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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를 찾아라

안 전 후보가 사라진 ‘중원’을 차지하려는 ‘밀당’… ‘팔짱낀 안철수 부동층’에 변화의 에너지 있어,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분열책 극복하고 ‘새 정치 열망’ 껴안을 묘수는
등록 2012-12-07 19:43 수정 2020-05-03 04:27
밀어내는 힘과 당기는 힘이 격돌한다.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밀어내고 중원을 당겨오는 쪽이 승리한다. 마지막 순간, 극적으로, 그러나 어수선하게, 야권 단일화가 이뤄졌다. 미완의 단일화다. 안철수를 지지했던 유권자 가운데 적잖은 이들이 다시 무정형의 중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중원이라는 전략적 중요성은 단지 유권자 지형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역적으로도 그렇다. 이 다시 중원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원을 둘러싼 박근혜와 문재인의 ‘밀당’에 망원경과 현미경을 들이댔다. 각 캠프의 전략도 함께 점검했다. 공식 선거전 돌입과 함께 일제히 충청도로 달려간 각 후보들의 유세 현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체온과 호흡을 포착하고자 했다. 과연 중원은 누구 손을 들어줄 것인가. 박근혜는, 혹은 문재인은 이들의 선택을 받을 준비가 돼 있을까. 여기 그 해답의 실마리가 있다. _편집자

“제가 못 올 곳을 왔나요?” 그의 말에 청중 사이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제18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1월27일 저녁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첫 서울 유세가 열린 세종문화회관 앞. 안철수 캠프 국민정책참여단장을 맡았던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이 지지 유세를 했다. 그는 “저는 단일화 과정에서 안 후보를 지지했지만, 안 후보가 양보했고, 이제 야권 단일후보는 문 후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날 오후 서울 공평동 ‘진심캠프’에서 열릴 예정이던 안철수 캠프 해단식은 지지자를 자처한 한 청년의 투신 소동 등으로 인해 연기됐다. 상처, 실망, 울분, 허탈 등의 단어가 공평빌딩을 떠돌았다.

사진공동취재단·그래픽/ 장광석

사진공동취재단·그래픽/ 장광석


2002년 단일후보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변화의 중심에 섰던 것과 달리, ‘팔짱 낀 안철수 부동층’이변화의 에너지를 품고있는 건 역설적이다. “안철수의 생각이 문재인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부동층, 20대·중도·무당파에서 많아

선 소장처럼 문 후보 지지로 옮아간 이들은 안철수 지지층의 절반 남짓이다. 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1월2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철수 지지층 가운데 50.7%가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6.4%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마음을 돌렸다. 21.9%는 새로운 부동층을 형성했다. ‘상처 입은 안철수 부동층’이다. 전체 유권자의 8.3%를 차지한다. 이번 대선의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규모다.

‘대선 후보 안철수’가 차지했던 정치적 지형은 ‘가운데’였다. ‘안철수 부동층’의 탄생으로 인해, 전체 부동층 규모(17.3%)도 안 전 후보의 사퇴 이전(10% 안팎)보다 크게 늘었다. 투표일이 가까울수록 부동층이 줄어드는 일반적 현상과 다르다. 부동층은 20대(25.9%), 중도(22.8%), 무당파(41.0%)층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에게 ‘안철수의 중원’을 공략하는 게 시급한 과제가 됐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은 문재인·안철수 갈라놓기에 여념이 없고, 민주당은 마냥 안 전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

