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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차베스가 기가 막혀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 재검표에 이어 국회에서 주먹다짐 “주요국 가운데 투표 결과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
등록 2013-05-11 17:52 수정 2020-05-03 04:27

베네수엘라 상황이 점입가경이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지난 4월1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사회당의 니콜라스 마두로 후보가 당선됐을 때만 해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지미 카터가 “세계 최고” 인정한 시스템
하긴, 접전이었다. 득표율 격차가 1.83%포인트, 표차도 27만3천여 표에 불과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투·개표 방식이 워낙 선진적이어서, 결과가 뒤집히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전자투표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는 베네수엘라에선 개표 역시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진다. 퇴임 뒤 전세계 90여 나라를 돌며 선거 감시 활동을 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단연 세계 최고”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 야권은 재검표를 요구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이를 받아들였다. 재검표 결과는 마두로 대통령 당선 확정으로 마감됐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재검표 결과 ‘보이콧’을 선언했다. 급기야 노동절이던 지난 5월1일 베네수엘라 국회에선 새 대통령을 인정하라는 여당 의원과 이를 거부하며 의사 일정을 막아선 야당 의원이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등 외신이 전한 이날 상황을 종합해보자. 본회의 시작과 함께 집권 사회당 출신의 디오스다도 카벨로 국회의장은 새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면 발언권을 주지 않겠다는 경고를 했다. “국회의원 선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진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국회의원 선거 결과도 인정될 수 없다”는 게다.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호루라기와 나팔을 불고, 항의 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내거는 것으로 응수했다. 분위기가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날 머릿수에서 밀린 야당 의원들은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든 채 의사당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것으로 ‘막장 드라마’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은 5월2일 “야당 쪽이 의사당 난투극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전했다.
차베스 정권 시절부터 베네수엘라 상황을 집중 모니터해온 미 경제정책연구소(CEPR)가 지난 4월26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선관위의 재검표는 사실 두 차례 진행됐다. 앞서 베네수엘라 선관위는 4월14일 투표 마감 직후 전체 3만9303개 투표기 가운데 53%에 이르는 2만825개를 무작위로 선택해, 야권 참관인의 입회 아래 수작업으로 개표를 진행한 뒤 전자개표 결과와 비교했다. ‘에러’는 발견되지 않았다. CEPR는 이렇게 지적했다.
“마두로-카프릴레스 두 후보의 격차인 27만2천여 표를 뒤집으려면, 적어도 50개 투표기에서 수개표와 전자개표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야 한다. 2만825개에서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남은 1만8478개 투표기에서 오작동 사례가 50건 이상 발견돼야 한다는 얘기다. 통계학적으로 계산해보면, 재검표 이전부터 4월14일 개표 결과가 뒤집힐 확률은 2만5천조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 뒤집힐 확률은 2만5천조분의 1
베네수엘라 야권은 5월2일 대선 재검표 결과에 대한 법적 효력을 다투기 위해 법정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도 결과가 뒤집힐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다. 야권 단일후보로 대선에 나섰던 엔리케 카프릴레스 미란다주 주지사는 “친정부 판사들이 장악한 대법원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니 궁금하다. 재검표에, 소송에,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미 인터넷 매체 는 이날 “주요국 가운데 4월14일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라고 새삼 지적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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