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한국 경제를 주도하는 가족 경영 중심 재벌들의 초라한 기업 지배구조.” “한국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이윤 마진을 떨어뜨리는 주범.”
영국의 경제주간지 와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피치’가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해 잇달아 질타하고 나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 내용이 같더라도 한국 기업의 주가가 외국 기업보다 낮게 형성되는 현상을 말한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 남북의 군사적 충돌 등과 한국 기업의 낮은 투명성이 그 주요 요인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거의 해소된 것 같다는 장밋빛 의견이 많았다. 그 결정적 계기는 삼성전자가 제공했다. 주가가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며 주가수익비율(현재의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수치)이 13.8배(3월8일 주가인 118만원 기준)로 뛰어올라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기업인 애플의 14.3배와 대등한 수준이 됐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주식의 총시장가치)도 173조원(1547억달러)으로 일본 대표기업인 도요타와 소니를 합친 것보다 커졌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언론과 신용평가기관에서 잇달아 날카로운 경고음이 나온 것일까?
회사보다 검찰 출입이 잦은 회장님들
이유는 최근 들어 봇물 터진듯 쏟아진 재벌 총수 관련 스캔들이다. 최근 한 달여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만 봐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재계 3위인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선물투자를 하며 계열사 자금 636억원을 배임·횡령한 혐의로 지난 3월2일 1심 재판이 시작됐다. 그가 다시 법정에 선 것은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이후 9년 만이다. 최 회장은 그나마 불구속 상태다. 그의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구속 기소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앞선 2월26일에는 하이마트의 제2대 주주인 선종구 회장이 1천억원대의 횡령 및 탈세 혐의로 대검찰청 중수부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검찰의 칼끝이 제1대 주주인 유진기업까지 겨누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검찰은 유진기업의 유경선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2007년 하이마트 인수 경위와 그 과정에서 선 회장과 어떤 이면계약이 있었는지를 추궁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보다 5일 전인 2월21일에는 14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6개월과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 태광그룹 상무도 같은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보다 6일 전인 2월15일에는 재계 1위인 삼성의 직원들이 이재현 CJ 회장을 미행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6년 안기부 X파일 사건, 2008년 비자금 사건 때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현재는 퇴진)이 직접 깊은 반성과 함께 쇄신을 약속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국민에게 큰 충격을 던져줬다. 삼성은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IT 기업으로서의 이미지에 큰 상처를 받게 됐다. 삼성의 미행은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재현 CJ 회장의 아버지)이 지난 2월12일 동생인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재산 반환소송을 제기한 직후 벌어져 연관성을 의심받고 있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한 간부는 “원래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시 이보다 13일 전인 2월2일에는 재계 10위인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원의 구형을 받았다. 김 회장은 2월23일로 예정됐던 1심 선고가 담당 재판부의 인사를 이유로 돌연 연기돼 ‘재벌 봐주기’에 대한 부담 때문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또 (주)한화는 김 회장 등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사실을 뒤늦게 공시했다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으로 거론돼 주가가 곤두박질쳐 투자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주)한화는 긴급이사회를 열고 4만여 명의 주주들에게 사과 서신을 보내야 했다.
수백억원의 횡령·비자금 조성과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법 주식 매각 혐의로 기소된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은 3월27일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박 회장은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경영권을 둘러싸고 이른바 ‘형제의 난’을 벌인 주인공이다.
회장님 때문에 최대 실적에도 주가 떨어져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는 CEO의 불합리한 의사결정으로 인해 기업이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가리킨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선진국에서는 전문경영인들이 단기성과 위주의 보상체계로 인해 무리하게 고위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의 CEO 리스크는 대부분 총수 일가의 비리·전횡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또 그중 상당수는 총수 일가의 배임이나 횡령, 탈세, 불법 주식거래 등과 같이 기업의 본질적 활동인 영업과는 직접적 상관없이 벌어질 때가 많다. 경제계나 학계에서는 전문
경영인에 의한 CEO 리스크와 구분하기 위해 이를 ‘오너 리스크’나 ‘총수 리스크’로 부른다.
