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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을 금치 못할 것들…

인터넷 본인확인제, 헌재의 무려 ‘전원일치’ 위헌 결정부터 ‘박정근 트위터 농담’에 극악한 유죄 선고까지…심사위원 8명이 좋은 판결의 이면 들추고 나쁜 판결 ‘까댄’ <한겨레21> 주최 ‘사법부 옆 대나무’
등록 2012-12-21 20:06 수정 2020-05-03 04:27

2012년 인터넷에서는 ‘대나무’ 바람이 불었다. 출판 노동자, 정보기술(IT) 노동자, 영상 노동자 등이 열악한 노동 현실에 대해 악악거리는 트위터 계정이 바로 대나무다. 대나무 바람이라고 해도 그리 시원한 바람은 못 되는 셈이다. 에서 ‘사법부 옆 대나무’를 오프라인에 개설했다.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 8명이 12월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여 사법부를 대나무 쪼개듯 파고들었다. 다른 대나무 바람과 달리 아주 시원하다. 파죽지세가 이런 거다.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들이 12월6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 모였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추천·심사 작업의 꼭지를 따는 날이었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종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판결문을 넘겼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들이 12월6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 모였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추천·심사 작업의 꼭지를 따는 날이었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종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판결문을 넘겼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사회 2012년 최고의 판결 얘기를 해보자. 후보로 인터넷 본인확인제 위헌 결정(헌법재판소)과 일제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 배상 책임 인정 판결(대법원)이 올랐다.

홍성수(숙명여대 법대 교수·이하 홍) 사법부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선도적으로 치고 나가고, 입법부나 행정부가 하지 않는 일을 해주는 것이다. 인터넷 본인확인제 위헌 결정이 그런 예라고 본다.

한가람(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이하 한) 본인확인제는 모든 국민이 인터넷실명제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관행이었다.

송소연(진실의 힘 이사·이하 송) 우리 사회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본인 확인이 너무 많다. 시민들도 주민등록번호를 무조건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번 결정이 너무 늦기는 했지만 굉장한 의미가 있다.

양홍석(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이하 양) 위헌 결정이 나오고 막걸리 파티를 했다.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이 본인확인제 위헌 결정을 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웃음)

최재홍(녹색법률센터 변호사·이하 최) 이명박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압박이 많았다. MB 5년이 끝나는 시점에 위헌 결정이 나와서 아쉽다.

사회 최 변호사는 본인확인제가 아니라 강제징용 배상을 최고의 판결로 추천하지 않았나? 의미 있는 판결이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과거사 정리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봤다. 지난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본권을 인정한 헌재 결정이 최고의 판결에 뽑혔다. 본인확인제를 선택한 다른 심사위원들의 주류적 견해에 바로 편승하기로 했다. (웃음)

김보라미(법무법인 나눔 변호사·이하 김) 강제징용 사건은 나 같으면 불가능하다고 안 맡았을 것이다. 굉장히 어려운 사건이었다는 점이 강조됐으면 싶다. 대법원이 정책적 판단을 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검찰을 ‘쫄게’ 한 용산 판결

사회 검찰이 용산 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대법원)이 2010년에 이어 또다시 후보로 올랐다.

용산이든 천안함이든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 규명이 법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다. 검찰 내부의 안이한 인식에 철퇴를 가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법원을 통해 사실관계를 재구성한다는 측면에서도 필요한 판결이다.

법원의 공개 결정에 검찰이 불복하고 깽판을 놓은 사건이다. 검찰이 꼴통짓을 한 것이라 판결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원래 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가 예외여야 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이 판결을 1순위로 추천했다. 형사사건을 하다 보면 수사기록 비공개 때문에 많이 싸우게 된다. 그런데 이 판결이 나오면서 검사들이 느끼는 압박이 상당한 것 같다. 검사들한테도 ‘이런 판결 나온 거 모르시나요’라고 말하면 움찔한다.

형사사건 피의자의 권리, 방어권 측면에서 수사기록만 쉽게 열람할 수 있어도 큰 도움이 된다.

사회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역시 2010년에 이어 또 올라왔다. 사법부 말을 안 듣는 건지, 사법부의 영이 안 서는 건지….

