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갖춰야 할 필수적 의료체계는 사람의 생애주기와 생활방식만큼이나 다양하고 그 범위도 넓다. 생명의 잉태와 출산에서 시작해 질병 예방과 관리, 응급의료 등 급성질환 진료, 당뇨병 등 만성질환 진료와 합병증 예방, 재활치료, 임종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에까지 이른다.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병원이 늘어날수록 정작 불에 데었을 때, 배가 아플 때, 아이가 열이 날 때, 임종을 앞두고 고통에 시달릴 때 갈 만한 병원의 수는 줄어든다. 의료 상업화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충남 서산의료원의 보호자 없는 병실. 병원에서 인건비를 지원하는 간병인이 보호자 없는 환자를 돌보는 병실로, 민간 병원과 차별화되는 공공의료원의 대표적 사업이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는 평소 단골 의원에서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지역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고, 중증질환일 때는 지역 의사의 도움을 받아 대학병원으로 신속히 옮기고, 긴급한 치료를 마치면 다시 지역 병원으로 돌아와 요양 및 재활치료를 받는 식의 순환적 의료체계가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고급 의료’란 이처럼 각 단계에 적합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그 과정에서 환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의료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상에 치우친 잠꼬대 정도로 치부되기 십상이지만, 여러 유럽 국가들은 이미 지역의료 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 지역 병원을 가운데(2차) 두고 그 앞뒤로 1차 단계엔 단골 의사가, 3차 단계엔 대학병원이 있어 기능을 서로 분담하고 협력하며, 이에 대한 비용을 국가가 통제하는 체계다.
수익 높이기에 골몰하는 상업적 병원들로는 지역의료 체계를 꾸릴 수 없다. 지역의료 체계의 목적은 주민 건강과 안전 보장, 의료서비스의 지역 내 충족이라는 공공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정된 예산에도 불구하고 필수 의료 가운데 어떤 분야도 소홀히 다룰 수 없고, 응급의료 등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까지 높은 수준으로 관리돼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앞으로 상업적 의료의 폐해를 줄이고 지역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제도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지방의료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역 공공병원이다. 전국 각 지역에 34개가 있고, 100년 안팎의 오랜 역사를 가진 곳도 많다. 대부분의 지역 공공병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정부의 무관심과 지방자치단체의 빈약한 지원 탓에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사립병원이 기피하는 비수익 분야인 응급의료, 감염병 진료, 호스피스를 충실히 제공하는 등 공익적 의료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공공병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노인 비중은 어느 국가보다 높아질 것이다. 노인 의료비가 급격히 증가해 2020년에 4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학계 보고는 가히 재앙에 가깝다.
지금보다 의료서비스의 비용 대비 효과를 높여서 의료비 증가 추세를 막지 않으면 국가적 위기마저 닥칠 수 있다. 공공성에 충실한 의료체계를 조성해 비용의 사회적 통제를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만이 대안이다. 그 지렛대가 될 기관이 바로 공공병원, 특히 지역 공공병원이다. 비록 당장은 기능이 미약하더라도 체계적인 기능 분담과 협력 기반이 마련된다면, 앞으로 각 지역 의료체계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공공병원을 폐쇄하고 축소하는 것은 소중한 자산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역 공공병원을 지금보다 오히려 늘리고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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