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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도가 땅에 떨어졌다

검증을 빙자한 공격으로 얼룩진 10·26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네거티브의 금도를 묻다…
조·중·동에 방송3사까지 가세한 네거티브 공세 펼쳤지만 오히려 투표로 심판 역풍 맞을 수도
등록 2011-10-28 12:36 수정 2020-05-03 04:26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통로 왼쪽)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통로 오른쪽)가 10월21일 직능단체연합회 간담회에 참석했다. 두 후보 중 한 명은 서울시장이 된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통로 왼쪽)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통로 오른쪽)가 10월21일 직능단체연합회 간담회에 참석했다. 두 후보 중 한 명은 서울시장이 된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선거는 싸움이다. 상대가 있다. 경쟁 상대를 누르고 이겨야 당선된다. 그래서 선거 용어는 대체로 전쟁과 관련이 깊다. 선거에 관한 언론 보도를 보면 ‘선거전(戰)에 돌입했다’고 하고 ‘공방(攻防)을 벌였다’고 쓴다. 전략(戰略)과 전술(戰術), 진용(陣容) 등도 모두 전쟁 용어다. 후보들은 선거에 나서며 초반엔 항상 선의의 경쟁, 정책 대결을 약속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사에 그런 선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는 정치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 후보 캠프에서 나온 50여 건의 공식 논평 제목만 보더라도 박 후보에 대한 공세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두 얼굴의 사나이, 공상허언증 환자, 제왕적 시민운동가, 기부금 사냥꾼, 까도남(까도 까도 의혹이 또 나오는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공상허언증 환자, 기부금 사냥꾼…

상대가 있는 모든 싸움과 게임이 그러하듯 선거에도 룰이 있다.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법에 엄격하게 규정돼 있다. 하지만 선거법이라는 그물망은 복잡다단한 현실 세계를 모두 얽어매지는 못한다. 움직이는 세계를 따라잡지도 못한다. 돈에는 엄격한 반면 ‘입’에는 관대한 편이다. 문제가 되는 ‘말폭탄’들이 법정에 가더라도 그에 대한 판결 전에 선거는 끝난다.

10월26일 자정께 당선자의 윤곽이 드러날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는, 박 후보와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단일화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9월 말 시작됐다. 김대은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9월29일 “부적절 모금 논란 박원순 변호사, 철저한 검증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성희롱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쫓겨난 강용석 무소속 의원이 ‘박원순 저격수’를 자처하며 쏟아낸 각종 의혹은 여러 번의 변주를 거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색깔론’으로 이어졌다.

홍 대표는 10월20일 “언론 보도를 보면 아름다운재단이 2008년 촛불 사태를 주도했던 좌파 시민단체에 지원한 돈이 50억원가량 된다. 시민들로부터 또는 재벌로부터 돈을 모아서 좌파 시민단체나 자기들하고 취향이 맞는 시민단체에만 임의로 돈을 배분하고 보육비나 양육비까지 줬다는 제보도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를 전파하고 모금운동, 나눔운동의 모범 사례로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아름다운재단이, 상임이사 출신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자 졸지에 ‘좌파 시민단체의 자금줄’이 돼버렸다. 홍 대표의 주장을 참으로 놓고 보면, 서울시장 시절 월급 전액을 이 재단에 기부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아름다운재단과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 정부 부처의 ‘색깔’도 의심해야 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 이뿐 아니다. 한나라당과 나경원 후보 선거캠프는 선거 기간에 검증이라는 문패를 달고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의 학력과 병역, 그리고 재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의혹을 제기하고 거듭 반복했다. 나 후보 캠프에서 나온 50여 건의 공식 논평 제목만 보더라도 박 후보에 대한 공세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두 얼굴의 사나이, 공상허언증 환자, 제왕적 시민운동가, 기부금 사냥꾼, 까도남(까도 까도 의혹이 또 나오는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박 후보 캠프의 논평 30여 건 가운데 나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고 나머지는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가장 강도 높은 표현이 “나경원 후보는 동문서답으로 발뺌하지 말고 진실을 고백하라” 정도였다.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가 10월20일 자신의 멘토단원들과 서울 인사동길을 걷고 있다. 왼쪽부터 유홍준 교수, 공지영 소설가, 박 후보, 뒷줄 오른쪽부터 금태섭 변호사, 임옥상 화가, 박재동 화백. <한겨레> 강창광 기자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가 10월20일 자신의 멘토단원들과 서울 인사동길을 걷고 있다. 왼쪽부터 유홍준 교수, 공지영 소설가, 박 후보, 뒷줄 오른쪽부터 금태섭 변호사, 임옥상 화가, 박재동 화백. <한겨레> 강창광 기자

