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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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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정부가 저지른 범죄

초기 대응 실패·비밀주의로 메르스 사태를 재앙으로 키워가는 정부 광우병 사태, 사스 뒤 홍콩에서 보듯 시민의 분노 높아지면 정치 위기로 이어질 것
등록 2015-06-09 16:53 수정 2020-05-03 09:54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기억하자. 그리고 홍콩의 경험을 잊지 말자.
2014년을 달군 우산운동의 열기가 남은 2015년 6월, 홍콩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언제 변화가 시작됐느냐?”는 질문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때 홍콩 정부가 무능(useless)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
2003년 7월1일, 홍콩에서 시민 50만 명이 반정부 행진을 벌였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진압에 항의한 집회 이후 최대 인파였다. 한국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국가안전법’ 제정 반대가 이슈였지만, 사스 대응에서 베이징 눈치만 보면서 정보를 통제하고 무능했던 홍콩 정부에 대한 항의가 바탕이 됐다. 그렇게 감염병은 정부의 무능을 집약해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안전사회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대표들이 지난 6월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의 안일한 메르스 대처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무한반복’ 등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정부를 비판했다. 류우종 기자

안전사회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대표들이 지난 6월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정부의 안일한 메르스 대처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무한반복’ 등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정부를 비판했다. 류우종 기자

무능이 부른 권위의 추락을 기억하라

2003년 사스로 인구 700만여 명의 홍콩에서 302명이 숨졌다. 신자유주의 홍콩에서 각개약진하던 사람들은 감염병 위기를 겪으며 공동체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이명박 정부를 위기에 빠뜨린 광우병 사태도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질병’을 수입하려는 정부에 대한 항의였다. 지금 우리는 정치 위기가 제도정치를 넘어 바깥에서 촉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중세의 몰락을 몰고 온 흑사병 사태가 역사책 속 얘기가 아닌 것이다. 유럽 인구의 절반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으로 인해 교회의 권위는 추락했다. 흑사병을 ‘신의 심판’이라고 했던 사제들이 맥없이 쓰러졌고, 나중엔 신도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지금의 정부와 같았던 당시의 종교는 불신을 당했다.

“에볼라 얘기는 하지 말고 아프리카 같은 이야기도 하지 마시라. 의사 선생님들 너무 불안하게 하지 마시라.”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해당 병원이 책임져라.”

전자는 아프리카 가나에 다녀온 사람이 스스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검사를 요청하자 들었던 말이다. 후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검사를 요청한 병원에 돌아온 답이다. 둘은 모두 질병관리본부에서 나온 말이다. 최규진 건강과대안 연구위원은 “에볼라 당시와 메르스 대응이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퇴짜를 놓았던 정부는 메르스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지난해 9월21일 가나에서 6개월간 체류한 부산의 A씨는 에볼라 의심 증상을 보여 119에 신고했다. 나중에 그는 말라리아 환자로 밝혀졌다. 당시 정부는 ‘쉬쉬’하는 태도로 일관하며 적절한 대응은 뒷전이었다. 감염병 대비 체제의 문제점도 이미 드러났다. 당시 부산소방안전본부가 그를 부산대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국가지정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다시 울산대병원에 갔지만 같은 이유로 입원을 거부했다.

당시 사태를 추적한 최규진 연구위원은 “놀랍게도 두 병원 모두 보건복지부에서 에볼라 대응을 위해 지정한 국가지정병원이었다”며 “프로토콜을 제시하고 개선점을 지적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여전히 전국 17개 국가지정병원은 다른 환자의 불안을 이유로 ‘비밀’에 부쳐져 있다. 17개 병원으로는 메르스 환자가 늘어나도 격리할 병상마저 부족한 형편이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위기도 있었다. 주기적인 금융위기처럼 주기적인 감염병 위기가 닥치지만 대응 능력은 오히려 후퇴했다. 예고된 위기에 준비된 한계가 메르스 사태를 키웠다.

후퇴한 정부의 감염병 대응 능력
감염 사실을 모르고 병원을 옮긴 환자도 있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긴 16번 환자에게 감염된 80대 남성이 6월4일 결국 숨졌다. 정부가 대응만 제대로 했어도 막았을 억울한 죽음이다.

