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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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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뉴타운은 없었다

정비사업 관리 업체의 고소 뒤 부인과 함께 목숨 끊은 한남뉴타운 5구역 조합원

이씨의 사정… 정부 ‘정책’, 기업 ‘투자’ 실패한 결과지만 책임은 조합원 몫으로
등록 2015-01-10 14:25 수정 2020-05-03 04:27
2002년 도입된 뉴타운 정책은 균형발전의 미명 아래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부채질했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임지는 이들은 없다.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슬럼화돼가는 서울 용산의 한남뉴타운 전경. 정용일 기자

2002년 도입된 뉴타운 정책은 균형발전의 미명 아래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부채질했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임지는 이들은 없다.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슬럼화돼가는 서울 용산의 한남뉴타운 전경. 정용일 기자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은평·길음·왕십리 등 3곳을 재정비촉진사업의 시범지역으로 지정했다. 첫 뉴타운 사업지구였다. 급격한 개발시대를 거치며 초래된 강남과 강북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으니 명분이 좋았다. 겉으로 드러난 분배정의란 단어가 숨겨진 욕망의 정치를 만나면서 뉴타운사업은 재앙이 됐다.
시범사업의 추이도 살피지 않고, 서울시는 거듭 2차·3차 뉴타운 사업구역을 발표했다. 다가올 재앙을 보지 못한 채 서울 시내 35곳(균형발전지구 포함)에 뉴타운 305개 구역이 지정됐다. 2008년 닥쳐올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니라도, 애초에 그 틀이 덫이었다. 낙후된 지역의 균형발전과 도시 기능 회복을 위한 사업이므로 공공정책이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뉴타운사업을 둘러싼 정비업체·시공사·조합의 복마전에 개입을 최소화했다. 욕망을 부추긴 뒤, 욕망을 조율할 중재자 구실은 미뤄둔 것이었다.
나쁜 정치의 외상은 길게 남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이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구 지정 10년 동안 첫 삽도 뜨지 못한 지역은 헤아릴 수 없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되돌리기 어려운 비용 앞에 국회도, 정부도, 언론도 고개를 돌렸다. 명백한 ‘정책 실패’요, 기업의 입장에서 ‘투자 실패’지만 책임은 온통 주민들의 것이 되었다. 줄잇는 소송은 10여 년 전 주민들이 손에 쥐었던 ‘욕망’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2014년 12월, 새해를 앞두고 서울의 한 뉴타운 사업구역에서 부음이 전해졌다. 10년 넘게 뉴타운사업에 깊이 관여하며 관련 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던 주민이 아내와 함께 목숨을 끊었다. 이 불행한 소식을 실마리로, 아직 끝나지 않은 뉴타운의 비극을 돌아봤다.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나 법정 공방을 유발할 수 있어 이름은 모두 밝히지 않는다. _편집자


남산을 등 뒤에 두고 한강을 마주한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은 전형적인 명당이다. ‘서울의 중심 남산과 어우러지는 최고의 주거단지’ ‘한국 속의 뉴욕 맨해튼 5번가’ ‘강남 못지않은 명품도시’. 2003년 서울시가 보광동·한남동·이태원·동빙고동 지역을 2차 뉴타운 사업지구로 발표했을 때 쏟아진 부동산업계의 수사들이다. 거품이 꺼지기 직전의 투자 열기가 한남뉴타운 사업지구를 뜨겁게 달궜다.

11년 전의 열기는 동빙고동에 남아 있지 않다. 낡은 다가구주택들은 이빨 빠진 외양을 다듬지 않은 채 언제가 될지 모를 철거를 기다린다. 골목 뒤편 펜스에 젊은이들이 스프레이로 휘갈기고 간 낙서는 이곳이 ‘방치’된 구역임을 드러낸다. 그나마 낡아빠진 집들의 전·월세 거래조차 이뤄지지 않는 시절, 뉴타운 대목 장사를 위해 경쟁적으로 다닥다닥 몰려 앉았던 부동산들은 숫제 기대를 접고 동면에 든 듯했다. 뉴타운의 환상이 불러온 것은 역설적으로 슬럼화된 ‘올드타운’이었다.