박원순 캠프의 반네거티브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는 편파적 방송과 친한나라당 성향의 보수신문들에 의해 증폭됐다. 지난 10월10일부터 19일까지 열흘 동안 한국방송·문화방송·SBS 등 방송 3사와 조선·중앙·동아의 선거 보도를 모니터링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이지혜 부장은 ‘긴급점검-서울시장 선거 방송보도’ 토론회에서 “방송 3사는 한나라당의 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는 적극 보도한 반면, 나 후보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였으며, 방송이 장악됐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망가졌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인 모니터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또 “조·중·동 신문의 경우 기사량도 편파적이지만 구시대적 색깔공세마저 적극 동조하며 박 후보 흠집내기에 앞장섰다”고 덧붙였다.

선거전이 가열되자 박원순 후보 캠프의 점잖던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 지난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지고 사퇴한 오세훈 전 시장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시장을 뽑는 보궐선거이고,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안철수 열풍’을 등에 업고 서울시장에 도전한 만큼 유리한 선거였는데도, 선거가 ‘박원순 청문회’ 양상으로 진행되자 나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해 공세적 태도로 돌아섰다. 박원순 캠프의 우상호 대변인은 10월20일 “저쪽이 원하는 대로 네거티브에 네거티브로 대응하면 그 작전에 말려드는 것이어서 ‘반(反)네거티브’ 공세를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후보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의혹이라는 이름을 붙여 거짓을 말하는 게 선거는 아니다. 전략이라는 명분을 붙여 막말과 악선전으로 선거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건 정치가 아니다. 더군다나 그런 방법으로 시민들을 선거와 정치에 등 돌리게 만들려는 건 중대한 범죄”라고, 시민사회에서 정치사회로 넘어와 겪은 애환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박원순 후보에 대해 흑색선전을 하다고 하는데 우리가 하는 것은 네거티브가 아니고 서울시장이라는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검증 절차다. 자신들이 선거 때마다 또는 인사청문회 때마다 행했던 그 행위를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들은 네거티브를 해도 되고 한나라당은 정당한 검증을 하는 것도 안 된다면서 구태정치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태 자신들은 지난 10년 동안 구태정치를 해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태정치가 아니라 정당한 검증 절차라는 항변이다.

상대 후보의 부정적 면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은 엄연히 선거운동 방식 가운데 하나다. 경쟁 후보와 차별성을 드러냄으로써 지지자를 규합하고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 이들의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네거티브 선거운동이 ‘적정선’을 유지하면 검증이지만, 이 선을 넘어가면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이 된다.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 되고 일부 사실만을 부각시킨 침소봉대가 된다. 문제는 적정선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이쪽에서는 검증이지만, 저쪽에서는 악선전이 된다. 인기 프로그램인 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충분한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가다.

한나라당 홍준표(오른쪽부터) 대표최고위원과 박근혜 전 대표,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10.26 재보궐선거 공식 유세 첫 날인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벤처기업협회를 방문해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나라당 홍준표(오른쪽부터) 대표최고위원과 박근혜 전 대표,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10.26 재보궐선거 공식 유세 첫 날인 1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벤처기업협회를 방문해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MB 심판론 프레임 바꾸려

