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토머스 엘리엇은 노래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버려진 땅에서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의 시작에 대한 반어적 표현일 텐데, 한반도의 4월은 최근 몇 년 새 그야말로 잔인했다.
2009년 4월5일 북한은 ‘광명성 2호’를 발사했다. 2012년 4월13일엔 ‘광명성 3호’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때마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요동쳤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한 달간 △불가침 합의 폐기△비핵화 선언 백지화 △판문점 연락통로 차단 △(전시를 뜻하는)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 등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온 북한은, 4월 들어 더욱 거침없이 움직였다.
지난 4월3일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문을 닫아건 북쪽은, 이틀 뒤인 5일엔 러시아를 포함한 평양 주재 외국 공관들에 “4월10일 이후엔 안전을 담보(보장)할 수 없다”며 철수를 권했다. 이어 4월8일 개성공단 ‘잠정 폐쇄’를 전격 발표하더니, 이튿날엔 한술 더 떴다. “서울을 비롯해 남조선에 있는 모든 외국 기관들과 기업들, 관광객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사전에 대피 및 소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을러댄게다.
의 보도를 종합하면, 북쪽 입장에서 4월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달이다. 4월9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취임 20주년이다. 이틀 뒤인 4월11일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취임 1주년을 맞는 날이다. 북에서 ‘태양절’로 기리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은 4월15일이다. 남쪽과 미국 등을 향해 온갖 위협을 퍼부었지만, 정작 평양이 ‘잔치 분위기’로 흥청거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잇따른 북의 위협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따로 있다. 지난 4월4일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밝힌 “미국에 대한 군사적인 실전 대응 조처를 연속적으로 취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북의 발표 직후, 중거리탄도탄(IRBM)인 무수단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가 동해안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첩보 위성에 잡혔다. 마치 시위라도 하듯, 북한은 이 사실을 부러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평양 주재 외교관들의 철수 시점은 ‘4월10일’로 못박았다. 4월15일은 김일성 주석 102주년 생일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특정 기념일에 맞춰 곧잘 ‘축포’를 쏘아올렸다. “4월10일부터 15일 사이에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나설 것”이란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보란 듯이, 무수단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사대에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북이 무수단 발사를 실행에 옮길 경우 눈여겨볼 부분은 크게 3가지로 모아진다. 첫째, 미사일 발사에 기존처럼 고정식이 아닌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하느냐 여부다. 고정식 발사대를 이용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려면, 연료 주입 등 발사 준비 초기 단계부터 위성에 노출된다. 반면 이동식 발사대를 활용하면 미리 연료 주입을 끝낸 상태에서 바로 발사대에 올려 쏠 수 있다. 그만큼 ‘노출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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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IRBM급인 무수단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2500~4천km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령인 괌이 사정권 안에 포함됨을 뜻한다.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미국 영토를 직접 겨냥하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셋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대기권 탈출 우주공간 항속, 대기권 재진입 등 3가지다. 지난 2월 ‘은하 3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북은 대기권 밖으로 위성을 내보내 지구궤도를 항속하게 하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빠진 건 ‘재진입’ 기술 하나뿐이다. IRBM급인 무수단 역시 재진입 기술이 사용된다. 결국 무수단발사를 통해 북은 ICBM 개발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다는 얘기다.
조금 다른 평가가 없는 건 아니다. 유도무기 체계 전문가인 국방부 관계자는 “무수단 미사일은 이미 2007년 전력화돼 있는 상황이다. 이미 그때부터 재진입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재진입 기술에서 IRBM과 ICBM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속도다. IRBM은 대기권 재진입시 속도가 마하 15 정도지만, ICBM은 마하 20 이상이다. 따라서 탄두가 견뎌내야 할 온도의 차이가 크다. IRBM 실험에 성공하더라도, ICBM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핵실험에 성공한 북쪽이 ICBM 능력까지 갖추면, 미국으로선 ‘결단’을 내려야 한다. 북에 대한 선제타격은 동맹국인 한국·일본과 주둔 미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이미 1993년 북핵 위기가 시작됐을 때도 포기했던 전술이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은 “남는 것은 대화뿐이다. 북의 ICBM 능력이 현실화하면, 미국으로선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이 ‘내친김’에 무수단 발사 실험을 강행할 것이란 해석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선가? 지난 3월 한-미 연례 합동군사훈련인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시작된 이후, 북의 위협이 나올 때마다 미국은 최첨단 무기를 등장시키며 ‘무력 시위’의 강도를 높였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3월8일과 19일, 그리고 25일엔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출격한 ‘B52’ 전략폭격기가 국내에서 가상 목표물 타격훈련을 벌였다. 3월 20일엔 핵추진 잠수함 샤이엔호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28일엔 ‘B2’ 스텔스 폭격기가 경기도 오산 미국 공군기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3월31일엔 ‘F22’ 스텔스 전투기 편대가 속속 한반도로 날아들었다.
자극적 행동 삼가기 시작한 미국
그랬던 미국이 4월 들어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지 리틀 미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4월2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반도의 ‘온도’를 조금 낮추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이튿날인 3일 이 복수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 전한 기사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지난해 12월 북의 로켓 발사 직후, 오바마 행정부는 연례 한-미 군사훈련 기간에 북이 도발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북의 도발로 한반도에서 긴장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지 않도록, 미국이 일정한 범위에서 이를 통제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위협에 ‘독자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에 따라 북의 도발이 나올 때마다, 미국의 군사적 위력을 과시하도록 하는 ‘각본’(플레이북)을 마련해 실행에 옮겼다. …이 과정을 주도한 것은 정보 파트였지만, 북의 반발이 예상 수위를 넘어서면서 ‘지나치게 자극해선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 미국 국방부는 분명 ‘방어적’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cnn> 등이 지난 4월1일 “미 해군이 요격용 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 구축함 2척과 탄도미사일 탐지용 해상 기반 이동식 레이더(SBX1)를 한반도에 가까운 해역으로 이동 배치 중”이란 보도를 내놓자, “구축함은 ‘방어용’이며, 레이더 이동은 일상적인 조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4월5일엔 ICBM급 ‘미니트맨3’ 미사일의 정기 성능 검사(발사 실험)를 돌연 연기했다. “미묘한 때에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란 게 미 국방부 쪽의 공식 설명이었다.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하면, 이미 상당히 위험한 한반도 상황에 (위험을) 추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핵 없는 한반도를 목표로 대화하는 것이다. …(대화의) 조건은 간단하다. 북한이 국제적 의무와 국제 표준, 그리고 북한이 이미 합의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비핵화 방향으로 간다면 대화가 시작될 것이다.”
지난 4월12일 취임 뒤 처음으로 방한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윤병세 외교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강조했다. ‘북의 변화’란 기존 전제를 고수하긴 했지만, 분명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점에 방점이 찍혔다. 한반도 정세가, 바야흐로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대체 북한은 왜 저러나” 물어야
지난 5년여 동안 한반도에선 위기가 켜켜이 쌓여왔다. ‘누적된 위기’가 오늘의 정세를 만들어냈다. “대체 북한은 왜 저러느냐? 원하는 게 대체 뭘까?” 물어야 답을 얻는다. ‘독수리 훈련’은 4월30일까지 이어진다. 미국은 ‘자극적 행동’을 삼가기 시작했다. 4월13일 0시 현재까지, 북은 무수단 미사일을 쏘아올리지 않았다. 설령 발사를 강행한대도, 유엔 차원의 제재와는 따로 대화는 여전히 필요하다. 대화는,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걸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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