뉴타운 환상이 불러온 것은 ‘올드타운’

2015년을 앞둔 세밑, 전에 없이 한남뉴타운 5구역 일대가 술렁였다. 경찰이 골목골목 다니며 주민들을 탐문했다. 성탄절을 앞둔 주말이었다. 12월20일 5구역 조합원이던 이주용(75·가명)씨와 그의 아내가 고향의 선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쉬쉬하는 가운데서도 흉흉한 소식은 조합원들 사이에 곧 퍼졌다. 유서를 남겼다고 하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떠난 사람의 내적 동기를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민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부부의 선택에 뉴타운의 그늘이 드리워진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씨의 삶은 지난 10년 뉴타운·재개발 현장을 지배한 욕망의 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부동산중개업자였지만 ‘외지인’은 아니었다. 조합원들은 “그가 뉴타운지구로 지정되기 전부터 한남뉴타운 일대 개발 관련 투자로 돈을 많이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 조합의 임원은 아니지만 (가칭)추진단 단계부터 발벗고 나섰고 예비 추진위원장 선거에도 출마할 정도로 개발사업에 깊이 관여했다. 이 지역의 한 자영업자(60)는 “쉽게 말하면 이씨가 조합을 이용해 재개발 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조합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의 실세라는 게 조합원들 사이에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여기서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그만큼 (뉴타운사업 조합 구성 등에) 돈도 많이 썼다”고 그는 덧붙였다.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짐작할 따름이었다.

추진위가 궁지에 몰리면서 이씨의 ‘사업’도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정비사업 관리를 위한 용역업체 선정에 잡음이 생겼다. 재개발 사업에서 정비업체는 주민설명회·홍보, 추진위원장 등 임원 선출 업무 지원, 동의서 수령 등의 지원을 맡는다. 사업을 추진할 자금이 부족한 주민들은 초기 단계에서 정비업체가 제공하는 ‘자금줄’에 관행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재개발을 앞두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임의단체들 가운데 먼저 든든한 자금줄을 확보하는 조직이 조합으로 살아남게 되는 것도 공식이다. 이씨를 주축으로 한 5구역 예비 추진위는 2009년 이미 ㅅ정비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ㅅ업체는 이후 설립 계획 수립, 자료 조사, 예비 임원선거의 기획 및 지원, 추진위원회 설립동의서 징구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서울시가 공공관리제를 새로 도입하면서 이씨 등의 계획은 틀어졌다. 지자체장이 공공관리자가 돼 사업시행자의 사업 추진을 돕는 공공관리제는 정비사업의 뿌리 깊은 문제인 조합 비리 등을 막기 위해 2010년 도입됐다. 예비 추진위 단계에서 ㅅ업체의 도움을 받은 추진위는 그해 5월 주민총회를 열고 ㅅ업체를 정비업체로 선정했지만 공공관리자인 서울시로부터 고시한 업체 선정 기준에 따라 정비업체를 선정하도록 권고받은 끝에 이듬해 ㅍ정비업체를 새로운 업체로 선정하기에 이른다.

재산 맡겨두고도 알 권리는 없다?

이때부터 조합원들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잘 알지도 못하는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원계약사인 ㅅ업체가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3년 5월 “한남 5구역 조합은 ㅅ업체에게 약 53억원을 지급하되,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조합의 항소는 지난해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기각됐다. 공공관리제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론 조합에 수십억원의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이처럼 조합 관계자들이 어떤 송사나 비리에 휘말려도 조합원들은 알아낼 길이 요원하다. 내 재산을 맡겨두고도 정보를 요구할 권리는 보장돼 있지 않은 것이다. 5구역 조합원 강신정(54·가명)씨는 “재개발 사업에서 조합이 스스로 불리한 이야기는 조합원에게 절대 하지 않는다. 조합원들은 정확하게 조합이 어떤 소송에 연루됐는지 알 수 없고, 정보공개 청구를 해도 조합이 공개를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며 답답함을 표시했다. “재개발이란 게 우리나라의 기존 부패한 관행이 집약되는 현장인 것 같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웬만한 비리나 부패는 덮어두고 간 게 지금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그가 덧붙였다.

공공관리제 시행에 따라 지자체의 기준을 따라야 함에도 이씨와 추진위가 애초 ㅅ업체와의 계약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목숨을 버리기 전, 이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있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배임수재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그에게 12월23일 오전이 기일이라고 통보해주었다. 이씨와 5구역 조합장 등을 고소한 ㅅ정비업체는 검찰에 낸 진술서에서 “(이들이) 개인 용도로 사용한 카드 영수증을 추진위원회에 제출하여 일시에 차입한 것으로 회계처리한 뒤 차입금을 돌려받는 방법으로 서울시로부터 융자받은 공공자금 6억원 중 4억여원을 접대비·판공비·업무추진비 등 공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회계처리해 공금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씨의 지인들은 “중단된 줄 알았던 수사가 재개되고 구속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입을 모았다. 한 주민은 “이씨의 아내가 거동이 불편한 처지였다. 자신이 갑자기 구속될 경우 아내를 보살필 사람이 없어서 큰 불안감을 느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은 “그렇게 개발사업을 좇다가 결국엔 자기 목숨과 맞바꾼 셈이 됐다”며 혀를 찼다.

