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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30대는 진보적인가? 단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30대 정치의식과 정책지향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의 주관적 정치이념 성향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를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23.9%에 불과했다. ‘중도’라는 응답이 67%로 가장 많았고, ‘보수’는 9.1%였다.
2040 ‘응징 투표’로 5060과 분리되며 재편성
하지만 ‘중도’라는 회색 피질을 한 꺼풀 벗겨내자 뚜렷한 경향성이 나타났다. 그들은 온몸으로 ‘반박근혜·반이명박’을 외치고 있었다. 무려 82%의 응답자가 이번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쪽이 낫다’고 답했다.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는 쪽이 낫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3자 구도에서는 안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36.9%로 가장 높았고, 문 후보는 22.9%, 박 후보는 13.1%였다. 양자 구도에선 문 후보가 60.4%, 박 후보는 25.4%였다. 안 후보와의 양자 구도에선 안 후보가 70.3%, 박 후보는 19.7%로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선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89.9%로 ‘잘하고 있다’는 10.1%를 압도했다.
[관련 영상] 시사평론가 김종배의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자신의 책 에서 20대나 40대가 아닌 30대 유권자를 다룬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2002년 대선부터 2012년 총선까지의 여야 정치권 지지 성향 비교를 통해 “현재의 30대가 그 앞뒤 세대에 비해 진보 성향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지적한다. 다른 세대에 비해 범야권 혹은 범진보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30대의 지지도가 뚜렷하게 높다는 점을 근거로 김씨는 이렇게 짚는다. “삼각형에 꼭짓점이 있듯이, 2040세대에도 꼭짓점이 있다. 20대·30대·40대가 삼각편대를 이뤄 범진보 진영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삼각편대의 꼭짓점은 30대다. 30대가 앞에서 끌고 20대와 40대가 뒤에서 민다. 이게 2040세대의 대형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개인주의자들의 무정형적 집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30대가 사실은 가장 진보적인 세대라는 게 김씨 저서의 결론이다. 그 이유는 뭘까. 단서는 이들의 ‘집단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이들은 10대에서 20대 초반에 IMF로 직격탄을 맞았고, 취업 전후인 2008년에는 금융위기가 왔다”며 “불황과 불안, 경제위기라는 집단적 경험을 가진 30대가 민주화 투쟁이라는 집단적 경험을 가진 486세대와 동조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 이후 20·30·40대의 ‘응징 투표’ 경향과 50·60대 유권자의 ‘세대 대결’ 구도가 강화되는 ‘유권자 재편성’(Voter Realignment)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에서 출발해 군부독재 세력과 투쟁했던 486세대와는 달리, 현재의 30대는 실제 자신이 겪어온 삶 속에서 정치 참여의 필요성을 느낀 ‘생활진보’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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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30대인 정치평론가 김민하씨는 이들을 ‘배신의 세대’라고 규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주변을 봐도 국가와 정치권, 기성세대에게 속았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학생 때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이른바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도 별로 없었죠. 대체로 부모님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했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고, 어렵사리 취업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뿐이라는 걸 30대가 되자 깨달은 거죠. 정치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지금의 30대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불안’이다. 30대 유권자에게 자기 삶의 안정성에 대해 물었더니 ‘매우 불안하다’는 답변과 ‘다소 불안한 편’이라는 답변이 각각 11.6%, 50.9%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안정돼 있다’는 응답은 2.3%, ‘비교적 안정된 편’은 36.3%였다. 전체의 62.5%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으로는 ‘고용 및 일자리 불안’(29.6%)이 꼽혔다. 그다음이 ‘노후 불안’(23.1%)이었고, ‘전셋값 상승 등 주거 불안’(20.7%), ‘육아 및 교육에 대한 불안’(20.3%)이 뒤를 이었다.
