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석 대 123석.
절묘한 결과다. 4·13 제20대 총선을 통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힘은 균형을 이뤘다. 선거 이튿날 새누리당이 공천 파동으로 탈당했던 무소속 당선자(7명)를 복당시키겠다고 밝혀 제1당으로 다시 올라설 가능성도 있지만, 야권 성향 무소속(4석)과 정의당(6석)을 고려하면 보수·진보 세력의 지형은 다시 팽팽해진다. 제1당과 제2당이 예산과 법안 처리 때마다 38석을 얻은 국민의당의 안철수 공동대표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야당으로선 내년 정권 교체를 위한 야권 재편 논의에 안 대표를 끌어들여야 하는 숙제까지 하나 더 있다. 모든 면에서 정국의 ‘키맨’이 된 안 대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font size="4"><font color="#008ABD">합리적 진보냐 개혁적 보수냐</font></font>5월30일 제20대 국회의 출발과 함께 안철수 대표는 적극적인 캐스팅보터(결정 투표자) 역할로 ‘새판 짜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는 선거운동 내내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교섭단체가 되면 모든 것이 바뀌고 엄청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며 ‘3당 체제의 정치 혁명’을 앞세워 중도층과 무당파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거대 양당을 자극해 혁신 경쟁을 이끌어내고 연정과 협치의 문화도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것이다.
오만한 여당과 무능한 야당을 싸잡아 비판해온 안 대표는 국면과 사안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독주 저지’와 ‘발목 잡는 야당 심판’을 번갈아 외치면서 여야를 오갈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양 날개로 새로운 민생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광범위한 창당 이념만 봐도 국민의당에는 연대의 제한이 없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50%" align="right"><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ffffff"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fffff"><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font size="4"><i><font color="#991900">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양 날개로 새로운 민생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광범위한 창당 이념만 봐도 국민의당에는 연대의 제한이 없다.</font></i></font>
</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안 대표는 4월14일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정부에)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협업할 것은 협업하겠다. 철저하게 국민의 눈높이에서 모든 현안을 바라보겠다”고 밝혔다. 야권에서 분화된 제3당이지만 전략적으로 새누리당의 손도 잡겠다는 뜻이다. 새누리당 지지층을 공략해 국민의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동시에 1차 대권 경쟁 상대인 더민주의 힘을 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민의당은 창당 초기인 지난 2월부터 종종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왔다. 안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 대부분은 더민주가 ‘재벌특혜법’이라고 반대한 박근혜 정부의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과 더민주가 ‘대북 제재용’이라 우려하던 북한인권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총공세로 고립된 더민주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여당 이탈자냐 호남 민심이냐 </font></font>국민의당은 중도층과 일부 보수층의 거부감이 강했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테러방지법 처리 문제에 대해선 정부·여당을 공격했지만 “야당이 정쟁으로 문제를 푸는 것도 좋은 방식은 아니다”라며 온전히 더민주 편에 서지는 않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교육대학원)의 분석은 이렇다. “안 대표와 더민주에서 친노 대척점에 있다가 탈당한 의원 모두 그간 이념적으로 중도 우클릭 성향을 보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당은 경제나 안보에서 우클릭할 가능성이 있다. (대권 전략 차원에서 봐도) 안 대표가 대선 전까지 첨예한 현안이 있을 때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는 게 유리하다.”
당장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을 막아야 하는 새누리당도 적극 구애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에서 당선된 한 의원은 “말이 안 통하는 친노가 있는 더민주가 과반 의석을 독식하는 것보다 대화가 가능한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쥔 게 새누리당에는 불행 중 다행”이라며 “(6~7월)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 도전자들이 국민의당과의 ‘정책적 연대’ 공약이라도 내걸어 안 대표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보아 국민의당의 최대 주주가 된 호남 의원들로선 새누리당과의 전략적 제휴가 달가울 리 없다. 안 대표가 ‘합리적 보수’를 앞세워 남북관계 문제처럼 민감한 현안을 주도하려다가 자칫 호남 정서를 건드린다면, 소속 의원 38명 가운데 다수인 23명의 호남 의원들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호남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경험이 있는 안 대표도 이런 부작용을 모를 리 없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하던 2014년 3월 안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에 전달한 정강·정책 초안에서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이 누락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호남 민심이 들끓자 안 대표는 광주로 달려가 고개를 숙여야 했다.