경영자는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총수 리스크가 터지면 기업 실적이 좋은데도 주가가 오르지 못하거나 오히려 기업 가치가 떨어져 투자자 손실로 이어진다. SKC&C는 SK의 실질적 지주회사다. 법상 그룹 지주회사인 SK(주) 지분을 31.8%나 갖고 있다. SKC&C는 지난해 11월 3분기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62% 늘었다는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 소식을 발표했다. 당연히 증권사들의 매수 추천이 쏟아졌다. 하지만 주가는 오히려 미끄럼틀을 타듯 미끄러졌다. 시장에서는 하락의 원인으로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을 꼽았다. 최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와 관련해 검찰이 SK그룹 본사 사옥을 압수수색한 게 주가에 나쁜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은 2010년과 2011년 사상 최대 매출 실적을 잇달아 경신했다. 영업이익도 2년 연속 2조원에 육박하는 호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시장의 관심은 한화의 경영실적보다 2007년 청계산 보복폭행 사건의 주인공인 김승연 회장 부자의 돌출행동에 맞춰질 때가 많다. 김 회장의 차남은 2007년 폭행 사건의 주역이었고, 셋째아들은 2010년 호텔 주점에서 종업원 폭행 등 소란을 피우다 경찰에 붙잡혔다. 한화그룹 관계자들은 총수 부자가 사고를 칠 때마다 사건을 무마하고 언론 보도를 막으려고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그룹의 한 임원은 “솔직히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직원들 마음이 항상 조마조마하다”고 털어놓는다. 미국의 세계적 가치투자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아무리 성장성이 큰 기업이라도 CEO의 자질이 의심스러우면 투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경영자의 부정이나 판단 미스는 선진국 기업에서도 벌어진다. 하지만 굳이 재벌의 총수 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히며 세계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진국 기업들은 잘못이 드러난 경영자는 교체한다. 하지만 한국 재벌은 총수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교체할 수 없다. 총수가 절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왕조가 망하기 전에는 왕이 바뀌지 않듯이, 총수가 바뀌는 것은 외환위기 때처럼 재벌이 망할 때뿐이다. 절대 권력은 내부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다. SK의 한 고위 임원은 최태원 회장 형제의 선물투자 손실과 횡령 사건에 대해 “개인과 법인이 같은 펀드에서 돈을 운용하면 누가 봐도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누군가는 막아야 했는데 아무도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의 한 고위 임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다. “경영권을 둘러싸고 총수 형제 간에 골육상쟁이 벌어졌을 때 이러다간 모두가 공멸한다는 직언을 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총수가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간 목이 날아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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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독립성 없고 솜방망이 처벌 관행
재벌의 총수 리스크를 키우는 배경으로는 여러 요인이 꼽힌다. 우선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성이 없고, 주주들의 감시·견제 기능이 약하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이지수 변호사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멤버가 총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채워지다 보니 사실상 독립성이 없다”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된 사외이사들에 대해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지수는 2010년 기준으로 아시아 11개국 중 9위에 그친다. 2007년보다 4계단이나 떨어지고, 대만과 타이보다도 낮다.
기업 외부적으로는 인수·합병(M&A) 시장이 발달되지 않아 경영권 위협 요인이 거의 없고,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가들도 제 구실을 못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소중한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책임이 크고, 재벌에 대한 마땅한 견제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총수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주총에서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 7%에 불과할 정도로 의결권 행사에 소극적이다. 국민연금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인 지홍민 이화여대 교수와 김우찬 고려대 교수가 최태원 SK 회장의 하이닉스 이사 선임에 중립을 지키기로 한 국민연금의 결정에 반발해 위원직을 사퇴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검찰과 법원이 재벌 총수가 법을 어겨도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거나, 대통령이 기업인에 대한 사면·복권을 남발하는 것은 법치주의 훼손 우려까지 낳는다.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난해 6월 삼성테크윈 임직원들의 내부 비리가 적발되자 질타하며 한 말이다. 이후 삼성은 대대적인 내부 감사에 착수했고, 이는 대규모 인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듯,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한국의 재벌 총수들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지수 변호사는 “총수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사면은 외국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총수들의 도덕적 해이만 더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한 예로 2001년 회계부정 스캔들로 몰락한 미국 에너지 대기업 엔론의 전 CEO인 제프리 스킬링(58)은 24년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태광 이진호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는 이례적인 경우다. 그동안 정몽구 현대차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등 비리 혐의로 기소된 재벌 총수들은 기업 경영을 통한 사회 기여 등을 명분으로 모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세 차례 실시된 기업인 사면·복권 내용을 살펴보면, 형이 확정된 날로부터 사면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년2개월에 불과하다. 는 이런 한국의 현실을 겨냥해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옛날 표현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제투명성기구도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탈세와 배임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특별사면을 받은 것은 법 집행에 대한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 이행보고서에서 한국을 소극적 (해외 뇌물 금지) 이행국으로 분류했다.
