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보수 교육단체는 조 교육감의 1심 선고를 계기로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강하게 제기한다. 그러니 이 싸움은 교육감 직선제 존속 여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한 의혹 제기는 어느 선까지 가능할까? 이 싸움의 결과는 우리 사회가 후보 검증을 위한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용인할지, 유권자의 판단 영역에 검찰의 수사권이 얼마나 개입하도록 할지, 나아가 교육자치가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지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
취재 송호진·송채경화·박수진 기자, 편집 이정연 기자, 디자인 장광석
“좌절했죠.”
시민배심원단 7명 전원의 유죄 의견이 준 충격파가 컸다고 한다. 1심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에 참가한 배심원단의 의견을 수용해 ‘지난해 교육감 선거에서 조 교육감이 의혹 제기 형식을 빌려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다고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당선무효형 유죄를 선고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쪽 인사는 “배심원단 ‘7 대 0 유죄’의 결과 때문에 모양새가 좋지 않게 됐다”고 했다. 시민들의 상식적 판단에 기댔다가 도리어 법을 위반했다는 인상을 더 짙게 만들었다.
조 교육감에 대한 1심 선고 이후 내부에선 소수지만 “항소(2심)를 하지 말자”는 얘기도 나왔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선거에서 의혹을 제기할 때 사전에 사실 확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허위사실 공표죄가 선고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의 1심 재판에 관여한 관계자는 “의혹을 제기한 기자회견 이전에 ‘얼마나 사실 확인을 했느냐’는 물음에 답하기 쉽지 않은 게 우리 쪽의 약점”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상급심에서도 ‘반전의 카드’가 마땅하지 않다면서 “국민이 7 대 0 유죄를 판단했으니 (항소심을 포기하고) 이를 수용하겠다고 하는 것이 진보 진영에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야당의 다른 인사는 “당시 선거캠프 대변인이나 선대본부장이 나서지 않고 후보가 직접 기자회견을 하게 한 것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했다.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의혹을 제기하는 회견에 후보를 내세워 위험부담을 안겼다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조 교육감 쪽 내부에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대항론이 우세하다. 항소이유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는 조 교육감 쪽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법리적 다툼에서 이길 수 있느냐는 이성적 판단에 앞서 검찰 혹은 정권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판단이 조 교육감 쪽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조 교육감은 지난해 선거 기간인 5월25일 고 후보의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했고, 고 후보는 이틀 뒤 자신의 여권 사본 일부를 공개하며 영주권이 없다고 반박했다(표 참조). 고 후보는 허위사실 유포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조 교육감을 고발했고, 조 교육감은 관련 의혹 제기를 멈췄다. 선거 하루 전날인 6월3일 선관위는 조 교육감에게 경고를 주며 이 사안의 공방을 행정적으로 종결했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 관계자는 “경고는 검찰에 고발할 정도의 사안이 아니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고 후보도 조 교육감의 아들이 병역을 기피했고, 조 교육감이 통합진보당 경기동부 세력과 연관돼 있다고 허위사실을 주장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고 후보는 또 친딸이 자신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파문이 일자, 다른 경쟁자인 문용린 후보가 자신의 딸을 사주했다며 ‘공작정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자 문 후보는 고 후보를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런 여러 건의 고발 가운데 검찰이 수사와 기소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 하필이면 ‘미국 영주권 의혹 제기 사안’이었는지 조 교육감 쪽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보수단체 ‘자유교육연합’이 지난해 11월 조 교육감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한 뒤 경찰이 이 사안을 재조사했을 때도 ‘무혐의’ 의견을 검찰에 냈다. 그럼에도 검찰은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선거 이후 6개월)가 끝나기 전날인 12월3일 조 교육감을 불구속 기소했다.
조 교육감 쪽은 “진보 교육감을 타깃으로 한 표적 수사와 기소가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전체 교육감 17명 가운데 13명이나 당선된 것에 부담을 느낀 정권이 진보 교육감의 상징적 위치인 서울시교육감을 겨눴다고 보는 것이다.
조 교육감 쪽 변호인단 가운데 한 변호사는 “이번 기소와 재판은 (진보 교육감을 대거 배출한) 직선제를 폐지하려는 사전작업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시 진보 교육감(곽노현-조희연)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연이어 직을 잃는 상황이 부각되면 직선제 폐지 여론에 힘이 실린 것이란 정무적 판단이 고려됐다는 얘기다.
검찰의 의도가 무엇이든 승부처는 법리 다툼에서 ‘누가 이기느냐’다. 1심에서 승기를 잡은 검찰의 논리는 간결했다. ‘고 후보는 미국 영주권이 애초부터 없다. 영주권 보유 의혹은 허위다. 조 교육감은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허위사실이란 것을 ‘인식’하고도 상대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개했다.’ 의혹 제기라는 형식으로 허위사실을 강하게 암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논리는 두 가지 이유로 힘을 받고 있다. 첫째, 대법원의 판례가 의혹을 제기하는 쪽의 사실 확인 노력을 중시한다는 것. 둘째, 조 교육감 쪽이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성립의 핵심 판단 사항인 사실 확인에 소홀했다는 점.
