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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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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의 미래,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

“기차는 간다”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철탑 농성 시작한 노조…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 처리 부결, 사태 장기화될 듯
등록 2013-04-26 22:13 수정 2020-05-03 04:27

“좀 일찍 오시지예. 좀전에 도청 철탑에 올라가셨습니더.”
병원 입구에는 휠체어가 흐트러져 있었다. 현관 밖에는 텅 빈 로비를 비추는 조명을 배경 삼아 노조원들이 삼삼오오 천막 안에 모여 있었다. 4월16일 밤 찾은 경남 진주시 중안동 진주의료원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7·8층에 모인 20명 남짓한 환자가 전부였다.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 지부장을 찾는다는 말에 2층의 텅 빈 상황실을 지키던 노조 관계자는 그렇게 말했다.

강수동 민주노총 진주지부장(왼쪽)과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 지부장이 지난 4월17일 오후 경남 창원시 사림동 경남도청 별관 옥상에 있는 방송용 철탑 위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

강수동 민주노총 진주지부장(왼쪽)과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 지부장이 지난 4월17일 오후 경남 창원시 사림동 경남도청 별관 옥상에 있는 방송용 철탑 위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다.

스텐트 두개 박고 오른 철탑

“아휴, 지병이 있으신데도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됐어요.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파요.” 한 노조 조합원이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진주의료원에서 21년 동안 운전원으로 근무한 박 지부장은 당뇨와 심근경색을 앓고 있다. 심장에 스텐트를 두 개나 박는 수술도 했다. 그러나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진주의료원 폐업 추진을 막을 방법을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되자 최악의 선택을 했다. 박 지부장은 강수동 민주노총 진주지부장과 함께 이날 밤 경남 창원시 사림동 경남도청 별관 옥상에 있는 방송용 철탑에 고공시위를 하러 올라갔다.

경남도의회가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던 지난주, 창원 일대는 ‘폭풍 전야’ 같았다. 지난 4월17일 오후 찾은 경남도청은 이미 입구 곳곳을 경찰버스가 가로막고 있었다. 도청과 길 건너 마주한 경남도의회 앞에는 의회의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을 막으려는 수백 명의 노조 조합원, 야당 관계자 등이 모였다. 본회의가 열리는 의회 회의장 문은 이미 경남도 지역 야당 도의원 모임인 민주개혁연대 회원들이 걸어잠그고 있었다.

박 지부장이 올라간 도청 별관 옥상은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있는 본관 창문에서 올려다보면 보이는 곳이다. 본관 5층 창문 앞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탑에 앉아 있던 그가 일어나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떤 잡음과 비난이 있어도 기차는 간다’고 말하며 홍 지사는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제가 지병이 있지만 그 생각을 막기 위해 여기 올라왔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이 얼마나 많은 불행을 만드는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전화기 안으로 훅훅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시간, 홍 지사는 본관 2층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 저녁 시민중재단을 대표해 안명옥 천주교 마산교구장과 권영길 전 국회의원이 곪아버린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의 돌파구를 찾겠다며 홍 지사에게 면담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도지사실로 들어가기 전 안 교구장은 “몇 가지 해결책을 가지고 왔는데 어떻게 얘기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을 맞은 홍 지사의 얼굴빛도 새카맸다. 안 교구장 등은 “안건 처리를 유보하고, 대화를 통해 공생하는 길을 찾아 시간 여유를 갖고 진주의료원 문제를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밤 홍 지사는 시민중재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진래 경남도 정무부지사와 경남도의회의 여야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협상을 하자고 제안했다.

한쪽에서 밤샘 협상을 벌이는 동안 도청 너머 도의회 앞에서는 경찰과 보건의료산업노조 조합원 등이 밤새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시위대는 상임위에서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원경숙·조우성·성계관 등 경남도 새누리당 의원들의 사진을 세워두고 밤새 촛불집회를 했다.

승인이 아닌 협의 수준이라 개정법률안이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진주의료원 폐업에 난색을 표하고 있지만, 경남도가 정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5월2일까지 휴업, 5월9일 임시회

진주의료원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알려진 4월18일 아침이 됐지만, 경남도와 경남도의회 여야 의원들의 협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후가 돼서야 김오영 국회의장의 중재로 경남도의회 여야 의원 대표들이 “해산 조례안은 오늘 상정하되, 논의는 두 달 뒤에 진행하자”는 절충안에 합의하면서 물꼬가 트이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의회 바깥에서는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새누리당 의원들과 시위대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 의회 밖에서 대기하던 새누리당 의원 17명은 절충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진주의료원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지난 4월18일 자정까지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이 상정되지 않으면서, 의원 3분의 1 이상이 따로 소집 요구를 하지 않는 한 임시회는 5월9일에 열리기 때문이다. 우선 경남도의회 여야 의원 대표들은 4월25일 임시회에서 조례안을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막판에는 홍 지사도 새누리당 의원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들이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점거를 풀고, 진주의료원 노조 등이 새누리당 의원의 등원을 저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경남도 차원의 논의가 더뎌지면서 진주의료원 문제가 더 꼬일 가능성도 커졌다. 현재 진주의료원은 5월2일까지를 휴업 기간으로 내건 상태다. 지난 4월19일에는 진주의료원 공중보건의들이 병실에 남아 있던 환자 18명에게 “진료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강제 전원을 종용해 그중 7명이 병원을 떠났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환자들도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국회와 보건복지부와의 갈등도 또 다른 변수다. 국회에서는 이르면 4월29일 지방의료원이 폐업할 때는 사전에 중앙정부와 협의를 거치도록 규정한 내용을 담은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본회의에 상정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진주의료원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개정법률안이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는 대신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회 개정법률보다 “도민의 뜻대로”?

거센 폭풍이 훑고 지나간 진주의료원 사태는 아무래도 춥고 긴 싸움으로 이어질 듯하다. 본회의장을 점거한 의원들도, 도청 옥상 철탑에 오른 이들도 쉽사리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경남도는 지난 4월16일 철탑에 오른 두 사람을 경찰에 고발했다. 박 지부장은 전화를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갈 거고요.”

진주·창원=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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