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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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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가족이 ‘말아먹은’ 기업들

구치, 시그램, 스타인버그 등 창업주 일가의 부패·분쟁 탓에 위기에 빠졌던 가족 기업 많아…노블레스 오블리주 지키며 가족간 상호견제 전통 이어가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도 있어
등록 2012-03-15 14:32 수정 2020-05-03 04:26

군주와 오너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엄청난 권력을 가진다. 이들을 견제할 힘도 적다. 권력은 자주 대를 잇는다. 이들이 오판이라도 하면 피해는 막심하다. 이런 유사점 때문에 자주 착각도 생긴다. 어떤 오너들은 마치 군주처럼 행세한다. 그렇게 오너가 어리석거나 탐욕스러우면 그 피해는 더 커진다. 그 예는 외국에서도 무수하다.

골육상쟁 끝에 넘어간 구치 경영권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낸 구치 일가의 몰락은 ‘오너 리스크’를 대표한다. 1921년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역의 가죽 상점에서 유래한 거대기업은 1950~60년대를 거치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1953년 창업자인 구초 구치가 사망한 뒤에는 아들인 알도가 중심이 돼서 거대기업을 거느렸다. 불행히도, 이 회사에서 오너 가족의 공과 사는 구분되지 않았다. 알도는 불법적으로 수백만달러를 해외 지사에 빼돌리고 개인 자금으로 유용했다. 회사가 개인의 금고쯤으로 인식되니, 가족도 재물을 탐했다. 알도는 심지어 자신의 아들, 동생, 조카까지 뒤섞인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그는 아들과 조카의 밀고로 1986년 미국 뉴욕 연방법원에 나와 회사 공금 1100만달러를 유용하고 700만달러를 탈세한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다. 그의 조카인 마우리치오도 알도의 아들인 파올로의 신고로 탈세 혐의로 수백만달러의 벌금을 내기도 했다. 가족끼리 진흙탕 싸움을 하는 동안 회사는 점차 기울었다. 삼촌과 사촌을 모두 쫓아내고 경영권을 쥔 마우리치오는 고가의 브랜드 전략을 고수했지만 실력 없는 경영자의 손에서 회사는 좌초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회사의 재정 투자자들이 마우리치오가 경영자로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고, 다름 아닌 마우리치오 자신이 삼촌과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끌어들인 투자회사인 인베스트코프가 회사를 인수했다. 막장까지 갔던 구치 일가의 이야기는 마우리치오가 그의 전 부인이 보낸 살인청부업자에게 살해되면서 마무리됐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 핵심부터 부패한 전형적인 예였다.
세계적 주류 브랜드인 시그램의 몰락도 오너 일가가 자초했다. 시그램을 일으킨 샘 브론프먼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다. 자동차의 헨리 포드, 금융의 피어폰트 모건, 석유사업의 존 록펠러처럼 주류산업에는 브론프먼이 있었다. 그가 1920년대 미국 금주령 실시 때부터 캐나다를 중심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그램 왕국’은 1980년대 들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창업주의 아들이던 에드거는 1987년 돌연 자신의 둘째아들 에드거 주니어를 계승자로 임명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새로운 오너의 나이는 겨우 31살이었다. 그는 대학에 가는 대신 영국 영화판에서 경력을 쌓았을 뿐인 청년이었다. 기업을 경영한 경험은 없다시피 했다.
이사회는 재벌 3세에 회의적이었고, 젊은 오너는 이사회를 무시했다. 그는 자신의 관심사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사업의 중심을 옮겼다. 2000년 프랑스의 거대기업 비방디와의 합병이 대표적인 예였다. 투자은행의 충고도 듣지 않고 무리하게 진행한 모험은 재앙으로 돌아왔다. 무리한 합병 과정에서 빚은 불어났고, 선대의 주류사업은 같은 해 다른 주류 대재벌인 디아지오에 매각됐다. 가족기업의 실패담을 소개한 의 저자 그랜트 고든 영국 가족기업연구소 소장은 시그램의 예를 들며 이렇게 풀이했다. “강력한 가족의 권력은 있었지만, 적절한 구속과 의사결정은 없었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부족한 것은 갈등이었다. 브론프먼가가 필요한 것은 가족과 가족이 아닌 이들이 함께 참여한 활발한 논의였다. …그렇지만 이 가족기업은 마음대로 변덕을 부리고 개인적인 취향대로 운영됐다.”



“강력한 가족의 권력은 있었지만, 적절한 구속과 의사결정은 없었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부족한 것은 갈등이었다. 브론프먼가가 필요한 것은 가족과 가족이 아닌 이들이 함께 참여한 활발한 논의였다. …그렇지만 이 가족기업은 마음대로 변덕을 부리고 개인적인 취향대로 운영됐다.” -그랜트 고든 영국 가족기업연구소 소장

에릭손, 스카니아, 사브의 발렌베리

캐나다의 유통업체인 스타인버그는 지금은 잊혀졌지만 한때 퀘벡 일대를 석권했던 슈퍼마켓 체인이다. 특히 1960~70년대 캐나다에서는 ‘스타인버그에 간다’는 말이 마트에 간다는 말과 동의어일 정도로 번창했다. 잘나가던 회사의 적은 다름 아닌 오너 자신이었다. 샘 스타인버그 회장은 20년 넘게 독불장군식 경영 스타일을 유지했다. 회사는 1970년대 들어 점차 하강곡선을 그렸다. 스타인버그 회장이 딸과 사위를 경영에 줄줄이 끌어들이자 문제가 커졌다. 이들은 상업적인 실무 경험이 없었다. 족벌주의 정책이 확연해지자 유능한 실무진은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스타인버그 회장이 1978년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거대한 권력 공백이 생겼다. 이를 수습하지 못한 자식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었다. 이 기업은 1989년에 매각됐다. 고든 소장은 이렇게 풀이했다. “(일부 오너들은) 가족이라면 열심히 일하고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예상해버린다. 스타인버그 가문의 이야기는 그릇된 족벌주의가 기업 성공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가족 화합에도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의 말로가 항상 불행한 것은 아니다. 내부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있다면 가족기업이 건전하게 성장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 이 1992년에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가족기업은 무려 37%를 차지했다. 여기서 가족기업은 ‘최고경영자가 창업 가문의 일원이거나 창업자의 자손인 기업’을 지칭했다.