‘반네거티브’를 표방한 박원순 캠프의 우상호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은, 나경원 캠프 쪽에서 네거티브 선거운동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있다. 우 대변인은 10월20일 등을 통해 제기된 나 후보의 변호사 시절 세금 탈루 및 재산 축소 신고 의혹 등을 밝히라고 요구하며 “나경원 캠프의 방식”을 원용해 나 후보를 공격했다. 이런 식이다. “오세오닷컴(법률정보 인터넷 사이트)이나 (나경원 후보 자서전)을 보면 석·박사를 마쳤다고 돼 있고, 일부 신문에 법학 박사로 기재돼 있다. 나경원 후보 방식대로라면 학력 위조(나 후보는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편집자)로 몰아세울 수 있다. 나 후보의 남편 김재호 판사의 작은아버지가 살아 계신데 왜 3대 독자(3대 독자여서 6개월 보충역으로 병역을 마쳤다- 편집자)로 했느냐고 박원순 후보를 공격했듯 똑같이 할 수 있다. 김 판사의 부친 가족이 개성에서 월남한 이산가족이라 국내에서 생존한 줄 모르고 따로 호적을 만든 결과 그렇게 됐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공격하지 않았다. 강제징용의 슬픈 과거를 왜곡한 나 후보처럼 똑같이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래선 안 된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면서 ‘우린 니들과 수준이 달라’ 식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전략이다.

한나라당과 이에 맞서는 민주당 등 야권이 뭐라 이름 붙이든, 나경원 후보 쪽의 주요 선거운동 방식이 네거티브 전략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해 한나라당의 고위 당직자들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홍 대표는 와의 통화에서 “이번 선거는 오세훈 전 시장이 투표(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해서 치르게 된 것으로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게임 틀을 바꾼 게 초반 20% 이상 열세를 극복한 원인이다. MB 심판론 프레임을 박원순 검증론으로 바꾼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과의 통화에서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전략이 목표하는 바를 집어냈다. 김 교수는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후보의 최대 자산은 도덕성이다. 한나라당이 박 후보 흠집내기에 주력하며 느슨해진 자신들의 지지자를 결속시키는 동시에 정치 불신과 환멸을 부추겨 유동층을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도 ‘버스 vs 지하철의 싸움’으로 표현되는, 지난 10월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국민경선을 기억하고 있다. 민주당이 버스와 자동차로 띄엄띄엄 선거인단을 실어나른 반면, 박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유권자들은 지하철에서 쏟아져나왔다. 선거 전략을 책임지고 있는 한나라당의 한 고위 인사는 “네거티브 공세를 통해 박 후보에게 실망하거나 의구심을 가진 20~30대 유권자가 투표장에 나오지 않아야 한나라당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다시 박 후보 쪽으로”

한나라당의 자평대로 현재까지는 네거티브 전략이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약발’이 끝까지 갈지는 불투명하다. 가 30대 남녀 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적집단 심층좌담(Focus Group Discussion) 결과를 보면, 전업주부인 정아무개(36)씨는 “원래 부잣집 딸인 나경원 후보보다, 강남에서 잘살면서도 밑창 떨어진 신발을 신는 박원순 후보가 가식적으로 느껴져 싫다”고 말한 반면, 회사원 김아무개(31)씨는 “안철수씨 때문에 박 후보를 지지했다가 말이 자꾸 바뀌는 것 같아서 좀 실망했는데 지금은 나 후보가 너무 심하게 헐뜯는 것 같아 다시 박 후보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네거티브 선거운동에는 부작용도 따르는 법이다. ‘가족이 행복한 생활특별시’ ‘새로운 서울, 박원순이 하면 다릅니다’를 각각 내세우고 있는 나 후보와 박 후보의 공약이 부각되지 않는 것도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후과 가운데 하나다.

최종 결과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안다. 하지만 투표함을 열더라도,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효력은 투표율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 명징하게 드러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역대 비슷한 규모의 선거와 비교해 투표율이 높을 요인과 낮을 요인이 혼재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선거의 투표율은 53.9%(전국 투표율은 54.5%)였다. 평일에 치르는 재·보궐 선거는 휴일인 전국 단위 선거 때보다 투표율이 낮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한 곳에 출마해 관심이 고조됐던 지난 4·27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49.1%였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보궐선거여서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도 있지만, 기존의 정치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겠다는 박 후보가 정치 무관심층과 어느 정치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무당파층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투표율 상승 요인도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가 네거티브 양상으로 흐르면서 정치 무관심층과 무당파의 투표 참여 욕구가 많이 옅어졌으라는 분석이 많다.