“에이, 난 투표 안 할래요.” 서울 은평구에 사는 정아무개(30·여·유학 준비 중)씨는 ‘안철수 부동층’이다. 그는 925호(8월27일치) 표지이야기 ‘세상에 없는 중도가 대통령을 만든다’에서 “우리 정치의 가장 큰 역기능은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식과 정의에 대한 보편적 기준을 가진” 안전 후보가 대통령이 되길 바랐는데, 그의 사퇴로 정치에서 다시 멀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정씨는 “새누리당은 싫다. 안철수가 문재인 도와주라고 하면 한번 생각해볼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단일화 과정에서 문 후보와 안 전 후보는 ‘새 정치’와 ‘정권 교체’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문 후보 쪽이 ‘정권 교체를 해야 새 정치도 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반면, 안 전 후보 쪽은 ‘새 정치 없이는 정권 교체도 어렵다’고 반박했다. 새 정치에 방점을 뒀던 안 전 후보의 지지층이 야권 단일후보 지지로 흡수되지 않고 떨어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권 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안철수 지지층의 70.4%가 ‘정권 교체를 원한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는 게 낫다’는 사람은 21.7%였다. 정권 교체의 열망이 있지만, 새 정치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단일화 과정에 실망해 팔짱을 낀 상태로 볼 수 있다. 2002년 단일후보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변화의 중심에 섰던 것과 달리, ‘팔짱 낀 안철수 부동층’이 변화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건 역설적이다. “안철수의 생각이 문재인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어떤 방식? 시점은 언제?

잠행을 이어나가던 안 전 후보는 12월3일 캠프 해단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사퇴한 지 꼭 열흘 만이다. 박 후보와 문 후보의 첫 텔레비전 토론회 전날이다. 11월28일 서울 공평동의 한 식당에서 캠프 참모 10여 명과 만났을 때 참석자 대부분이 “문 후보를 돕는 일을 너무 늦추면 안 된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지원 시점이 너무 늦춰질 경우 ‘안철수 부동층’의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안 전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안철수 부동층’과 문 후보를 향해 내놓는 메시지에 따라 대선 판은 또 한 번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미완의 단일화’ 이후 문 후보는 박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지방을 돌며 선거 지원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지만, 어떤 방식을 택할지, 시점이 언제가 될지 등은 불투명한 상태다.

안 전 후보가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뜻과 ‘지지자의 뜻’을 강조한 만큼, 단순히 선거를 돕는 차원이 아니라 ‘정치인 안철수’의 길을 모색하며 걸음을 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의 정치적 멘토인 법륜 스님은 11월28일 CBS 라디오 에 출연해 “힘드니까 한 사람이 그만둔 보통 단일화지, 아름다운 단일화는 아닌 것 같다”고 평한 뒤 “안 전 후보가 국민의 열망을 받아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역부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렇게 변화시키겠다 하는 걸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착하고 깨끗한 이미지는 줬지만, 파워풀하고 적극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 전 후보는 “뒤로 잠시 미뤄진 새 정치의 꿈”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시켜나갈까. 단일화 과정에서 불거졌던 신당 창당설은 여전하다.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 16개 지역 포럼은 신당 창당의 조직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 설립, 내년 4월 재·보궐 선거등을 통해 정치 세력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명박근혜’에만 매달려 실패한 총선

민주당은 안 전 후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단일화 과정에서처럼 선거운동 참여를 ‘압박’하는 것으로 비칠까봐 조심스러운 태도다. 문 후보 쪽의 한 핵심 관계자는 “안 전 후보가 스스로 지원 의사를 밝힌 이후 새 정치는 물론 연대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게순서”라고 말했다.

