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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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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월세의 쓰디쓴 ‘끝물’

등록 2013-03-07 22:24 수정 2020-05-03 04:27

집값이 떨어진 자리에 ‘수익형 부동산’이라는 달콤한 꿈이 피어났다. 고용이 불안하고 월세 시장이 커지자 임대주택 월세를 받아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출렁인 것은 오피스텔 분양이다. 국토해양부 통계를 보면 오피스텔 건축허가 면적은 2011년 287만5천㎡에서 2012년 433만2천㎡로 50.7% 늘었다. 같은 기간 아파트 허가 면적은 8.7% 늘었다. 지금 분양 중인 서울 시내의 주요 역세권 대단지 오피스텔도 1500가구가 넘는다.
 
“분양 뒤 1~2년은 사정이 괜찮지만…”
그러나 부동산 시장에서는 오피스텔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얼마 전 분양을 마친 서울 공덕역 오피스텔 앞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갈수록 분양가는 높아지는데 오피스텔끼리 경쟁이 치열해져 월세 임대료는 제자리 수준”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분양 뒤 1~2년은 사정이 괜찮다. 집을 구하는 사람들은 같은 값이라면 새로 지은 오피스텔을 찾는다. 기존 오피스텔 소유자들은 어쩔수 없이 월세를 5만~10만원 내리게 된다. 지금은 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월세가 내리지만 계속 오피스텔이 들어선다면 새로 지은 오피스텔도 몇 년 뒤를 장담하지 못한다.”

오피스텔을 분양받을 당시에는 전세 보증금을 기준으로 수익률을 책정했다면 실제로는 그것의 70%, 사정에 따라서는 50% 정도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충고다.

오피스텔은 주거용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수익을 올리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온나라 부동산정보 통합포털(www.onnara.go.kr)에서 발표하는 월세 이율 조사를 통해 추측해볼 수는 있다. 월세 이율은 전세금에서 보증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이율이다. 월세 비율이 크게 늘기 전 월세 이율은 통상 1%였다. 전세 보증금 1천만원을 올려주는 대신 월세 10만원을 내는 식이다. 2012년 2월과 비교하니 수도권 월세 이율은 0.88%에서 0.85%로 낮아졌다. 특히 임대료가 높은 강남의 월세 이율은 0.7%로 1년 새 0.1%가 줄었다. 오피스텔을 분양받을 당시에는 전세 보증금을 기준으로 수익률을 책정했다면 실제로는 그것의 70%, 사정에 따라서는 50% 정도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충고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김종철(50·가명)씨는 2년 전 살던 집의 전세를 빼서 오피스텔 3채를 샀다. 자신도 월세로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이 비는 것을 막으려면 주변보다 월세를 낮춰야 했다. 김씨는 3채를 모두 부동산에 매매 의뢰해놓은 상태다. 오피스텔 수익률이 이렇게 줄어든 것은 무엇보다 분양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강남역에서 분양하는 한 오피스텔 52.8㎡형(실제 전용면적 25.8㎡)의 분양가는 2억7800만원이다. 분양사 쪽에서는 오피스텔을 임대하면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100만~12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익률은 4% 중반쯤으로 은행 금리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수익형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1인 가구를 위한 주택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점도 문제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부동산 칼럼을 연재하는 한상분씨는 “수익형이 대세라는 최근 트렌드에 취해 오피스텔 가격이 너무 오르고 임대 가격은 그에 맞춰 올라주지 않고 있다”며 “한 사람이 쓰는 거처로 10평 남짓한 공간에 한 달에 100만원 넘는 월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형 주택을 장만해 월세 수익을 노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익형 부동산은 위험성이 높은 상품이라는 점을 경고한다. 지난해 분양한 한 오피스텔 모델하우스에 모인 사람들. 건설사 제공

소형 주택을 장만해 월세 수익을 노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익형 부동산은 위험성이 높은 상품이라는 점을 경고한다. 지난해 분양한 한 오피스텔 모델하우스에 모인 사람들. 건설사 제공

 

거대 오피스텔과 경쟁하기 벅차

오피스텔에서 차오르는 끝물은 도시형 생활주택(85㎡ 이하의 소형 공동주택)으로 밀려왔다. 서울 마포부동산을 운영하는 서영석씨는 “정부에서 도시형 생활주택에 각종 혜택을 주자 골목골목 초소형 공동주택 짓기가 붐이다. 그러나 대단지 오피스텔도 임대 경쟁이 치열한 마당에 원룸 주택들은 공실이 생기기 일쑤”라며 “월세 수익의 꿈을 꾸고 도시형 생활주택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용산에 사는 이형석(45·가명)씨는 한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분양광고를 보고 같은 동네의 전용면적 33㎡가 조금 넘는 도시형 생활주택을 2억원에 분양 받았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 100만원 정도로 세를 주면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역세권 오피스텔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이씨는 결국 60만원으로 월세를 크게 내리고 자신이 분양받았던 금액보다 낮춰서라도 집을 다시 팔려 하고 있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 시대에는 주택의 감가상각이 예전보다 훨씬 매섭게 적용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승준(62·가명)씨는 몇 년전 살던 아파트를 팔고 대출을 보태 서울 청파동에 다세대주택을 구매했다. 대지 79.2㎡ 정도의 작은 집이다. 정씨는 이 집이 대학 바로 앞에 있는 점을 고려해 원룸 3개를 지닌 다가구주택으로 개조했다. 퇴직 뒤 월세와 연금으로 생활을 꾸릴 요량이었다. 대출금을 줄이려고 정씨와 가족들도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개·보수 비용이 계속 들어갔다. 매달 월세를 받아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서영석씨는 “노후 대책으로 월세가 나오는 주택을 찾는 중·노년층이 많지만 일반 주택도 크게 올라 그런 수요를 충당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시장이 바뀌었다. 재개발 시장에서 큰 땅 주인만 유리한 것처럼 월세 시장에서도 작은 집 주인은 얻을 게 별로 없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과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등 부동산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부동산 수익률은 자본수익률과 임대수익률로 나눌 수 있다. 임대수익률이 보장된 상태라 하더라도 집값이 내리는 추세에서 자본수익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적은 자본으로 살 수 있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은 위험성이 높은 수익형 부동산이기 때문에 그 위험성도 감당할 수 있는 소득과 자본을 지닌 사람들이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월세를 받겠다며 적은 돈으로 주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지가 넓지 않은 셈이다.

“부동산, 그들만의 리그 될 것”

새로 집을 사는 것은 그렇다 쳐도 오래전부터 집을 가지고 있던 집주인들에게는 월세 시장이 넓어지는 게 좋은 일이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한상분씨는 “저금리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금리 이상을 거둘 수 있는 부동산은 안정적 투자 수단이 될 것”이라며 “월세는 집값 하락의 방어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박원갑 전문위원은 “지금까지는 전세 보증금이 집값 하락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2006년에도 집값에 대한 기대가 부풀자 임차인들이 갑자기 매매 수요로 전환했다. 전세가 대세일 때는 무주택자들이 매매 시장으로 들어올 문턱이 낮다. 그러나 월세는 그게 되지 않는다. 집을 가진 사람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이 크다. 그것도 기존 세대의 리그가 된다”고 했다. 신규 구매 수요가 없는 부동산 시장에서 가격 불안 요인이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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