“불씨를 흩뿌린 거죠.” 의사인 우석균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메르스 초기 대응을 그렇게 말했다. 최초 확진 환자가 나온 평택성모병원에서 소극적인 대응은 실패했고, 적극적인 대응은 검토되지 않았다. 최초 확진 환자가 나온 5월20일부터 병원이 자진 폐쇄한 29일까지 그곳은 무방비 상태였다. 질병관리본부는 1번 환자가 나온 직후에 ‘확진 환자와 2m 이내 거리에서 1시간 이상 접촉한 사람’만 격리 대상으로 설정했다. ‘예방을 글로 배운’ 결과다. 긴밀히 접촉한 사람만 감염된다는 중동의 경험을 고민 없이 적용한 것이다.

한국적 병원의 현실은 재앙적 결과로 이어졌다.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한국 병원은 보호자와 환자가 복작복작하는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일반병실에서는 보호자가 간호사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고, 그만큼 간호사 수가 적다. 그렇게 최초 환자와 다른 이들의 격리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효율성만 따지는 병원 구조도 더해졌다. 평택성모병원 역학조사를 통해 병실에는 환기구와 배기구가 있어야 하는데 에어컨만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병실 에어컨 5대 중 3대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사실 감염병 병실이 다인실로 설계된 것부터 문제였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을 통해 “1인실도 보험 적용 대상이지만 수익성만 따지는 국내 병원의 전반적인 상업화가 감염 확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활동성이 강한 보호자가 병실을 오고 가고 서로 인사하는 사이에 바이러스는 병실 문을 넘고 층을 건너 퍼졌다. 병실 문 손잡이, 화장실 가드레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는데 병원 안 사람들이 이런 곳을 잡고 다니는 것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감염 사실을 모르고 병원을 옮긴 환자도 있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긴 16번 환자에게 감염된 80대 남성이 6월4일 결국 숨졌다. 정부가 대응만 제대로 했어도 막았을 억울한 죽음이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갔던 14번 환자는 서울시 발표로 논란이 됐던 의사를 감염시켰다. 뒤늦게 5월28일 정부는 격리 대상을 확대했지만 최소 30명이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뒤였다.

6월5일, 평택성모병원을 출입한 사람의 전수조사 계획이 나왔지만 보이지 않는 불길이 거리로 번진 뒤였다. 보건복지부 장관 해임 정도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국가 범죄’였다. 낙타 운운하는 예방책은 맥락 없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영혼 없이 글로 배운 대응책의 결과이긴 마찬가지다. 실소조차 아까운 대응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정부의 무능한 대응과 함께 병원의 문제가 있다.

치료가 아닌 감염의 공간이 된 병원
2003년 7월1일, 70만 명의 홍콩인들이 홍콩섬 코즈웨이베이 등에서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스 확산 저지 실패는 반정부 정서의 바탕이 됐다. REUTERS

2003년 7월1일, 70만 명의 홍콩인들이 홍콩섬 코즈웨이베이 등에서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스 확산 저지 실패는 반정부 정서의 바탕이 됐다. REUTERS

“병원이란 병든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며, 몸이 편치 않은 사람들의 면역체계란 공장형으로 사육되면서 노상 약물에 절어 있는 닭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실제로 사스는 야심에 불타는 침입자가 세계에 진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병원에서 발견한 경우다. 사스의 눈에 병원은 수많은 유동 인구, 끊임없이 이동하는 직원들, 더러운 병동, 과도한 환자 밀도, 면역력이 손상된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다. …사스는 순수하게 병원에서 만들어진 질병, 즉 병원 감염 전염병이란 것이다.”

21세기를 위협하는 생물학적 감염병 보고서인 앤드류 니키포룩의 (알마 펴냄)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스만이 아니다. 메르스는 중동에서 절대다수가 병원 감염으로 퍼졌다. 그만큼 병원은 위험한 곳이고, 병원에서 예방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고려되지 않았고, 병원은 치료의 장소가 아니라 감염의 공간이 됐다.