굉장히 오래된 사건이고 불법임이 자명한 사건이다. 7년이나 끌었다. 현대차 하청노동자 8천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파견노동자 전체의 문제다.

안은정(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이하 안)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판결이다. 이미 한 차례 올해의 판결로 선정됐더라도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에서 한 번 더 선정해보자.

사회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파업과 관련해 대법원이 업무방해 혐의를 무죄라고 선고했다.

1·2심 때는 언론에서 기사화가 많이 되더니 대법원 판결은 전혀 기사가 안나오더라.

파업할 경우 법원에서 업무방해죄를 쉽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업무방해죄는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

업무방해죄는 노동계의 국가보안법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보다 오히려 인천지법 하급심 재판부를 더 칭찬해야 한다고 본다.

 

전자우편, 7년과 1년의 차이

사회 네이버 등 포털사가 수사기관에 개인의 통신 자료를 마구 제공하는 관행에 제동(서울고법)을 걸었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보여준 판결이다.

재판장을 잘 만났나?

의미 있는 판결이지만 법리가 너무 제한적이다. 줄타기를 한 느낌이다. 이른바 ‘회피연아 동영상’에 대해 유인촌 전 장관이 고소를 하며 시작된 사건인데, 해석하기에 따라 포털사가 통신 자료를 제공하는 근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판결이 될 수도 있다.

사회 기간을 정하지 않고 무제한적으로 전자우편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서울중앙지법)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전자우편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너무 광범위해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종을 울린 것으로 본다면 가치가 있다. 처음일 것이다.

전자우편 압수수색은 당사자가 아니라 포털 등에서 이뤄진다. 당사자 본인은 압수수색을 참관할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중요한 판결이라고 본다.

좋은 판결인데 위자료가 1년에 100만원밖에 안 된다. 액수는 올리고 압수수색 인정 기간은 줄였으면 좋았겠다.

법원이 괜찮다고 생각하면 이런 관행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법원이 1년치 전자우편 압수수색은 괜찮다고 했는데 나이브하기 그지없다. 영장 발부 단계에서 좀더 축소시켜야 한다. 몇 년 동안 주고 받은 내 전자우편이 공개된다고 하면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전자우편 7년치가 압수됐다. 7년과 1년은 엄청난 차이다.

사회 기자들 전자우편도 털리면 큰일인데. (웃음)

지메일을 써라. 서버가 외국에 있어서 괜찮다. (웃음)

권김현영, 김보라미, 송소연, 안은정, 양홍석, 최재홍, 한가람, 홍성수

권김현영, 김보라미, 송소연, 안은정, 양홍석, 최재홍, 한가람, 홍성수

 

동물 권리 인정한 돌고래 판결

사회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YH무역 노조원들에게 33년 만에 배상 판결(서울중앙지법)이 나왔다.

권김현영(여성학자·이하 권김) 1970년대 여성 노동자 손해배상 소송이 줄을 이을 것 같다. 이미 반도상사 노조 탄압에 대한 배상도 인정됐다.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수사 과정 등에서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이 일반적인데 이번 사건은 국가의 조직적인 노조 탄압에 대한 배상이라는 길을 열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송은 어려워진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정의는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과거사 청산 판결은 다 훌륭하다고 본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과거사 사건 배상액을 왕창 깎아 개판 친 판결이 나왔었다.

사회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도 노동자로 인정한 판결(서울행정법원)이 나왔다.

현장 노동자들이 정말 기뻐했던 판결이었다. 골프장 캐디나 퀵서비스 종사자 등도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노동조합법상의 노동자는 맞지만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는 아니라고 했다. 눈치보기 판결, 불완전한 판결이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치고 나간 의미는 있다. 학습지 교사뿐 아니라 다른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로 확대돼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지위 부정은 항소심 재판부에서 정리를 해줘야 한다.

사회 법원의 돌고래 몰수 판결(제주지법)이 있었다. 돌고래쇼가 마음 편한 쇼는 아니다.

불법 포획 야생동물의 자연성 회복에 관한 것이다. 서울대공원 돌고래 ‘제돌이’와 맞물려 있다. 인간의 재미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야생동물의권리 측면에서 봐야 한다.