젊은 층의 표심 잡기에 골몰하는 여야 후보들이 일자리·육아 등 30대 유권자의 정책적 수요에 집중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른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각각 자신이 ‘청년정치의 담지자’임을 자임한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10월3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 청년 행사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흰색 후드티와 빨간색 구두도 곁들였다. 박 후보가 정치에 투신한 이후 공개 석상에서 청바지를 입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박 후보는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지난 8월에도 “젊은 층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면 찢어진 청바지도 입을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러나 이들은 영혼을 잠식당하는 대신 정치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정치효능감도 높다. 본인의 정치 참여가 정치와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18.9%가 ‘매우 그렇다’, 41.7%가 ‘비교적 그렇다’고 답했다. 이를 합치면 60.6%다. 여야 후보 지지자들 중에선 문 후보 지지층의 정치효능감이 73.2%로 가장 높았다. 안 후보 지지층도 62.5%로 평균을 웃돌았고, 박 후보 지지층이 58.3%로 가장 낮았다. ‘정치가 바뀌면 나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는 문항에 ‘그렇다’라고 답한 응답자도 62.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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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유권자의 투표율은 다른 세대에 비해 상승폭이 크다. 연령별 투표율을 나타내는 통계표에는 함정이 있다. 유권자들은 나이를 먹는다. 10년 전의 30대와 현재의 30대는 다른 세대다. 따라서 표는 수직이 아니라 계단형으로 읽어야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에서 20대 전반, 20대 후반 투표율은 각각 57.9%, 55.2%였다. 당시의 20대가 바로 현재의 30대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 대선에서 이들의 투표율은 42.9%, 51.3%로 줄었다. 이듬해 4월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이들의 투표율은 24.2%, 31.0%로 급락한다. 하지만 “내가 다 해봐서 안다”던 경제대통령의 5년 동안 이들은 다시 정치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한다. 야권이 약진한 2010년 지방선거가 신호탄이었다. 지난 4월11일 치른 19대 총선에서 이들의 투표율은 41.9%, 49.1%였다. 총선만 놓고 비교하면 18~29%포인트가 급등했다. 이를 바로 앞뒤 세대와 비교해보면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이 확인된다. 현재 20대 후반 세대의 19대 총선 투표율은 18대 총선에 비해 5.0%포인트, 현재 40대 초반의 투표율은 13.2%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번 대선에 대한 30대 유권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전체 응답자 중 81.6%가 ‘대선 투표에 반드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 봐서 참여할 것’이라는 응답과 ‘아마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각각 17.4%, 1.0%였다. 김형준 교수는 “30대 투표율이 다른 세대에 비해 일방적으로 낮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고, 오히려 흐름을 타게 되면 어느 세대보다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대가 바로 지금의 30대”라고 내다봤다.
현실에 대한 절망과 좌절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정치에 거는 기대도 어느 세대보다 높다. 그러나 정작 정치는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30대 유권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응답자의 83.9%가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했다. ‘있다’는 응답은 16.1%에 그쳤다. 지지 정당별로 보면 민주당 지지층에서 ‘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70.2%로 가장 많았고,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67.9%로 뒤를 이었다. 정당지지도 조사에선 민주당이 24.0%, 새누리당이 11.6%를 기록했지만 ‘없다’와 ‘모르겠다’는 응답을 합치면 58.2%로 가장 많았다. 압도적인 수준의 정권 교체 열망과 야권 대선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도를 고려하면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이다. 이들은 야권을 지지한다. 하지만 야당이 자신을 대변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박근혜 후보와 경쟁할 야권 단일 후보 선호도에선 안철수 후보가 47.4%로 문재인 후보 36.1%보다 11.3%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같은 30대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 전반과 후반에서 온도차가 감지됐다. 안 후보에 대한 선호는 30대 전반 남성(50.0%)과 30대 후반 여성(50.0%)에서 평균보다 높았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문 후보와 안 후보 선호도는 45.0%와 44.0%로 오차범위 내에서 양분됐다.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앞선 것은 30대 후반 남성(45.3% 대 43.0%)이 유일했다. 김형준 교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높은 30대에서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통하는 멘토의 이미지나 안 후보 개인의 경제적 성공신화 등도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변 정당 없다’ 반사돼 ‘안철수로 단일화’ 높아
물론 사전 여론조사는 ‘의지’와 ‘경향’일 뿐 아직 ‘행위’가 아니다. 대선 투표일에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한귀영 위원은 “정치와 자기 삶의 연관성을 체화하기 시작한 30대 유권자들의 열기가 실제 대선 투표와 지속적인 정치 참여로 이어지려면 ‘마지막 한 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한 방’은 무상급식처럼 파괴력 있는 정책적 이슈일 수도, 최근 쟁점으로 부상한 투표 시간 연장 같은 제도의 보완이나 ‘아름다운 단일화’라는 구호가 함의하는 축제의 기운일 수도 있다. 절망의 청춘을 딛고 일어선 30대의 스크럼을 완성할 ‘마지막 한 방’은 뭘까. 이젠 정치가 응답할 차례다.
[한귀영의 1 2 3 4 #6] '투표하라 1997'··· 30대 표심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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