엄기호 사회학자는 “관료제의 핵심은 책임이 아니라 면피”라고 지적했다. 메르스 대응에서 부실한 매뉴얼도 문제였지만, 매뉴얼대로 했다는 면피는 재앙이 되었다. 약간의 불운은 심각한 위기를 불렀다. 불행히도 전파력이 약하다는 매뉴얼과 달리 최초 환자의 감염력은 ‘이상하게’ 강했다. 엄기호 사회학자는 “지금의 관료제는 예측되는 재해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그런데 지금 예측 불가능한 재해가 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상을 빗나간 감염력 앞에서 관료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박근혜 정부의 실책으로 숨지는 이들이 박근혜 정부의 지지층인 고령자라는 아이러니도 있다. 미국 정부는 에볼라 환자가 나오자 공기감염 위험까지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했다. 그의 동선까지 투명하게 공개했다.

“의학적 재난은 컨트롤타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재난이다. 의학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전문가가 정보를 장악하고 있고, 일반인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컨트롤타워가 제공하는 정보가 ‘우리가 살 방향’이라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특히 초기에 신뢰를 휘어잡고 가느냐가 핵심이다. 한번 깨지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적한 최규진 연구위원은 “그래서 비과학적 반응조차 정부의 책임이다”라고 말을 맺었다. 청와대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지 않았고, 대통령은 심각한 재난에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그리하여 시민의 자경(自警) 활동이 시작됐다. 소셜미디어네트워크를 통해 환자 발생 병원 이름이 돌았고, 메르스 지도가 만들어졌다. 환자 발생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정부에 “사람은 죽어도 되고 병원은 망하면 안 되느냐”는 반발이 커졌다. 자경 활동은 안전을 지키는 보루가 됐지만, 희생양을 낳을 위험도 있다.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의 가족은 기피 대상이 됐다. 엄기호 사회학자는 “국가가 제대로 정보를 관리하거나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니까 시민이 시민을 적대하고 시민이 시민을 추방한다”고 우려했다.

주기적인 불길이 번지는데 동네마다 소방서는 없다. 감염병을 둘러싼 상황이 그렇다. 우석균 정책위원장은 “공중보건 체계 파산의 결과”라고 메르스 위기를 말했다. 만약 지역거점 공공병원이 있었다면, 최초 환자 발생 병원의 격리 대상자들을 해당 지역 공공병원으로 모두 옮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민간병원은 통제하기 어렵지만, 공공병원은 공중보건을 위해 비울 수 있다. 격리 병실을 갖춘 공공병원에 재빨리 사람들을 격리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우 정책위원장은 “격리 병실은 유지비가 비싸서 수익만 따지면 만들기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하다”며 “50년짜리 방비댐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매일 출동하지 않아도 대형 화재를 막을 소방서가 필요한 것처럼, 전국 254개 지방자치단체에 공공병원 하나씩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 공립병원 비중은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평균이 73%이지만, 한국은 병원 수로 6%, 병상 수로 10%에 그친다. 주기적인 감염병 위기 시대에 의료공공성은 한가한 얘기가 아니다. 공공병원 부재는 감염병 시대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에볼라 감염을 의심했던 환자가 부산대병원과 울산대병원 사이에서 ‘핑퐁’을 당했던 것처럼, 메르스 감염 우려 격리자들도 울산에서 거부당하면 경북 경주로 가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메르스, 아직은 재앙이 아니지만…

한국인 메르스 확진 환자가 홍콩을 거쳐 중국에 입국하자 홍콩과 중국 당국은 단호한 대응을 했다. 한국 정부의 무책임에 대한 항의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메르스 ‘초전박살’ 의지를 불태운다. 사스를 통해 감염병 위기가 정치 위기로 번진 경험을 해서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을 피엘(PL)이라고 부른다. ‘People Living With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사람들)란 뜻이다. 지구화 시대 감염병 위기는 피하기 어렵다. 최규진 연구위원은 “들어오는 감염병을 어떻게 막느냐가 관건”이라며 “다음에도 정부의 말을 믿지 않게 돼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지구촌을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사회’(Society Living With Virus)로 부를 수 있겠다. 주기적인 감염병 위기에 걸맞은 관료제 혁신,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6월5일 현재 한국에서 메르스 치사율은 두 자릿수를 넘지 않았다. 메르스는 통제 불가능한 재앙이 아직은 아니다. 다만 관리 가능한 감염병을 관리하지 못한 무능이 문제다. 그래서 이것은 정치의 문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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