으면 안 될까’ 하는 맘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뚜렷한 이유가 있다. 이전에 서울시청 근처에서 일을 마치고 잠시 산책한 적이 있다. 밤 11시 즈음이었다. 차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한적한 길이었다. 낮과는 다른 정취가 느껴져 좋았다.

순간, 한 남자가 반복해서 보였다. 앞서 스쳐지나갔던 남자가 잠시 뒤 앞쪽 벤치에 앉아 있었다. 또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그 남자가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눈이 몇 번 마주쳤고, 그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낌새가 이상했다. 모퉁이를 홱 돌아 왔던 길을 지켜봤다. 그 남자가 모퉁이에 다시 등장하는 순간, 내 산책길은 도망길이 됐다. 달아나야 했다. 그가 누군지, 왜 근처를 서성이는지 따질 겨를은 없었다.

나만의 두려움은 아니다. 대학 시절 학내 기자로 활동할 때, 막차가 끊기면 동아리 운영비로 택시비를 지급받았다. 새벽 강변북로를 달리며 ‘이 도시의 피로를 나도 이해한다’는 기분에 빠지곤 했다. 감상을 깨던 건 엄마의 연락이었다. “어디니? 마중 갈까?” “네, 10분 정도면 도착해요.” 이 말은 무심히 근로 중인 택시 아저씨를 겨냥한 발언이다. 엄마가 극성스런 사람이라고 여기지도 못했던 건, 잊을 만하면 벌어지던 여성 납치 살인사건과 택시 괴담 때문이었다.

여자친구들끼린 “잘려서 비닐봉지에 담기기 싫으면 일찍일찍 들어가라”는 농담을 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하면 번호판이 ‘아/바/사/자’로 시작하는 것만 타라. ‘아빠사자’로 기억하면 쉽다”고도 했다. 나도 ‘아빠사자’가 모는 택시에서조차 큰 목소리로 엄마와 통화하며 집에 가곤 했다. 자전거를 갖는다는 건, 적어도 동네에선 이런 공포로부터 조금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드디어 밤공기와 풀벌레 소리를 헤아릴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아프리카에는 학교에 갈 때마다 전속력 달리기를 하는 여자아이가 있다고 한다. 여아를 납치하는 인신매매범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란다. 저 먼 나라의 아이가 나는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여성이 아직 온전히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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