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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드디어 그분들이 나오신다?

박원순 변호사는 추석 즈음에 출마 의사 밝힐 가능성, 안철수 대표는 “언론이 앞서간다”고 말해… 뜨거워진 선거전, 복잡해진 셈법
등록 2011-09-07 09:22 수정 2020-05-02 19:26

판이 커졌다. 폭탄이 터졌다는 아우성도 들린다. 중량급 정치인은 물론 재계와 시민사회 명망가들의 출마설이 잇따르는 탓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다. 출마를 저울질해온 정치권의 당사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관전자들이 느끼는 흥미는 날이 갈수록 배가되고 있다. 중심에 서 있는 두 인물은 박원순 변호사(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안철수 서울대 교수다.

“출마 명분 정교화에 공들여”

지난주 초부터 여의도는 술렁였다. 인터넷판이 8월31일 밤에 보도한 ‘박원순 출마 검토’ 기사 때문이었다. 기사는 한 측근의 말을 인용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한두 가지 검토할 사항이 있어 최종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틀 뒤(9월2일)엔 안철수 출마설이 모든 신문에 비중 있게 보도됐다. 한나라당이 그의 출마를 반긴다는 소문도 뒤따랐다.

박원순 변호사(왼쪽)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

박원순 변호사(왼쪽)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

정치권은 두 사람의 출마가 서울시장 선거판은 물론 2012년 총선과 대선에 미칠 파급력에 주목한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일각에선 박 변호사의 출마가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검찰 수사로 불리해진 선거 판세를 다시 야권 쪽으로 기울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한다. 한나라당도 개혁 이미지의 안 교수가 무소속 출마를 결행할 경우, 범야권 지지층을 잠식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에 유리한 국면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눈치다. 박 변호사의 출마는 야권에, 안 교수의 출마는 여권에 호재로 여겨지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박 변호사의 출마 가능성이 안 교수보다 높아 보인다. “(출마를)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안 교수와 달리 박 변호사는 복수의 채널을 통해 야권 통합 경선 구도에 대한 생각까지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의 핵심 측근은 9월2일 과의 통화에서 “최근 보름 새 출마 여부를 집중적으로 고민했다”며 “늦어도 추석 전 주말(9월9~10일)에는 언론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부터 백두대간 종주 산행에 나선 박 변호사는 일행 4~5명과 함께 9월2일 현재 대관령~진고개 구간을 통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측근은 “애초 민통선 안쪽인 향로봉까지 종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향로봉 구간에 들어가려면 군부대의 허가도 받아야 하고 장기간 산행에 따른 피로도 만만찮아 마등령에서 마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 경우 8일 저녁이나 9일 오전 산에서 내려와 공식 출마 선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사실상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논리와 명분을 가다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러브콜과 측근들의 출마 권유를 뿌리치고 외국으로 나갔던 그이기에, 출마 명분을 정교화하는 데 상당한 공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박 변호사의 또 다른 측근은 “지난해 이미 시민단체의 상징적 인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 사이 진행된 정치적 변화를 보며 중립성을 지키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며 “출마 선언을 한다면, 시민운동을 하던 자신이 왜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지, 20년을 맞은 한국 지방자치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정책 구상을 밝히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 단일 ‘원샷 경선’ 선호

일각에선 박 변호사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 야권의 통합후보 선출 방식과 한명숙 전 총리의 거취가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 변호사와 오래 시민운동을 해온 시민단체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박 변호사가 나선다면, 각 당이 경선을 통해 당의 후보를 선출한 뒤 단일화하는 단계적 방식보다는,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 번의 경선을 통해 민주진보 시민사회의 단일 후보를 선출하는 ‘원샷’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각 당이 자체 일정에 따라 후보자를 선출한 뒤 단일화 경선을 하면, 지난해 경기지사 후보 단일화나 지난 4월 김해을 재보선에서처럼 일정이 늦춰지고 흔쾌한 승복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다.

하지만 각 후보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린 이 경선 방식이 박 변호사 쪽의 뜻대로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역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공식 출마 선언을 한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경선다운 경선으로 야권 통합 후보를 내야 한다. 민주당 경선을 배제하고 밖에서 뭘 하겠다면 이것은 꼼수”라며 이른바 ‘원샷 경선론’을 주장하는 당 안팎의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명숙 총리의 거취도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야권 후보군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고 개혁적 이미지에 박 변호사와도 가까운 한 전 총리가 나설 경우, 박 변호사가 출마를 고집할 명분이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박 변호사 쪽은 그다지 영향받을 일이 없다는 태도다. 박 변호사의 한 측근은 “일단 결심이 서면 누가 출마를 선언하든 그것 때문에 흔들릴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한 전 총리가 출마하면 출마하는 대로, 그 구도에 맞는 전략을 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 등 민주당 당권파와 사전교감설에 대해선 강하게 부인했다. 희망제작소의 한 관계자는 “박 변호사가 산에 들어간 한 달 동안 직접 접촉이 불가능했고, 전화도 안 가지고 들어갔다”며 “다만 내가 박 변호사에게 조언할 요량으로 정치권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려고 여의도 쪽에 취재를 나가 민주당 안팎의 중견 정치인들에게 의견을 구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와 가까운 학계의 한 인사는 “민주당 통합추진위원회가 박 변호사와 어느 정도 교감한 속에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민주당 주류 쪽도 내심 박 변호사가 입당해 민주당의 간판으로 나섰으면 하지만, 그게 안 되더라도 나쁠 건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 변호사 쪽 움직임에 비하면 안철수 교수 쪽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흘러나오는 얘기들도 구체적이지 않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 대부분 ‘시골 의사’로 알려진 박경철씨를 통해 전해진 것이다. 박씨는 주민투표 실시 문제로 논란이 한창이던 6월 초부터 학계 인사 등을 찾아다니며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나갈 생각이니 캠프에 들어와 도와달라”는 제안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와 친분이 있는 서울 지역의 한 대학교수는 “법륜 스님의 정토회와 박경철이 운영하는 청년아카데미 등을 조직 기반으로 삼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철수 출마설에 민주당 긴장

안 교수는 언론에 출마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9월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열린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출마를) 결심했다는 언론 보도는 앞서간 것”이라며 “지금은 너무 일정이 빠듯해 고민할 시간조차 없다. 맡고 있는 일들을 다 끝낸 다음에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출마설로 가장 긴장하는 쪽은 민주당이다. 특히 중도세력을 지지층으로 삼는 손학규 대표 쪽의 위기의식이 크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안철수는 정치의 자장 안에 있는 플레이어다. 청춘콘서트도 의도적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거부, 시민정치·반정치의 정치를 조직하려는 것”이라고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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