조 교육감 쪽은 지난해 5월23일 최경영 기자가 ‘고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의혹’을 트위터에 올리자, 5월25일 기자회견 직전 최 기자와 통화한 뒤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 직전 최 기자는 조 교육감 쪽과 통화하면서 “고 후보의 영주권 보유 여부가 확실하지 않으니 더 알아보라고 말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는 배심원단과 재판부에 조 교육감 쪽이 성급하게 기자회견을 했다는 인상을 심어준 하나의 근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만약 당시 기자회견 진행 여부를 내게 문의했다면 ‘스톱’시켰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는 노력의 근거를 남기지 못한 상황에서 후보가 직접 기자회견을 한 것은 위험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1심을 뒤집기 어려워 보이지만 조 교육감 쪽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당시 조 교육감 쪽의 기자회견은 이렇게 요약된다. ① 제보에 따르면, 고 후보가 미국에서 근무할 때 영주권을 보유했다고 한다. ② 이게 사실이면 고 후보는 교육감 후보 자격이 없다. ③ 영주권 보유 여부에 대한 사실을 밝혀라.
영주권을 보유했다고 단정지은 게 아니라 제보에 의하면 그런 의혹(①)이 있다는 것이며, 사실 여부를 해명(③)하라고 한 것이란 얘기다. 의혹을 새롭게 만든 게 아니라 제3자(최 기자 트위터, 리트위트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용 등)가 제기해 널리 퍼진 의혹의 내용을 소개하며 공개 해명을 요구했을 뿐이란 뜻이다. 당시 최 기자가 관련 의혹을 트위터에 올린 이후 2천 건 이상이 리트위트되며 SNS 공간에서 의혹이 퍼진 상태였다.
조 교육감 쪽은 항소심에서 다시 이 부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 교육감 쪽은 자신들이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고 후보가 3일 만에 이를 해명함으로써 관련 의혹이 오히려 SNS에서 크게 줄어드는 순기능을 했다고 강조한다. 조 교육감 쪽은 “SNS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 후보에 관한 의혹이 당시 얼마나 퍼져 있었는지, 기자회견 이후 오히려 그 의혹이 어떻게 소멸됐는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조 교육감이 허위사실임을 인식했다고 보는 대목에 대해선 “그렇게 주장하는 검찰이 (그 가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게 조 교육감 쪽의 입장이다. 조 교육감 쪽은 ‘허위사실임을 알고 공표했다는 주장을 검찰 스스로 증명하라’는 논리로 허위사실 공표 관련 사건에서 여러 차례 승소한 변호사를 최근 선임해 반격을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확인’ 소홀에 대한 조 교육감 쪽의 반론은 크게 두 가지다. 고 후보는 2003년판 자서전에 “(미국에서 근무할 당시)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적었는데, 검찰은 조 교육감이 자서전도 찾아보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 교육감 쪽은 “2003년판 자서전은 시중에서 절판돼 구하기도 어렵다. 또 선거는 후보를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와 같다. 만약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병역 기피 의혹을 제기했는데, 후보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은) 자서전을 보라면 그대로 믿겠는가. 당연히 구체적 자료를 제출하라고 할 것이며, 당시 우리 기자회견도 그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또 검찰이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고 후보가 영주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하는 데 4개월이 걸렸는데, 당시 개인 신분의 조 교육감이 미 대사관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애초 사실 확인은 불가능했을 것
또한 1심 판결문 초반엔 ‘(고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밝혔다가, 뒷부분에선 ‘이 사건 범행으로 (고 후보가) 낙선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는 등 모순이 존재한다고 조 교육감 쪽은 반박했다.
이와 별개로 조 교육감 쪽은 2심 재판부에 유죄 판단의 근거인 공직선거법 ‘250조 2항’(낙선을 시키기 위한 허위사실 공표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도 할 계획이다. 사법권이 개입하는 이 조항의 엄격성 때문에 후보 검증을 위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유권자가 후보를 판단하는 자율권도 지나치게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이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물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2심 선고가 늦춰질 여지가 있다.
2심 재판부는 지난 대선 때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을 무죄 취지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원세훈 전 원장을 구속시킨 서울고법 형사6부에 배당됐다. 형사6부는 5월22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해 구속 수감된 조 전 부사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김상환 부장판사가 이끄는 형사6부의 이런 법리 해석 성향이 조 교육감의 2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진 1심에서 만장일치 유죄판결이 난 사건이 2심에서 뒤집힌 경우가 적은 것은 조 교육감 쪽의 부담이다. 그러나 이상수 서울시교육감 대변인은 “1심 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판결한 220건 중 61건이 2심에서 파기됐다. 만장일치 유죄판결이더라도 항소심에서 뒤집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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