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돌아가세요. 여기 있으면 더 위험합니다.”
평택보건소 주차장 한쪽엔 작은 컨테이너가 있다. ‘감염 사태 진원지’의 검사소치곤 공간과 인력이 열악했다. 6월3일 전신을 하얀 방역복으로 감싼 보건소 의료진 한 명과 보조 인력 두 명이 ‘끝없는 시민 행렬’을 상대하고 있었다. 9살 쌍둥이 두 아들의 손을 잡은 젊은 아빠가 검사소 앞에서 의료진의 ‘검사 불가’ 설명을 듣다 돌아섰다.
“확진 환자를 접촉한 사람들 검사만으로도 너무 벅차 미접촉자는 검사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쌍둥이 중 큰애가 열이 나서 데려왔다. 사실 이 아이보다 집에 있는 갓난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된다.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열이 나면 소아과에 데려가라고 하더라.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답답하다.”
①확진 환자와 접촉했나. ②체온이 38℃ 이상인가. 보건소는 ‘두 가지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일이 본업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들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확진 환자 접촉 여부를 모른다는 데서 불안은 오고 있었고, 접촉 여부를 알고 싶어 찾아온 시민들에게 보건 당국은 ‘자가 입증’을 요구했다. ‘메르스 검사의 장벽’은 그토록 높았다.
평택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감염자가 증가할수록 지역사회의 불안과 공포는 증폭되고 있다. 2명의 사망자와 3차 감염자가 발생한 6월1일 평택 시내 약국들에선 마스크가 동났다. 세정제는 재고 자체가 없었다. “1년 매출을 3~4시간 안에 올렸다”고 한 약사는 말했다. 휴교한 초등학교에선 학생들 대신 고령의 할머니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햇볕을 피했다.
평택성모병원은 ‘소개’돼 있었다. 병원 건물뿐 아니라 주변 도로에서 사람이 증발했다. 안내 직원 한 명이 방역복으로 몸을 싸고 입구를 지켰다. 병원 앞 편의점과 약국도 문을 닫았다.
확진 환자가 발생한 평택의 ㄱ병원도 썰렁했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 절반이 퇴원했다”며 “병원 주위엔 차도 안 오려 한다”고 했다. 병동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환자는 “사람 죽고 사는 건 팔자”라며 연기를 뿜었다.
평택 시내 ‘경기대로’에서 텅 빈 시내버스 한 대가 모퉁이길을 휘돌았다. 손님 한 명 없이 운전기사 혼자 버스 안에서 쓸쓸했다. 메르스로 사망(6월1일)한 여섯 번째 감염자가 근무했던 회사 버스였다. 평택성모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3일간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본 뒤 고열로 재입원했다가 사망했다. 이 회사의 노동자는 전했다. “보건 당국이 고인의 직업을 자영업자라고 발표했다. 우리 회사 고위 간부인데 왜 속이냐고 따지자 ‘여섯 번째 사망자는 그분(버스회사 간부)이 아니다. 그분은 살아 있다’고 거짓말했다. 항의하니까 질병관리본부 지시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
정보를 통제하는 국가에서 통제받지 않는 불안이 병보다 빨리 전염되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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