쏟아지는 총수 견제 방안은 실행될까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한국 사회의 투명성 수준은 국제적으로 하위권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1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 10점 만점에 5.4점을 받아 조사 대상 183개국 중 43위를 기록했다. CPI 점수는 2010년과 같았으나 순위는 39위에서 43위로 4단계나 하락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 한국의 CPI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재벌이나 법원, 검찰, 대통령을 탓하기 전에 국민부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재계의 한 임원은 “스스로 글로벌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이 미행 사건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일반 국민이나 언론이 의외로 무덤덤한 반응만 보이는 게 사실은 더 심각한 문제”라며 “사건 이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건희 회장은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삼성전자는 가장 들어가고 싶은 직장으로 꼽히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정치권은 총선과 대선 양대 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업 범죄와 관련해서는 유전무죄 풍토를 쇄신해 총수 리스크를 없애야 한다는 데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범모 민주통합당 전문위원은 3월6일 참여연대 등이 공동 주최한 경제민주화 정책토론회에서 “특경가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처벌 대상이 되는 기업인의 횡령과 배임 등에 대해서는 법원 최저 형량을 5년에서 7년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재벌 총수와 임원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검찰과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은 또 검찰이 운영 중인 검찰시민위원회를 통해 검찰의 봐주기 수사와 기소에 대해 심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새누리당도 엄정한 법 집행과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견제 장치를 마련해 대기업 임원 및 대주주 일가의 각종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서민들과 차별 없이 엄정하게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국민경제에 큰 피해를 준 재벌 범죄에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제한 또는 억제하는 방안에도 한목소리를 냈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총수 리스크와 관련해 재벌과 재벌 총수를 구분하는 전략을 제기한다. 그는 “경제 개혁의 급소는 재벌 총수 문제부터 바로잡는 것”이라며 “논란이 많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같은 방안보다는 재벌 총수의 범죄에 대해 특경가법의 최저 형량을 7년, 10년으로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을 어긴 재벌 총수들을 자꾸 감옥으로 보내면 총수들 스스로 조심해서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해당 재벌이나 한국 경제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일종의 ‘총수 리스크 선제 개혁론’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의 주장은 재벌 문제의 본질을 사회통제를 받지 않고 오히려 지배하려는 거대 자본권력의 문제로 여기는 시각과도 닿아 있다. 거대 경제권력인 재벌을 통제하려면, 그 맨 위에서 사실상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재벌 총수들을 통제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거대 경제권력을 정부가 제대로 통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소유지배구조 개선이 근본적 처방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시장의 감시·견제를 강화하는 대책도 내놓았다. 통합진보당은 ‘거수기’ ‘고무도장’이라는 말을 듣는 사외이사제 대신 독립이사제를 도입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 이사는 경력, 학력, 금전관계, 인간관계 등 모든 측면에서 대주주나 경영진에서 독립된 인물만이 맡도록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제안한 노동자 경영 참가와 종업원지주제 활성화도 노동자들의 권한 강화와 함께 재벌 총수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민주당은 대주주 전횡을 막고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다중대표소송 도입,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요건 완화, 기업공시 확대 및 주총 활성화, 상장사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 완화 등의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김우찬 교수는 “지금은 중요한 안건들을 이사회 결의로 처리하는 일이 많은데 의무적으로 주총 안건으로 만들어 주총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회사 기회유용 사안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김 교수는 “주총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주총 안건을 지금처럼 2주 이전이 아니라 3~4주 이전에 공개하도록 하고, 전자투표를 의무화해서 소액주주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수 리스크를 해소하려면 총수 절대 권력의 토대가 되는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한 예로 지주회사제 규제를 강화해 자회사와 손자회사에 대한 최소 지분을 지금의 20%(비상장사는 40%)에서 40%(60%)로 높이는 방안이나, 영국식 의무공개매수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의무공개매수제는 대주주가 30% 이상 지분을 취득하면 나머지 주주들의 주식도 자신의 매입 최고 가격으로 사들이도록 의무화하는 것으로, 재벌들이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를 늘리는 것이 어려워져 주력 기업에만 집중하게 유도할 수 있다.
총수 리스크가 심각하다고 해서 오너 경영 체제를 무조건 반대할 필요는 없다. 오너 경영은 오너 경영대로, 전문 경영은 전문 경영대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가 정몽구 회장이 주도한 과감한 해외투자와 품질경영을 통해 세계 5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한 것이나,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으로 글로벌 IT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대표적인 오너 경영의 성공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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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로 갈수록 총수 리스크 커지는 추세”
전문가들은 창업 초기에는 오너 경영이 강점을 보이지만 2·3세로 넘어갈수록 약점을 노출한다고 지적한다. 김기원 교수는 “총수의 무능과 부패는 현 한국 재벌 체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라며 “창업주는 경영 능력이 뛰어나지만 2·3세들은 경영 능력에 대한 유전자가 없어 이런 능력을 물려받지 못한데다, 승계시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구조조정 전문회사인 서울인베스트먼트의 박윤배 대표는 “과거에는 오너 경영 체제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반반이었는데, 갈수록 총수 리스크가 커지는 추세”라며, 오너 체제에서 망해버린 쌍용차와 대우건설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쌍용차의 경우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경영해서 망해버린 것을 채권단이 인수해 ‘코란도 신화’로 살려냈는데, 대우가 다시 인수해서 망했고, 이후 채권단이 다시 ‘렉스턴 신화’로 살려냈더니 중국 상하이차가 인수해 다시 망해먹었다. 대우건설도 대우에서 망한 것을 채권단이 살려냈더니, 금호아시아나가 다시 망해먹어 산업은행이 인수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존 액턴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설파했다. 총수 리스크를 제거하지 못하는 한 재벌의 오너 경영 체제는 지속되기 어렵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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