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재·보궐 선거 사흘 전. 새정치민주연합 전략 참모들은 “수원병(팔달)과 경기 평택은 박빙우세, 경기 김포는 초박빙. 전남 순천·곡성은 박빙이지만 그래도 이길 것”이란 희망 섞인 분석을 내놓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곳 모두 여당 후보가 득표율 7~10%포인트 차로 크게 이겼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선거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질 줄 모르고 안철수 공동대표는 선거 이후 당 정비를 고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중도층 흡수력 갖춘 대선 주자들 큰 상처</font></font>선거 지역 15곳에서 여당의 11-4 승리. 제1야당 지도부의 안일한 기대와 달리 이번 선거는 야당의 참패였다. 야권에서 “뭐라 둘러댈 게 없는 완패”란 말이 나오는 건 패배의 내용이 나빠서다. 15곳 중 기존 야당 지역구인 6곳(호남 4곳, 수원을·수원정)도 지키지 못했다. 1988년 소선거구제(1지역구에서 1명 선출) 도입 이후 광주·전남 지역구에선 처음으로 여당 후보에게 지며 ‘지역 구도를 깬 혁명’이란 찬사를 새누리당에 헌납했다. 제1야당이 ‘호남의 야당 탄핵 기류’ 앞에 놓인 처지가 됐다.
내상도 깊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했고, 수원병에 출마해 떨어진 손학규 상임고문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중도로 당 지지층의 범위를 넓히겠다던 김한길 대표 체제에서 중도층 흡수력을 나름 갖췄다는 야권 대선 주자들(안철수·손학규)이 도리어 큰 상처를 입은 것도 역설적이다. 야권은 2012년 총선·대선 패배, 2014년 지방선거 ‘내용적 패배’에 이어 또 패배의 무력감에 빠졌다. 야권의 계속된 패배 탓에 지금부터 이 기사도 야권이 질 때마다 지적된 문제를 재거론해야 하는, 그래서 신선도 떨어진 기사가 되는 태생적 한계를 품고 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큰 선거에서 연거푸 질 때마다 성찰과 혁신을 얘기하고 바로 흐지부지되는 “야권의 집단적 기억상실증”이 여당을 심판하자던 야당이 심판당하는 수모를 불렀다고 말한다.
정치권에선 야권의 ‘참패 자폭’의 주요 원인으로 새정치연합의 공천 파동을 꼽는 데 이견이 없다. 광주 광산을에 공천을 신청한 기동민 후보를 서울 동작을로 차출하는 ‘돌려막기’, 지도부의 전략공천에 대한 동작을 지역위원장의 반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 외압을 제기한 권은희 전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 대한 광주 전략공천 ‘내리꽂기’, 지역 연고 없는 인사들의 ‘투하식 공천’이 야권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당에선 이번 공천 파동을 민심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는 야권의 체질화된 습성과 계파 간 미묘한 기싸움, 소통이 막힌 당의 비민주성이 극대화해 나타난 참사로 보는 해석이 많다. 당 생활을 오래 한 새정치연합 인사의 얘기다.
“공천의 명분을 당과 유권자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것에 실패했다. 공천 과정부터 선거 패배를 자인한 이상한 선거가 됐다. 지도부가 자기들끼리 후보를 돌리고, 후보가 왔다갔다 하고, 아무 연고 없는 지역에 후보를 툭툭 박고. 그렇다고 참신한 인물 공천을 통한 개혁 구도로 판을 짠 것도 아니고. 시민들 눈에는 야당이 우습게 보이는 거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광주에서 13%의 지지만 받은 권은희 </font></font>새정치연합의 한 초선 의원은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은 여야가 각자의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시켜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데, 비상식적 공천으로 우리 지지층들마저 떨어져나갔다”고 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보인 ‘새정치연합의 불통과 독선도 심하구나. 에이, 너희들 안 되겠다. 정신 차리라’고 유권자들이 회초리를 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재보선 지역구 중 최저 투표율(22.3%)을 보인 광주 광산을 주민들도 투표하지 않는 행위로 야당에 경고를 보냈다. 권은희 후보는 지역구 유권자의 13%(2만1545명)의 지지만 받고 당선돼 지역 대표성 논란도 불렀다.
순천·곡성 지역구 사정을 잘 아는 새정치연합의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순천의 경우 19대 총선에선 통합진보당 후보를,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선 무소속 후보를 시장으로 뽑는 등 이미 옛 민주당에 종속적이지 않은 투표를 경험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당의 후보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의원직을 잃었던 후보(서갑원)다. 경선에 참여했다가 갈등을 빚은 다른 후보들의 조직이 흡수되지 못하고 분열된데다, 예산폭탄을 얘기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는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 절박하게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나. 순천에서 우리 당에 몰표를 줄 매력적 요인을 찾아보시라. 있나?”
정치 경력이 떨어져도 해당 지역 연고가 있는 새로운 얼굴을 상향식 공천으로 내민 새누리당의 수도권 전략과 달리 명망가에 기댄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판단도 결과적으로 패착을 불렀다. 이 대목과 관련해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야당의 무리한 공천으로 여당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 같다”고 평했다. 다음은 새정치연합 경기도당 관계자 등 당의 몇몇 인사의 얘기를 종합한 것이다.
