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난다. 축복이다. 기쁨에 들떠야 할 시간에,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있다. 해마다 지구촌에선 300만 명에 가까운 신생아가 생후 한 달 안에 목숨을 잃는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태어나고 채 24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생일이 제삿날이란 얘기다. 세계적인 인도지원단체 세이브더칠드런(SC)이 5월3일 펴낸 ‘제14차 연례 세계 모성 보고서’에서 ‘출생위험지수’(BRI·신생아 1천 명당 생후 24시간 안에 사망하는 비율)란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12년 새 산모 사망률 절반으로 줄었지만
지구촌 차원에서 보면, 1970년 이후 5살 이하 어린이 사망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1970년 한 해 모두 1200만 명의 5살 이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2011년엔 이보다 40%가량 떨어진 690만 명까지 줄었다. 같은 기간 지구촌 인구가 2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고무적이라 할 만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보고서에서 “1970년대 이전 어린이 사망률이 그대로 유지됐다면, 2011년을 기준으로 한 해 지구촌에선 무려 3100만 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별 국가를 놓고 따져보면, 변화의 폭은 훨씬 커 보인다. 1999년만 해도 르완다에서 태어난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은 5살 생일을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2011년 말을 기준으로, 르완다의 어린이 사망률은 20명 가운데 1명꼴로 줄었다. 말라위·방글라데시·네팔 등지에서도 5살 이하 어린이 사망률이 급격히 줄었다. 같은 기간 산모 사망률도 50%가량 줄었단다. 1990년만 해도 임신·출산 도중 목숨을 잃은 여성이 54만3천여 명에 이르렀지만, 2011년엔 약 28만7천 명까지 떨어진 게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다. 여전히 임신·출산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여성이 전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786명에 이른다. 하루 1만8900명가량의 어머니는 아기를 잃은 고통에 슬피 울고 있다. 지구촌 전역에서, 21세기에도 말이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지구촌에서 어머니가 되기에 가장 좋은 나라는 어디일까? 세이브더칠드런이 임신·출산 도중 사망률과 5살 이하 어린이 사망률, 교육 기간과 수입 정도, 여성의 정치 참여도 등을 종합한 자료를 보면 핀란드가 단연 1위다. 스웨덴·노르웨이·아이슬란드·네덜란드·덴마크 등 유럽 각국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공동 31위를 기록했다. 그럼 어머니가 되기에 가장 나쁜 나라는 어디일까? 176위를 기록한 콩고민주공화국이 최악이다. 소말리아·시에라리온·말리·니제르·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각국도 최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BRI 순위는 어떨까? 1천 명의 신생아 가운데 18명이 생후 24시간 안에 목숨을 잃고 있는 소말리아가 1위다. 이어 콩고민주공화국·말리·시에라리온이 각각 1천 명당 17명꼴로 나타났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도 1천 명당 16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앙골라·코트디부아르·차드·부룬디·기니비사우 등도 신생아 1천 명 가운데 15명이 태어난 날을 넘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아기가 태어나기에 나쁜 나라는, 어머니가 되기에도 나쁜 나라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해마다 숨지는 5살 이하 어린이는 690만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43%에 이르는 300만 명가량이 생후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한 신생아다. 신생아 사망자 가운데 200만 명은 생후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 절반인 100만 명가량이 생후 24시간 안에 목숨을 잃었다. 5살 이하 어린이 사망자의 약 15%에 이르는 수치다. 태어난 날이, 아기에겐 가장 위험한 날이다.”
조혼한 저체중 산모가 조산한 미숙아
가난해서 죽는다. 생애 첫날 목숨을 잃는 신생아의 80%가량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와 남아시아 각국에 몰려 있다. 특히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14개국은 아기가 태어나기에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이 지역 평균 BRI는 12, 생후 24시간을 넘기지 못하는 신생아가 1천 명에 12명꼴이란 얘기다.
선진개발국에서도 5살 이하 어린이 사망자의 30%가 생애 첫날 목숨을 잃는다. ‘태어난 날이 가장 위험한 날’이란 공식은 지구촌 어디서나 마찬가지란 얘기다. 다만, 수치가 많이 다르다. 키프로스·에스토니아·아이슬란드·룩셈부르크·싱가포르·스웨덴 등 6개국은 BRI가 0.5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태어난 날 목숨을 잃는 신생아가 2천 명에 1명꼴이란 얘기다.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는 지구촌 인구의 12%가 살고 있다. 해마다 이 지역에선 29만7천 명가량의 신생아가 태어나는 날 숨을 거둔다. 지구촌 출산 당일 사망 신생아의 38%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5월 펴낸 ‘너무 이른 출산’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보츠와나·모리타니·모잠비크·짐바브웨 등지에선 신생아의 15%가량이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난 ‘조산’이다. 같은 자료를 보면, 미숙아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 모리타니에선 신생아의 34%가 체중 미달이고, 니제르에선 그 비율이 27%로 나타났다.
조산과 미숙아 비율이 높은 것은 산모의 건강 상태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 BRI가 높은 나라일수록 산모의 영양실조 비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세프의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보면, 사하라사막 이남 각국 여성의 10~20%는 저체중 상태다. 특히 에티오피아(24%)·마다가스카르(28%)·에리트레아(38%)에서 저체중 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조혼에 따른 조기 출산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사하라사막 이남 각국은 지구촌에서 조혼 비율이 가장 높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차드·니제르 등지에선 20대 초반 여성의 3분의 2가 18살 이전에 결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세프는 2011년 7월 펴낸 ‘폭력과 착취, 학대로부터 어린이 보호’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미성년인 상태로 결혼하는 소녀가 14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임신·출산 과정에서 아무런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보고서에서 “소말리아에선 산모의 74%가 임신 기간에 아무런 진료를 받지 못한다”며 “니제르와 남수단에선 산모의 80%가 의사나 조산사 등 숙련된 인력의 도움 없이 홀로 출산을 한다”고 지적했다.
한 해 200만 명 신생아를 구하는 방법
남아시아 일대의 사정은 나라별로 격차가 크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선 생애 첫날 숨지는 신생아가 1천 명에 13명꼴로 높은 반면, 몰디브와 스리랑카에선 1천 명에 2.5명꼴로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지역 전체를 놓고 보면, 출생 당일 숨지는 신생아는 1천 명에 11명꼴이다. 해마다 남아시아에서 태어난 날 곧바로 숨지는 아기들이 42만 명이나 된단다. 이 지역에는 지구촌 인구의 24%가 살고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목숨을 잃은 아기들의 40%가 몰린다는 얘기다.
아기들이 숨지는 원인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각국과 마찬가지다. 남아시아 일대 역시 조산 비율이 평균 13.3%로 높다. 산모의 영양 부족으로 인해 신생아의 28%가 미숙아로 태어난다. 조혼 비율 역시 높아서, 18살 이전에 결혼하는 여성이 한 해 3400만 명에 이른단다.
원인을 알았으니, 할 일은 하나다.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어떻게든, 살려내야 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보고서에서 “임신 중 건강관리와 조산사·보건요원 등 숙련된 인력을 통한 안전한 출산, 감염 예방과 모유 수유 등 산후 건강관리만 해도, 한 해 지구촌 전역에서 200만 명가량의 신생아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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