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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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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등록 2012-08-21 15:52 수정 2020-05-03 04:26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안철수의 생각> 출간 이후 소규모 모임에 참석하며 민심을 살펴보고 있다. 총선 전에는 주로 강연을 통해 자기 생각을 알렸다. 안 원장이 4월3일 전남대에서 청중석에 인형을 선물로 던지고 있다. 광주/김정효 기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안철수의 생각> 출간 이후 소규모 모임에 참석하며 민심을 살펴보고 있다. 총선 전에는 주로 강연을 통해 자기 생각을 알렸다. 안 원장이 4월3일 전남대에서 청중석에 인형을 선물로 던지고 있다. 광주/김정효 기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8월16일 전북 전주에 내려가 강준만 전북대 교수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강 교수는 7월 발간한 저서 을 통해 2012년의 시대정신을 ‘증오의 종언’이라고 규정하고, 안 원장이 이를 실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후보라며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증오가 정치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진영 논리가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강 교수의 문제의식은 ‘상식과 비상식’이라는 틀로 진영 논리를 뛰어넘겠다는 안 원장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공개 행보’ 하지만 ‘사후 공개’

이 만남에 대해 강 교수는 8월16일 과 전화 통화에서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고, 안 원장의 공보 담당인 유민영 대변인은 안 원장이 강 교수를 찾아간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지만, 19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에서 김대중·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며 결과를 ‘예언’했던 강 교수와 ‘입후보 예정자’로서 지위를 갖게 된 안 원장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강 교수는 한 달 전인 7월19일 과의 인터뷰에서 “(안 원장의 책 출간은) 되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끊어버린 게 아닌가. 사실 출마 선언은 이미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한 것이 없다”(유 대변인)는 공식 견해를 되풀이하고 있지만, 이미 많은 이들에게 ‘대선 후보’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안철수재단의 기부 행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은 안 원장에게 ‘입후보 예정자’라는 공식 지위를 부여했다.

특히 안 원장의 최근 행보는 대선 후보의 일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안 원장은 에서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내 생각을 보다 많은 분들께 구체적으로 들려드리고 많은 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힌 뒤 ‘공개 행보’를 시작했다. 사후 공개다. 일정을 마친 뒤 유 대변인 명의의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된다. “앞으로도 다양하고 폭넓게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는 말이 늘 덧붙는다.

안 원장의 첫 행보는 8월3일 서울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관람이었다. 관람 뒤 안 원장이 “매우 고통스러운 이야기다. 차분하게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8월13일에는 을 펴낸 김영사의 독서모임에 참석해 20~40대 여성 20여 명과 교육·육아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강준만 교수를 만난 8월16일에는 전주에서 전주기계탄소기술원 부설 국제탄소연구소와 한국폴리텍대학 신기술연수센터를 방문해 연구원들과 대학생, 취업 준비생들을 만났다.

유 대변인은 과 전화 통화에서 “지역 성장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곳이고, 일자리 재취업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김영사 독서모임 참석은 출판사 쪽과 자연스런 교감 아래 이뤄졌고, 전주 방문은 안 원장 쪽이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선거에서 후보의 행보는 ‘메시지’로 인식된다. 일정을 보면 전략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유 대변인은 “와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고르기도 하고, 저희가 제안하는 자리도 있다”며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모임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아직 정해진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금태섭 변호사가 주도해 인터넷 페이스북에 네거티브 대응 홈페이지 ‘진실의 친구들’을 만든 것도 출마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정치권과 언론의 검증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금 변호사는 “안 원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 변호사는 안 원장이 ‘정의·복지·평화’라는 3대 화두를 제시한 부산대 강연 때 원고를 미리 검토하고, 안 원장이 출연한 녹화 현장에도 참석한 인물이다.

안철수재단은 재단 명칭에 ‘입후보 예정자’의 이름이 포함된 탓에 본격 활동을 사실상 대선 뒤로 미루게 됐다. 2월6일 안철수재단 설립 기자회견장에서 박영숙 이사장과 안철수 원장이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은 안철수재단 누리집 첫 화면. 사진 한겨레 김명진

안철수재단은 재단 명칭에 ‘입후보 예정자’의 이름이 포함된 탓에 본격 활동을 사실상 대선 뒤로 미루게 됐다. 2월6일 안철수재단 설립 기자회견장에서 박영숙 이사장과 안철수 원장이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은 안철수재단 누리집 첫 화면. 사진 한겨레 김명진

선관위, 이전부터 안 원장을 입후보 예정자로 분류

안철수재단을 둘러싼 논란도 결과적으로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하는 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선거법 위반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안철수재단의 본격적인 활동이 사실상 대선 뒤로 미뤄짐으로써 안 원장 출마의 걸림돌이 사라진 셈이 됐기 때문이다. 출마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활동을 유보할 필요가 없다.