여론조사 및 선거 전문가들은 투표율을 40% 중반대로 전망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적극투표층은 60%를 웃돌지만 실제 투표율은 이보다 20% 이상 낮게 나온다. 4·27 분당을 보궐선거보다 선거구가 광범위하고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서울의 투표율보다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가, 낮을수록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네거티브가 심할 경우 일반적으로 투표 참여 열기가 떨어지지만, 반한나라당 정서가 넓게 퍼져 있고 네거티브 운동이 야당 후보에만 집중된 데 대한 거부감으로 ‘투표로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높아질 수도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


‘기울어진 축구장’ 경쟁의 끝은?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이명박 정부 들어 각종 재·보궐 선거의 투표율이 과거에 비해 높아져 국회의원급 선거는 40% 중반대가 나온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무당파와 중도층인 부동층이 줄어든 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성화 등으로 투표율이 높아질 요인이 있는 반면, 평일인데다 유권자와 선거운동의 접촉면이 적어 투표 참여 의무감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네거티브 선거운동과 투표율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그는 “네거티브가 심할 경우 일반적으로 투표 참여 열기가 떨어지지만, 반한나라당 정서가 넓게 퍼져 있고 네거티브 운동이 야당 후보에만 집중된 데 대한 거부감으로 ‘투표로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높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투표율과 투표 결과를 전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와 유사한 전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바람을 타고 시민사회에서 정치사회로 넘어온 비정치권 인사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어 거대 여당 후보와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경쟁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검증이라는 이름의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리며 자신의 비전과 구상을 펼쳐 보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채 선거일을 맞았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왜 부정적 메시지에 끌리나?
생존 위해 부정적 자극에 예민해졌다


사람들은 왜 부정적 메시지에 끌리는가. 인지심리학에서는 ‘인지적 대조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한다. 부정적 정보는 평소 접할 기회가 긍정적 정보보다 드물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쉽게 주목하고 수월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바이오·뇌공학을 전공한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는 “생존과 번식에 위협적인 메시지일수록 반응성과 수용도가 높아진다”는 진화심리학의 가설에 주목한다. 오랜 자연선택 과정에서 인간은 생존 확률을 높이려고 긍정적 신호보다 부정적 자극에 민감해지도록 신경 시스템과 감성 구조를 발달시켜왔다는 것이다.
실제 심리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실험 결과가 있다. 피실험자들에게 여러 장의 사진 이미지를 보여준다. 절반은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들, 공원에서 키스하는 연인 같은 긍정적 이미지, 나머지 절반은 기름을 뒤집어쓴 오리, 교통사고 현장처럼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다. 두 종류의 이미지를 무작위로 섞어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준 뒤 전체적 인상을 물어보면 답은 한결같다. “우울하다. 비관적이다.” 인식 과정에서 부정적 자극이 끼치는 효과가 긍정적 자극보다 강하다는 얘기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의 김영보 부소장은 이것을 인간의 뇌구조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뇌간·중뇌·전두엽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감정활동을 관장하는 것이 중뇌(감정뇌)다. 중뇌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 외부 위협을 감지해 신체의 방어작용을 작동시키는 ‘편도핵’과 기억활동을 제어하는 ‘해마’다. 김 부소장은 “편도핵의 방어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데는 부정적 메시지가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에 다른 메시지보다 쉽게 흡수되고, 해마의 기억회로에도 잘 저장된다”고 말한다.
이런 분석은 ‘네거티브 캠페인’이 투표 결과로 초래될지 모를 잠재적 부담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미래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합리적 유권자들의 욕구에 부합한다는 정치학자들의 주장에도 논거를 제공한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유권자로 하여금 특정 후보가 주요 공직에 당선된 뒤 정책 판단 실수나 도덕적 결함 등으로 생겨날 수 있는 위험성에 주목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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