뉴타운지구 중에서도 비교적 사업성이 있는 지역으로 평가받았던 한남뉴타운에서 벌어지는 복마전은 거의 모든 뉴타운지구에서 심각하든 덜 심각하든 비슷하게 겪고 있는 상황이다. 쫓겨나는 세입자, 높은 분담금 등을 뉴타운사업 갈등의 1라운드라고 한다면, 뉴타운지구 지정 10년이 지난 현재 곳곳에서 빚어지는 조합 비리와 이로 인한 정비업체, 시공사 등이 개입된 소송 등은 갈등의 2라운드라고 할 수 있다. 뉴타운지구에서 ‘갈등’은 그대로 조합원들의 ‘비용’이 된다. 각종 소송에서 지면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단지 소송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것만으로도 조합운영비에, 사업시행 이자 등 각종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2003년 지정된 한남뉴타운 5개 구역 중에 착공한 곳은 없다.

아파트 재개발 공사가 한참 진행중인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뉴타운 4구역의 21일 오후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파트 재개발 공사가 한참 진행중인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뉴타운 4구역의 21일 오후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무리 따져도 뉴타운은 주민이 손해”

한남뉴타운 3구역 주민 한성민(53·가명)씨는 지난해 오래 지켜온 집을 팔아버렸다. “돈은 없지만 집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젊어서 무일푼으로 서울에 와 집이 없으면 죽는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그에겐 기회였다. 4천만원에 전세살이를 할 때 3억원짜리 다가구주택을 사서 전세를 놨다. 재개발에 대해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1년이 지나자 집값은 6억원으로 불었고, 뉴타운지구로 지정됐을 땐 14억원을 호가했다. 그로부터 수억원을 손해 보고 집을 처분했다. “사업이 지금부터 술술 풀려도 2024년쯤 입주할 텐데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다. 물가상승률만 적용해도 재개발 지역 바깥의 집값은 10년 동안 어느 정도 오를 텐데 재개발 지역에선 오히려 금융비용에 따라 재산가치가 떨어진다. 아무리 따져봐도 뉴타운은 주민이 손해 보는 장사더라.”

뉴타운 갈등 2라운드에 이른 지금,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을 단순히 ‘사업에 반대하는 선한 원주민’과 ‘개발이익을 노린 투기꾼’의 대립 구도로 이해해선 해법을 도출하기 어렵다. 우선 모든 조합원이 자신의 의지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몸을 실은 것도 아니다. 뉴타운사업에 반대하더라도 일단 조합이 설립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하는 수밖에 없다. 신정뉴타운 2-1구역 조합원인 이계원(58) 뉴타운비대위연합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반대 입장이 명확했다. 45년 동안 거주하며 고향이라고 생각해온 곳을 쉽게 떠날 수 없었지만 조합 설립을 위한 주민들의 사전동의율이 75%를 넘겼다. “내가 동의를 안 해도 조합이 설립된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설립 이후 동의서를 써줬다. 그런데 이후에 사업비를 자꾸 올리는 걸 보고 문제가 크다고 여겨 반대 주민 모임을 열었다가 비대위 대표가 됐다.”

애초에 뉴타운에 찬성했던 주민이 ‘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경우도 셀 수 없다. 뉴타운 광풍이 ‘가진 건 집밖에 없는 사람들’의 골드러시를 부추겼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회적 중의를 모으는 편이 낫다. 신정뉴타운 지역 조합원인 한정숙(68·가명)씨도 “처음엔 내 집 주면 아파트를 준다니 뭘 모르고 적극 동의했다. 어마어마한 추가분담금을 내는 줄 알면 누가 찬성했겠느냐”고 호소했다. 뉴타운사업 초기 대부분의 주민들은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인 정보만 가지고 맨몸을 던졌다. 주민들을 상대로 정보를 틀어쥔 쪽은 정부와 지자체거나 대형 건설사였다.

서울시 뉴타운·재개발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한 민간 실태조사관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뉴타운사업이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한 주택정책이었다면 정책 실패의 책임을 마땅히 시나 정부가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결과를 종합하면 결국 뉴타운사업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산업정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은 기업이 부담하는 게 맞다. 주민들에게 모든 걸 맡겨두고 사인 간 계약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관리만 하고 책임은 안 지는 서울시

공공관리제에 따라 한남뉴타운 5구역의 정비사업 관리를 맡고 있는 ㅍ정비업체는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해당 업체는 공공관리제 도입 뒤 서울시의 업체 선정 기준에 따라 여러 재개발에 참여했지만 과거 용산 참사 당시 정비사업을 맡았던 업체여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역시 아직 주민들은 감감무소식인 모양이다. 뉴타운 관련 몇몇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의가 간간이 올라와 있다. “ㅍ업체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관리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서울시가 피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올드타운’의 한숨이 깊어간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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