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1시간×29일=월 226시간?”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이 12월8일 성남고용노동지청(경기도 성남시 분당구)과 12월11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대전시 서구) 앞에서 계산기를 밟았다. 밤새 종이로 만든 ‘고용노동부 계산기’를 부수며 그들은 “노동부 정신 차리라”고 외쳤다. 하루 11시간 일을 시키면서도 월 노동시간을 226시간(하루 8시간 일할 경우)으로 합산하는 고용주의 ‘의도적 오산’(제1034호 <font color="#C21A1A">‘약속을 배반하는 비정한 계약들’</font> 참조)을 노동부 계산기는 잡아내지 않았다. 최저임금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계약서도 공식 추인했다. ‘고장 난 계산기는 폐기돼야 한다’는 뜻으로 노동자들은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법적 지위’를 얻어도 법적 기준에 못 미치는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조합원 체류 자격은 노조 요건과 별개” </font></font>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font color="#008ABD">권순일</font>)는 지난 6월25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조(이주노조)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상대로 낸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소송 제기 10년이 걸려서야 국내 이주노동자들은 ‘합법 노조’를 갖게 됐다. 고용노동부가 발목을 잡았던 ‘조합원의 체류 자격’은 노조 설립 요건과 별개란 사실을 대법원이 확인했다.
지난한 시간이었다. 2005년 4월 서울과 수도권의 이주노동자 91명은 창립총회를 열고 서울지방노동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노동청은 ‘조합원 중 불법체류자가 있을 수 있다’며 조합원 명부를 요구했고, 이주노조는 거부했다. 노동청은 설립신고서를 반려했고, 이주노조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2월 1심에선 노동청이 이겼고, 2007년 2월 항소심에선 노조가 승소했다.
‘고약한 세월’은 대법원에서 흘렀다. 주심 대법관이 3차례(김황식→양창수→권순일)나 바뀌었다. <font color="#008ABD">양창수</font> 대법관은 6년 동안 사건을 방치하다 무책임하게 퇴임(2014년 9월)했다. 대법원이 붙들고 있던 시간만 8년4개월이었다. ‘출입국관리법상의 미등록 여부가 헌법의 노동기본권·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판결의 의미가 육중한 시간의 무게에 눌려 퇴색됐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붙인 ‘가이드라인’도 뾰족하다. “취업 자격 없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조직하려는 단체가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에는 행정관청은 실질적인 심사를 거쳐… 설립신고서를 반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노조 설립 신고를 마치고 신고증을 교부받았더라도 적법한 노조로 인정받지 못함은 물론이다.” 노조 설립을 허용하면서도 이주노조를 다룰 ‘법 기술’을 정부에 전수했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은 대법원의 ‘지침’대로 전개됐다. 대법 판결 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이주노조의 규약이 ‘정치적’이라며 설립 신고서 보완을 요구했다. 이주노조의 ‘단속추방·고용허가제 반대’ 요구를 정치운동의 사례로 들었다. 이주노조는 “노조 설립 이유를 포기하란 주장”이라며 7월 말부터 노동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설립 필증은 결국 발급(8월20일)됐지만 ‘정치운동 금지’는 언제든 노조의 목에 올가미를 걸 수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주노조 다룰 ‘법 기술’도 전수 </font></font>12월13일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서울시 중구)에선 2015년 세계 이주민의 날(12월18일)을 맞아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밭매고 돼지 치며 한국인이 먹는 ‘신토불이 밥상’을 차려온 이주노동자들은 팻말을 들고 ‘근로기준법 제63조(농·축산업은 휴게·휴일 규정 적용 예외) 폐지’와 ‘사업장 이동(사업주 동의 없인 불가)의 자유 보장’을 염원했다. 그들은 이날도 계산기를 밟았다.
노희범 이렇게 쉽게 판결할 걸 왜 그렇게 늦었을까? 늦었지만 기꺼이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염형국 넘 늦어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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