문 후보는 유세 과정에서 새 정치에 대한 진정성과 실천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11월26일 광주에서 ‘범국민 새정치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11월28일 전남 순천 유세에서는 “마누라 빼고 다 바꾸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당 혁신을 계속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안 전 후보가 제안하고 단일화 과정에서 합의했던 ‘국민연대’라는 틀을 ‘대통합 국민연대’로 발전시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문재인), 미래 세력(안철수), 진보 진영(심상정), 노동계, 시민사회 세력(원탁회의·조국), 합리적 보수 세력(김종인·윤여준·정운찬) 등 여섯 갈래의 세력이 뭉쳐 대선을 치르고, 이 틀을 정권 교체 이후에도 개혁연합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문 후보가 11월25일 후보 등록 뒤 기자회견에서 “민주화 세력과 미래 세력이 힘을 합치고, 나아가 합리적 보수 세력까지 함께하는 명실 상부한 통합의 선거 진용을 갖추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법륜스님은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면 안철수 지지 세력을 과감하게 최대한 포용해내야 한다. 외연을 확대해야 하니까 중도층·보수층까지도 과감하게 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어야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 쪽은 ‘정책 단일화’에도 적극적이다. 두 캠프 경제복지팀과 통일외교안보팀의 공동선언문 초안은 이미 마련된 상태다. 문 후보 쪽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안 전 후보의 재벌개혁특별위원회 설치 공약을 수용하고, 안 전 후보 쪽의 장하성 국민정책본부장을 위원장에 임명하는 방안을 문 후보에게 건의하겠다”(11월26일치 인터뷰)고 밝히는 등 정책과 사람의 단일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단일화에만 매달렸던 민주당은 공식 선거전 초반 갈팡질팡하고 있다. 문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면 ‘과거 대 미래’ 프레임을 밀고 나가려 했는데, ‘사퇴 단일화’로 인해 안 전 후보와 당장 손잡지 못해 어정쩡하게 된 탓이다. 새누리당은 야권 후보 단일화를 ‘민주당의 구태에 의한 새 정치의 실패’라고 비난했다. 11월27일 문 후보가 부산유세에서 유신 독재 청산을 거론하자 곧바로 선거 구도를 ‘박정희 대 노무현’ 프레임으로 몰고 갔다. 이런 구도는 ‘집토끼’를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다. 집토끼가 많은 새누리당에 유리하다. ‘산토끼’를 잡는 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두 세력 모두 과거에 매달려 싸움질하는 세력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부랴부랴 이명박 정부 실정에 대한 박 후보의 공동책임론을 제기하며 ‘정권교체론’으로 프레임 전환을 꾀하고 있다. 정권교체론은 정권 심판이라는 ‘회고 투표’와 변화된 정권이라는 ‘미래 투표’의 두 가지 효과를 모두 담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안철수 부동층’을 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민주당이 내부 쇄신과 기득권 혁파 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야권 단일후보 프레임만 생각하다가 정작 본선에서 제대로 된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권을 심판하자는 구호만 보이고 내용을 채우지 못하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정권교체론이 정권심판론과 혼재돼 차별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반MB’에만 매달렸던 지난 4월 총선 때의 실패 전략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안 전 후보의 도움과 참여 없이는 선거 구도 전환이 어렵고, 범국민 새정치위원회와 대통합 국민연대 구성도 힘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내부 쇄신과 기득권 혁파 등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야권 단일후보 프레임만 생각하다가 정작 본선에서 제대로된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권을 심판하자는 구호만 보이고 내용을 채우지 못하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
박근혜, 문재인

박근혜, 문재인

 

“이벤트도 메시지도 절박함도 없다”

민주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말로는 새 정치와 국민연대를 강조하지만, 내부적으로 얼마나 의지와 노력이 있는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문 후보 쪽의 안경환 새정치위원장은 11월30일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이 개혁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실제로 몇 주 동안 지켜보니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있지만, 일사불란하게 자기 당 후보를 위해 나서는 것 같지 않다. 대선 승리보다 개인 입지를 더 생각하지 않나 하는 게 보인다. 국회의원 임기가 3년 반이나 남았다. 다음 선거는 새 대통령 임기 후반인데, 경험적으로 여당에 불리한 선거라서 차라리 야당이 낫지 않느냐는 계산도 은연중에 숨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 입지만 생각한다. 이런 당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고, 기득권 내려놓기 등에 대해서도 확고한 방향 제시가 있어야 한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민주당이 자기 혁신 없이 안 전 후보가 주는 과실만 먹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벤트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절박함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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