대기업의 소유자로 귀감이 되는 곳이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다. 이 집안의 이름이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도 휴대전화 회사인 에릭손, 대형트럭 브랜드인 스카니아와 자동차회사 사브 등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런 쟁쟁한 자회사를 거느린 발렌베리그룹은 스톡홀름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한다. 막대한 규모에도 스웨덴 사회에서 발렌베리를 둘러싼 잡음은 적다. 오너 가족 특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덕이 크다. 이 집안 출신의 외교관인 라울 발렌베리는 ‘스웨덴의 신들러’로 기억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2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독일 땅에서 구출하도록 돕다가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살해된 경력 때문이다.

» 스웨덴 쇠데르텔리 지역의 스카니아 버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스웨덴의 대재벌 발렌베리 그룹은 스카니아뿐 아니라 에릭손, 사브 등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한겨레> 정혁준

» 스웨덴 쇠데르텔리 지역의 스카니아 버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스웨덴의 대재벌 발렌베리 그룹은 스카니아뿐 아니라 에릭손, 사브 등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한겨레> 정혁준

놀랄만큼 소박한 발렌베리 사주 재산

발렌베리그룹 사주들의 재산도 상대적으로 ‘소박한’ 수준이다. 발렌베리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의 야코브 발렌베리 회장의 주식 재산은 2004년 기준 53억원 정도였다. 발렌베리그룹 전체 경영을 양분하고 있는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의 주식 재산도 174억원 정도다. 주식 재산이 1조원대를 넘나드는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과 대조적이다. 이들의 행보는 다른 스웨덴 대기업들과도 달랐다. 세계 최대 가구업체인 이케아를 소유한 캄프라드 가문이나, 정사면체의 우유 용기인 테트라팩을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테트라라발의 라우싱 가문이 무거운 세금을 피해 스위스로 옮겨가는 동안,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에 머물며 부를 자신들의 이름을 딴 재단에 기부했다.

발렌베리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쓰는 경영 기법도 독특하다. 말하자면 ‘투톱 경영’ 방식이다. 발렌베리는 항상 2명의 리더를 둬 잘못된 판단의 가능성을 줄이고 그룹 최상층부에서부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했다. 1856년 설립된 SEB에 기원을 둔 이 그룹은 20세기에 들어서는 이복형제 혹은 사촌이 ‘투톱’을 이루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물론 발렌베리의 성공 이면에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산업왕조’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대기업 오너들이 권력 독점이나 부패의 덫에 자주 걸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독일 최대의 철강업체 티센크루프는 가족기업 가운데서도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오너가 나서서 ‘독하게’ 세습의 고리를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티센크루프의 전신인 크루프사는 1810년 독일 에센 지역에서 창업한 이래 독일을 대표하는 철강기업으로 성장했다. 번창하던 기업은 6대를 앞두고 위기를 겪기 시작했다. 5대 오너인 알프리트가 2차 세계대전 기간에 히틀러 정권에 협조한 혐의로 2년간 복역하는 동안에도 살아남은 회사였다. 문제는 알프리트의 아들인 아른트였다. 그는 6대 오너로 낙점을 받았지만, 방탕한 생활로 독일 안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비싼 자동차와 보석, 미녀들에 둘러싸인 그의 얼굴은 경제지보다 대중지에 자주 오르내렸다. 아버지는 아들을 설득했다. 1968년 아들은 수십억마르크의 재산과 경영권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해마다 200만파운드의 연금을 받게 됐다. 비판도 있었다. ‘회사를 위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자’에게 수백만마르크를 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독일이 자랑하는 기업 크루프는 그렇게 철부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됐고, 막대한 부는 ‘알프리트 폰 볼렌 운트 할바흐 재단’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거대한 가족기업이 사라지는 대신, 하나의 단단한 기업이 독일 경제에 새로 등장했다.

어리석은 오너를 걸러내는 시스템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C. 호어 앤드 컴퍼니’도 독특한 경영 스타일로 오너 가족의 부패를 막아왔다. 1672년 설립된 호어는 300년 넘게 문을 여는 동안 소설가 제임스 오스틴, 시인 바이런,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 등이 고객으로 드나든 것으로도 이름 높다. 현재는 창업자의 10대와 11대손 7명이 일종의 이사인 ‘파트너’로서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창업자의 가족이라고 해서 아무나 파트너가 될 수는 없다. 기본 요건을 충족하려면 먼저 대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외부에서 금융 관련 경험을 얻어야 한다. 그다음에 실무능력 평가를 거쳐 파트너 전체의 동의를 받은 뒤에야 경영에 참가할 수 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파트너가 된 프레드릭 호어는 1961년 런던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은행의 경영 스타일을 설명한 윌리엄 오하라 미국 브라이언트대학 교수는 그의 책 에서 “과거에 무능한 가족이 회사를 무너뜨릴 뻔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안전장치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어리석은 오너가 순식간에 ‘폭군’으로 돌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현명한 기업은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참고 문헌 (예지), (재승출판), (새로운제안),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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