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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없애라?

[아쉽다] 대법원,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 판결…국민에겐 달지만 법리적으로 씁쓸
등록 2015-12-24 05:38 수정 2020-05-02 19:28

2011년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는 증권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았다. 유 대표는 변호인으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ㅇ 변호사를 선임했다. ㅇ 변호사는 법원장 출신으로 당시 법복을 벗은 지 얼마 안 되었다.
유 대표는 ㅇ 변호사에게 성공보수를 걸었다. 자신이 보석, 무죄 또는 집행유예 등으로 석방되면 성공보수로 10억원을 주기로 했다. ㅇ 변호사는 유 대표를 석방시키기 위해 적극 뛰었다. ㅇ 변호사는 ‘유회원 대표를 구속하라’고 주장했던 장화식 전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가 유 대표를 위해 탄원서를 써주자, 유 대표가 집행유예로 풀려날 경우 4억원을 준다는 합의금 지급각서까지 써주기도 했다. 변호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합의금 지급각서를 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 법률가는 “거액의 성공보수를 받기 위해 ㅇ 변호사가 무리수를 둔 사건”이라고 했다.(제1073호 표지이야기 ‘검은 거래’ 참조)
“성공보수는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위반”
앞으로는 이처럼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를 약정하는 것은 무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 7월23일 허아무개씨가 조아무개 변호사를 상대로 “성공보수 1억원이 지나치게 많으니 돌려달라”고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형사사건 성공보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해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위반되므로 무효”라며 4천만원을 돌려주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이 모인 거리. 한겨레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이 모인 거리. 한겨레

형사사건의 성공보수는 착수금을 받은 뒤 구속이나 실형을 면하게 해주는 결과에 따라 과도한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 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특히 고위 검사나 판사가 변호사로 개업한 뒤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는 이른바 ‘전관예우’가 성공보수를 얻어내는 대표적인 통로였다.

대법원도 “변호사로서는 성공보수를 받을 수 있는 ‘성공’이란 결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수사나 재판의 담당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행사하려는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고, 의뢰인으로서도 성공보수를 약정함으로써 변호사가 부적절한 방법을 사용하여서라도 사건의 처리 결과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기대를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단은 대법원의 이 판결을 ‘아쉬운’ 판결로 분류했다. 심사위원단은 “모든 형사사건 성공보수가 다 무효가 되어야 하는지, 대법원이 판결의 효력을 장래의 것으로 제한하면서 일반적·추상적 규범 선언을 하는 것이 적법한지 등 대법원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판결”이라고 논했다.

이같은 우려를 낸 것은 최근 대법원이 자신들이 맡고 있는 기능을 상고법원과 정책법원으로 나누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가하는 상고 사건을 상고법원이 맡아 처리하고, 정책법원은 규범적 가치와 기준을 제시해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의 보충의견을 통해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투명한 형사사법을 구현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정책 제안 기능까지 비치기도 했다.

퇴임 대법관 개업 금지 등 제도적 장치 찾아야

김성진 변호사는 “국민에게 환영받을 만한 판결이긴 하지만, 본래 입법 영역에서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가야 했는데 사적 계약의 효력을 법원이 부인하는 방법으로 과격하게 나갔다는 게 대다수 법률가들의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관예우를 근절하려면 일정 기간 퇴임 대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법무법인 등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대법원이 아직 이 정도의 결단은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




심사위원 20자평


노희범  이상이 앞서서 현실과 이론이 무시된 건 아닌가? 진정한 정책법원이란 이상과 현실을 조율할 줄 알아야
이광수  꼭 그래야만 했을까?
김성진  국민에겐 달지만, 법리적으론 씁쓸한 판결. 대법원의 과욕이 빚어낸 뜻밖의 선물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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