논란은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질의로부터 시작됐다. 안철수재단의 기부 행위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는지에 대한 질의 과정에서 중앙선관위는 8월13일 “재단 설립 자체는 무방하나, 재단의 명칭에 입후보 예정자의 명칭이 포함돼 있으므로 그 명의로 금품 등을 제공하는 행위는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안철수재단 이름으로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구호물품 제공 말고는 기부 행위를 할 수 없으니, 정상적인 기부 활동을 하려면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기부 활동을 하더라도 안 원장이 주는 것으로 추정할 수 없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안철수재단은 사흘 뒤인 8월16일 이사회를 열어 “재단의 이름을 그대로 두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격적인 기부 활동은 대선 뒤로 유보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는 “안 원장이 출마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입후보 예정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출마 예정자 본인뿐 아니라, 관련 있는 단체나 재단이 기부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돈을 주고 표를 사는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실 선관위는 이전부터 안 원장을 입후보 예정자로 분류해왔다. 7월25일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가 ‘남한 정부가 채찍만 써서 남북관계가 악화됐다는 안철수씨는 국적이 어디인가’라는 광고를 에 내자,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조사하겠다고 했다. 안 원장을 입후보 예정자로 보고, ‘신문에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비방하는 것을 금지’하는 선거법(251조)을 적용했다.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란 신분·접촉대상·언행 등에 비춰 선거에 입후보할 의사를 가진 것으로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른 사람도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례(2011년 3월10일)에 따른 것이다.

안철수재단 논란이 일찌감치 불거졌다 일단락된 것이 안 원장에게 손해될 것도 없어 보인다. “법적으로는 출연자로부터 독립된 별개의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관위의 유권해석과 관련해 재단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 것은 유감”(안철수재단 이사회), “정치적 의도 없이 사회공헌을 위해 기부했고, 재단도 순수하게 만들어졌는데 기부 취지가 훼손되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유민영 대변인) 등 양쪽이 모두 독립적인 재단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안철수재단과 안 원장 둘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안 원장이 출마한 상태에서 안철수재단이 기부 활동을 하면 선거법 위반 가능성이 생기고, 이는 대선 가도에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하다. 새누리당은 지나친 비난에 대한 역풍을 우려한 듯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자 하고 선관위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 된다”(홍일표 대변인)는 공식 반응을 내놓았지만, 내부에서는 “재단이 기부금 전달 활동을 한다면 매표 행위나 다름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교감 결과 ‘재단 사실상 활동 유보’

안 원장은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을 지낸 박영숙 이사장을 직접 영입하는 등 이사진 구성에 깊이 관여했고, 안철수연구소 초창기 멤버인 김현숙 전 안랩 중국법인장이 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안철수재단 이사회의 ‘사실상 활동 유보’ 결정은 양쪽이 서로 상의를 하거나 자연스럽게 교감한 결과로 보인다. 재단 활동이 안 원장의 향후 행보에 걸림돌이 되거나 정치적 시빗거리가 되어서는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안철수재단이 대선 전엔 실질적인 활동을 하지 않기로 해 안 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재단을 통해 (추가로) 기부하겠다”고 공약하는 것도 선거법상 아무 문제가 없게 됐다. 2007년 대선 직전 이명박 후보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공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안 원장이 출마하지 않는다면 재단이 기부 활동을 시작하면 된다. 안 원장이 대통령이 될 경우는 ‘입후보 예정자’가 아니기 때문에 재단의 기부 활동은 제약을 받지 않는다.

출마 징후는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안 원장의 최종 결심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는 여전히 ‘출마 선언을 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는 입후보 예정자’다. ‘이르면 8월 말, 늦으면 9월 말~10월 초’ 등 안 원장의 출마 시기를 전망하는 언론 보도는 무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금태섭 변호사는 8월16일 YTN 뉴스에 출연해 “안 원장은 본인이 생각한 것과 밖에 얘기하는 게 똑같기 때문에, 본인 입장에서 출마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발표 시기를 조절하는 게 아니라, 결심하는 순간 바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정치 문법으로 보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새누리당은 8월20일 대선 후보를 뽑고, 민주통합당은 9월16일 결선투표가 이뤄질 경우 9월23일 대선 후보를 결정한다. 선관위 후보 등록 기간은 11월25~26일이고, 대선은 12월19일 치러진다. 안 원장은 ‘입후보 예정자’로 끝날까, ‘후보자’가 될까?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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