“손학규 후보가 출마한 수원병(팔달)은 5·16 쿠데타의 일원인 이병희 의원이 7선, 남경필 경기지사의 부친과 남경필 지사가 도합 7선 등 여당 계열이 50여 년간 의원을 지낸 동네다. 고령인구가 많고 보수적인 곳이라 야당에 불리하다. 남편과 아들을 의원으로 만든 남경필 지사 모친의 조직동원력도 여당 후보에 상당한 힘이다. 그런데 이 지역을 다져온 새정치연합의 김영진 지역위원장이 19대 총선에서 남경필 지사한테 5%포인트 차로 졌다. 지역에선 아깝게 졌다는 정서가 강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이번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할 때 지역 주민 수백 명이 모였다.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는 19대 총선에서 다른 동네(수원갑)에 출마했다가 이번 재보선에서 수원병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김영진 위원장이 오히려 지역 일꾼론을 내세워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당에서 ‘그래도 손학규인데’라며 전략공천으로 보낸 것이다. 손 후보는 정치신인에게 7%포인트 차로 졌다. 손 후보도 이제 흘러간 옛사람으로 일부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경기 평택을의 정장선 후보도 여당 지지세가 강한 평택에서 인물론으로 돌파해 그간 3선을 했는데, 이번에 안 된 것은 ‘인지도는 높지만 새롭지 않은 사람’이란 인식이 한 이유로 작용한 듯싶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새누리당의 쇼? 뭐라도 한다!</font></font>공천 과정에서 전략공천 등의 우려를 당에 전달했지만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얘기다. 결국 이는 앞서 거론된 ‘당의 비민주성’ 문제와 다시 연결된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지난 3월 통합한 이후 당의 의사결정 기구인 당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은 채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에게 의사결정권이 불투명하게 집중됐다는 것이다. 김한길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조차 “김 대표가 자기 수를 너무 보여주지 않으려다 꼬이고 말았다”고 말한다.
당내 소통이 막힌 구조, 지도부를 향한 불만 등은 선거 기간에 일부 의원들과 당원들의 ‘면피성 태업’으로 나타나는 결과를 낳았다. 당 내부적으로 보면 지도부에 대한 일종의 반기이지만, 외부의 시각으로 보면 제1야당의 결속력과 절박감의 부족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반바지와 카우보이 모자까지 쓰고 거리로 나가 후보를 지원한 모습이 한편에선 ‘쇼’라는 지적이 있지만, 그만큼 ‘뭐라도 한다’는 절박함에선 야당을 밀쳐냈다는 의견도 있다. 수도권 지역 선거 과정을 잘 아는 당내 한 인사의 말이다.
“통합한 이후 우리 당이 대의원도 없이 흘러가고 있다. 각 지역 대의원들은 지역위원장이 새로 뽑히면 승인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대의원이 없기 때문에 선거 이후 지도부가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지 않은 ‘자기 사람’을 지역위원장에 심어도 제어할 수 없다는 불만이 당원들 사이에서 있었다. 게다가 공천도 엉망이고. 당원 중에는 ‘우리 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정서가 있었다. 선거운동 등을 할 때 도당에서 인원 점검한다고 하면 잠깐 나왔다가 체크한 뒤 보이지 않기도 하고, 오라고 해도 ‘지금 지도부에 힘을 줘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경기 지역 의원들도 50여 명 중 날마다 선거운동에 출근한 사람은 10명 정도였고, 상당수는 간헐적으로 나오고, 아예 오지 않은 의원도 10명이 넘는다.”
이런 당내 사정은 당의 응집력과 자발성·창의성을 휘발시켜, 결과적으로 외부엔 야당으로서 매서운 맛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믿을 만한 대안적 의제도 적극 제시하지 못하는 정당으로 표출된다. 결국 계속된 야권 패배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려는 정당이냐?’는 물음에 속 시원히 답을 주지 못하는 야당의 무력함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인영 새정치연합 의원은 “물론 나도 책임이 있지만, 야당이 야당답게 똑 부러지게 한 게 없다는 인식이 공천 파동 등과 겹치면서 우리에 대한 지지가 강력하게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도 “당이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데 소홀했고, 새누리당 정권의 실정을 견제하는 선명 야당의 모습도 흐릿해졌다. 당내에는 계파정치의 폐해가 여전하다. 전체적으로 우리 당의 모습이 국민이 열망하는 개혁정치와는 거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이번 선거에서도 노출됐다. 세월호 특별법 관철을 위해 여당을 효과적으로 압박하지 못하면서도 선거 기간 내내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책임론 제기’에 기댔고, 세월호 이외에 야당이 새롭게 정책 의제를 발굴해 유권자를 끌어당길 요소를 만들지 못했다. 어떤 현안에 대한 반사이익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운데도, 그 길을 다시 걸어간 셈이다. 김태일 교수는 “여당은 선거 막판에 정국 안정, 의석 과반수 확보, 경제 살리기로 동력을 삼았는데, 야당은 세월호 이슈 외에 추가 동력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진짜를 보려면 2주간 지켜보라</font></font>심판론을 제기하는 주체의 부실함이 이번 선거에서 세월호 참사 심판·책임론조차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 이유라는 의견도 있다. 윤희웅 민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여전히 인사 실패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심판 정서가 있지만, 심판론이 작동하려면 심판을 하려는 야당이 기본적으로 대중적 신뢰를 얻는 상황이어야 한다. 하지만 심판을 (맡길) 도구로서 야당의 신뢰를 잃고 있는 게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나온 뒤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 ‘바닥에서 시작하려면 차라리 잘 졌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외적인 충격요법 없이는 제1야당의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엄존함을 보여준다. 김태일 교수는 ‘패배→비상체제→일상회귀→패배→비상체제’를 반복하는 제1야당의 순환을 떠올리며 기자에게 한 가지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제1야당의 쇄신·개혁 작업에 외부 인사로 참여한 바 있다.
“내가 보니까 (제1야당의) 집단적 기억력은 2주일이더라. 2주 동안은 성찰적 분위기를 보이다가, 보름이 지나면 분파(계파)적 이해가 슬슬 고개를 든다. 이번에 2주로 끝나지 않는지 잘 지켜보시라.”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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