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이후 당이 돌아가는 걸 보면서 절망을 느끼고 있죠.”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지역 민심’을 묻자 ‘절망’이란 단어를 썼다. 그의 지역구는 ‘민주당의 심장’이라 불리는 광주다. 당내 계파에 대해선 “민주당을 망치는 암적 존재”라고 했다. 5월4일 열리는 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이 의원의 ‘위치’는 독특해 보인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관세청장, 국세청장, 청와대 혁신관리수석, 행정자치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을 했다. 18대 총선 때 처음 배지를 달았고, 당 대변인과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출신 모임인 청정회 회장도 했다. 재선 의원으로 당 대표 경선에 나서 ‘무모한 도전’이란 얘기를 듣곤 한다. ‘친노 계파 아니냐’라거나 ‘관료출신 호남 의원’이란 말도 따라붙는다. 이 의원을 지난 3월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계파와 호남 문제를 두루 물었다. 그는 출마 이유로 ‘혁신 리더’ ‘정책 실력’ ‘탈계파’와 함께 “호남의 지지를 전국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대표여야 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번 전대에서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면 민주당은 망한다”고 말했다.
953호 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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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전문 영역이라 의지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나는 공직에서 혁신을 담당한 경험이 있다. 당을 봉사형 조직으로 만들겠다. 현재 당 조직은 권력정치 시대의 선거용 조직이다. 야당의 예비내각을 만들어 정부·여당과 정책 경쟁을 하겠다. 세 번째는 계파 청산이다. 주류에서 비주류로 바뀌는 게 혁신인가? 그건 사람만 바뀌는 것이지 당의 체질이 바뀌는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견제 야당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동안 민주당은 물리적·충동적 견제만 했다. 견제는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해야 힘이 생긴다.
지금 민주당은 더할 수 없는 위기다. 그게 바로 혁신을 할 수 있는 힘이다. 혁신을 하면 내부 구성원들은 불편해진다. 민주당은 지지율이 떨어져서 불편한 적은 있었지만, 쇄신을 해서 불편한 적은 없었다. 안 했다는 얘기다. 지금은 혁신하지 않으면 아예 버림받는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내가 친노라는 건 팩트다. 자랑스럽다.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친노 계파 자체가 아니라 친노 패권주의다. 자기들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게 패권주의다. 나는 친노 패권주의에 가담한 적이 없다.
꼭 그런 의미는 아니다. 당내에 나쁜 편견이 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때 무조건 친노 때문이라는 식이다. 물론 친노 패권주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친노가 그런 것은 아니다.
호남인들은 목숨 바치고 논밭 팔아 민주당을 키워왔다. 그러나 돌아온 게 무엇인가? 오히려 인재 등용은 안 되고 경제는 낙후했다. 민주당은 당이 어려울 때만 ‘호남은 당의 심장이다, 어머니다’라고 했다가, 좀 살 만해지면 ‘호남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호남을 외면했으니 좋게 볼 리 있겠나.
일부 정치인들이 호남 기득권을 향유한 건 사실이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니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실력을 키우는 일보다 공천 받는 데만 전념하는 성향이 있다. 나는 지역 토론회에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호남민 여러분, 민주당을 무조건 사랑하지 마십시오. 호남에서 민주당 독점 구조가 해소돼야 민주당 정치인들의 경쟁력이 생기고, 그래야 호남도 살아나고 민주당이 전국 정당이 됩니다’라고. 민주당이 정말 노력한다면 호남은 민주당을 다시 안을 것이고, 노력을 안 하면 버려야 한다.
민주당이 어려우니까 미워도 이번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논리는 더 이상 안 된다. 일단 내가 당 대표가 되면 ‘한 번 믿어볼까. 민주당이 좀 바뀌려나’라고 생각할 거다. 이제는 달라질 테니 떠나지 말고 좀 기다려달라,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달라고 해야 하는 거다.
지난해 총선 때 호남민들의 정서와 달리 중앙당 전체 전략 차원에서 호남을 야권연대 전략공천지로 삼았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가치가 다른 집단과 연대하는 건 당이 망하는 길이다. 폐쇄주의나 순혈주의가 당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면은 있지만, 야권연대 차원에서 당선된 분들이 민주당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겠나? 그런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신당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5월4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혁신 전대로 치러지고, 혁신 대표가 뽑히고, 그 대표가 국민에게 어필하는 혁신 프로그램을 제시한다면, 호남은 민주당을 지켜보게 될 거다. 일방적으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를 지지하거나 신당 쪽으로 쏠리지 않을 거고, 민주당이 잘할 경우 안철수 신당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여론과 민심은 다르다. 민주당이 하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니까 안철수 신당이 나오면 지지하겠다는 게 여론이라면, 민심은 강한 야당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특히 호남인들은 매우 역동적이고 정확한 정치적 판단을 해왔다. 민주당과 안 전 교수에 대해 누구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지 않고, 서로 경쟁시킬 것이다. 물론 이건 좋은 시나리오일 때 얘기다. 결국 민주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호남에서 민주당 독과점을 이용해 선수만 쌓는 것은 호남 정치의 동맥경화를 가져온다. DJ라는 거목 때문에 인물을 보는 눈이 높은데, 정치인을 보는 시각도 좀 바뀌면 좋겠다. 대선 후보나 당 대표 말고도 법안을 잘 만들고 예산 심의, 국정 감시 잘하는 좋은 정치인도 많다. 물론 호남 정치인들이 기대에 부응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우리끼리 경쟁하다보니 같은 호남 출신을 경쟁자로만 여기는 것도 문제다.
호남의 지지가 있었을 때는 호남 대표가 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호남의 지지가 없지 않나. 호남 민심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는 게 먼저다. 심장이 살아나야 몸 전체가 살아나는 거다. 호남 출신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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