사회 재벌 회장님이 잡힌 사건은 어찌봐야 하나. 김승연 한화 회장이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서부지법에서 법정 구속됐다.

실형을 선고한 것보다 법정 구속이 더 의미 있다고 본다. 사실 징역 4년이라는 형량은 굉장히 낮은 것 같다.

다른 재벌 회장 사건들에서는 대부분 집행유예가 나왔다. 양형 이유에서도 경제 발전 기여 등 관행적으로 유리한 양형인자를 판결문에 써왔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언제나 항소심이 중요하다.

 

올해의 판결 1차 심사가 진행 중이던 11월 초, 한 심사위원이 “그런데 나쁜 판결은 안 뽑느냐”고 했다. 뜨끔했다. 나쁜 판결은 그냥 넘어가려 했다. 찾자면 한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느 심사위원은 “나쁜 판결이 너무 많아서 고를 수가 없다. 난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심사위원들은 ‘흉악한 판결’들을 손에 들고 심사위원석에 나타났다. 대나무숲에는 세상을 바꾸는 죽창보다 세상을 찍어 누르는 죽창이 더 많았다.

 

사회 좋은 판결도 있었지만 역시 나쁜 판결, 애매한 판결도 넘쳐난한 해였다.

나쁜 판결의 최고봉은 단연 박정근 판결이다. (수원지법 형사3 단독 신진우 판사는 트위터를 통해 농담으로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박정근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권김 헌재가 여성의 출산 결정권을 사익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공익으로 규정한 판례도 나쁜 판결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결정이다.

사실 헌재가 올해의 좋은 판결 후보에 하나만 올랐다는 것이 문제다. 헌재가 내놓은 나쁜 결정이 정말 많다.

대법원도 그렇지만 헌재도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애매한 판결이 나온다.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판결을 자꾸 내놓는다. 박수를 쳐줄 수도 없고 돌을 던질 수도 없고.

민주적 정당성이 제일 센 입법부가 일을 하지 않으니 발생하는 문제다. 그런데도 입법부는 사법부의 결정을 아전인수로 해석한다. 위헌 결정이 난 법률에 대한 대체입법 논의를 보면 특히 그렇다.

대법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시국선언을 유죄로 판단한 것도 나쁜 판결에 들어가야 한다.

헌재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사병 월급에 대해 합헌 결정한 것도 문제다. 의식주를 제공하니 그 정도 받아도 괜찮다는 게 말이 되나. 사실 군 복무 중일 때 헌법소원을 내려고 했는데 군 생활이 엉망이 될까봐 그러지 않았다.(웃음)

국방의 의무와 반공 이데올로기가 겹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입법으로 해결이 안 될 테니 헌재가 선도적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헌재가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표적단속과 강제출국을 합헌으로 판단했다. 제일 나쁘다. 표적단속 관행을 사실상 승인해줬다. 헌재 위상에 전혀 걸맞지 않다.

이주노조 간부들도 그렇고 일반 이주노동자들도 입을 틀어막힌 채 단속을 당한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육군 7군단 보통군사법원에서 트위터에 ‘가카새끼’라고 쓴 현역장교에게 상관모욕죄를 인정했다. 군사법원 판결이니 그렇다 치고 대법원에서는 뒤집힐 거라 기대한다.

사회 대법원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 개시 결정은 어떻게 봤나. 치사하지 않나.

재심 개시는 개시 요건 하나만 충족시키면 그만이다. 그런데 유죄니 무죄니 재심 재판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재심 개시 결정문 쓰려고 몇 년씩이나 시간을 끌고 있었나. 검찰이 서울고법의 재심 개시 결정에 항고를 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은 사람에게 원심과 달리 공무집 행방해죄를 인정한 판결(대법원)은 정말 말도 안 된다.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

권김현영(여성학자), 김보라미(법무법인 나눔 변호사), 송소연(진실의 힘 이사), 안은정(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양홍석(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 최재홍(녹색법률센터 변호사), 한가람(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 홍성수(숙명여대 법대 교수).

사회·진행·정리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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