반면 더민주와 ‘연대’할 경우, 국민의당이 새로운 지지 세력으로 확보한 새누리당 이탈자와 중도층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안 대표의 딜레마다. 중도·합리적 보수 세력을 키우려는 김성식·박선숙·이상돈·이태규 등 수도권 지역·비례대표 측근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서복경 서강대 연구교수의 분석이다. “호남이 국민의당에 압도적인 표를 몰아줬지만 더민주를 벌주기 위한 ‘조건적 지지’에 지나지 않는다. 안 대표가 중간에서 계속 간을 보면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 동시에 안 대표는 여당 이탈자에게도 신경 써야 해서 포지셔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야권 통합이냐 마이웨이냐</font></font>안 대표를 기다리는 또 다른 시험대는 야권 통합 요구에 대한 대응이다. 2017년 12월 대선이 다가올수록 보수층의 총결집에 대비해 여야 간 ‘1 대 1 경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야권통합론’에 다시 불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 정당 기준으로 야권(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이 얻은 총정당득표율은 59.51%로 여권(새누리당+기독자유당)이 얻은 36.13%보다 23%포인트가량 높다. 여권(새누리당+자유선진당+국민생각)이 46.76%, 야권(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창조한국당)이 47.18%로 초박빙이었던 4년 전 총선에 견줘 다소 야권에 유리해진 지형이긴 하다.
‘맏형론’을 앞세운 더민주의 재통합 요구에 안 대표는 일단 ‘마이웨이’로 응수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총선 과정에서 천정배 공동대표와 김한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거센 통합 압박에도 안 대표는 “죽어도 광야에서 죽겠다”며 ‘연대불가론’을 고수했을 정도로 ‘독자 정당화’ 의지를 강하게 보여왔다. 2011년 9월 이후 ‘서울시장 후보 양보→대선 후보 양보→창당 준비→합당→탈당→창당’의 오랜 방황 끝에 ‘안철수표 새 정치’를 구현할 기회를 얻은 안 대표가 다시 호랑이굴로 들어갈 명분과 실익도 당장은 적은 상황이다.
그러나 안 대표가 다가오는 대선을 이번 총선처럼 3자 구도로 치르는 정치적 모험을 감행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결정적 변수는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가 유지되느냐다.
국민의당은 총선 정당득표율에서 새누리당의 33.5%에 이어 26.74%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지속적인 국민의당의 선전으로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30%대에 묶인다면 안 대표에게는 ‘3자 구도는 분열보다는 확장’이라는 논리로 대권 레이스를 단독으로 완주할 힘이 생긴다.
이는 2012년 대권 양보와 민주당과의 합당에 실망해 한때 등을 돌렸던 김성식·박선숙·이태규 등 합리적 보수 성향의 측근들과 더민주에 거부감을 느끼는 새누리당 이탈자·중도지지층들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다. 다만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으로 통합을 바라는 호남 민심이 설득되느냐가 관건이다.
지지율이 고공행진해도 ‘대선 직전 후보 단일화’ 카드를 쓸 수는 있다. 호남 세력과 수도권·중도층 세력을 그나마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지만 안 대표의 결단이 필요한 경우의 수다. 호남 지역 석권으로 야권 정계 개편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데다 독자적 정당 기반도 마련해 자신감을 얻은 안 대표가 후보 단일화 경선에 참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있다.
문제는 국민의당의 지지율이 비실댈 때다. 호남 민심에 민감한 박지원·천정배 의원 등 ‘통합파’ 호남 의원들의 거센 압력을 견뎌야 한다. 당장 박지원 의원은 당선 소감에서 “야권 통합과 정권 교체를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고 별렀다. 8월 이전에 치러지는 전당대회 직전에 지지율이 출렁댄다면 당권을 가지려는 호남 세력이 ‘야권 통합·연대론’을 고리로 안 대표를 몰아세울 가능성이 높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문제 해결의 정치’ 실현해야</font></font>전문가들은 안 대표의 정치적 미래가 캐스팅보터 역할의 성과에 달려 있다고 본다. 가장 좋은 ‘원내 전략’이 가장 좋은 ‘대권 전략’이 될 것이란 뜻이다. “국민의당이 국회에서 정체성도 없이 어정쩡하게 캐스팅보터 역할만 한다면 안 대표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국회 운영에서 작은 변화라도 보여준다면 그의 위상은 달라질 것이다. 이로 인해 지지율이 높아지면 야권 재통합과 후보 연대 논의에서도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이렇게 전망했다.
안 대표는 “38석의 원내 교섭단체인 우리 국민의당은 단순한 캐스팅보트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정치를 주도하는 국회 운영의 중심축이 돼야 한다”(4월15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고 성공을 자신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 증세, 노동5법, 국회선진화법 개정, 개헌 등 주요 현안은 안 대표가 제대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을 정도로 하나같이 풀기 어려운 문제다. 그의 판단력과 정치력에 주요 법안의 운명과 제3당의 운명, 그리고 대권 주자 안철수의 운명까지 달려 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font color="#C21A1A">▶ 바로가기</font>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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