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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우리는 어디에 살까?

“획일화된 아파트 추락” vs “그럼에도 아파트다”… 생태주의, 1인 가구, 환금성 등 변수로 전망 엇갈려도 주택정책 체질 개선에 한목소리
등록 2011-06-02 15:27 수정 2020-05-03 04:26

10년 뒤 아파트는 어떻게 될 것인가. 디자인 전문가, 대학교수, 부동산 전문가, 건설업계 관계자 등에게 물었다. ‘공동체 붕괴’라는 점에서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 대한 반성을 공통분모로 삼았지만 그 대안이 아파트의 변형이 될지, 새로운 단독주택 형태로의 한 단계 진화가 될지는 의견이 갈렸다. 반성은 주택정책에도 미쳤다. 10년 뒤 아파트에서 현재의 환금성과 수익이 유지될 것이라는 의견은 드물었다. 오히려 몇년째 이어져온 위기설은 여전히 건재했다. 위기가 바로 지금이냐, 몇 년 더 유보된 것이냐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전경. 전문가들은 파편화된 공동체를 되살리는 방식으로 아파트의 형태와 구조가 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겨레21 김경호

»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전경. 전문가들은 파편화된 공동체를 되살리는 방식으로 아파트의 형태와 구조가 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한겨레21 김경호

이미 시작된 아파트의 변신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과)는 “아파트에 산소호흡기를 댈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대단지로 상징되는 아파트의 주거 형태는 개별 수요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본다. “흙 묻는 운동을 하러 나갈 곳이 없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집에 대한 회의는 새로운 주거 형태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며, 이제 더 이상 국민 모두에게 반값으로 획일화된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라며 “20세기 방식의 공룡기업이 진행하는 대단위 단지 사업은 저급한 것”이라고 못박는다. 한 대기업의 아파트처럼 한 층에 한 집이나 두 집이 들어선 낮은 층의 아파트나, 한 집이 층당 15평 정도로 3층을 차지하는 아파트와 같이 새로운 형태가 이미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는다. 나아가 아파트가 당분간 주거 형태로 존재하더라도 마당을 두고 이웃과 공동생활을 도모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박해천 홍익대 연구교수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해천 연구교수는 “아파트 자체의 평면 설계나 공간 구조가 우리가 봐왔던 형태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땅콩주택’(한 필지의 땅에 두 채의 집을 짓는 공동주거 형태)이나, 형태적으로는 마당을 둔 단독주택이지만 보안·교육 등 주거 서비스를 공유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아파트 단지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1인 가구 증가와 급속한 고령화 추세를 볼 때 획일화된 고비용의 아파트 구조는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변화를 전망하는 현실적인 근거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부동산학과)는 “현재 아파트의 주거 형태가 향후 10여 년간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 교수는 “현재 일반적인 단독주택과 아파트 단지를 비교하면 아파트 선호는 당연하다. 주차 공간, 보행 환경, 교육, 보안 등의 서비스를 비교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아파트라는 구조가 좋아서라기보다 아파트에서 누리는 서비스가 기존 단독주택에 비해 월등히 좋다는 점에서 반사적 선호가 있다는 게 주요한 근거다. 기존 단독주택에서 현재 아파트에서 구현되는 서비스를 기대하려면 개별 주택이 바뀌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지역 전체가 건설 비용을 들여 바뀌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아파트 선호 압도적

아파트의 건재를 단언하는 근거로 일반의 이중성을 들기도 한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설문조사를 하면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하는 의견이 절반을 넘어서지만, 실제 비용을 지급할 때는 압도적으로 아파트를 선호한다”며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여전히 부족하고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주차·육아·보안 등 생활 편의성에서 현재 등장하는 다른 대안이 아파트를 대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강남 지역 아파트의 생활문화를 전 지역에서 차용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실제로 국민은행이 조사한 주택금융 수요실태 조사를 보면, 아파트 선호는 2000년 이후 단 한 번도 5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3월 실시한 선호 주택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서도 아파트가 67%, 단독주택이 26%일 정도로 아파트의 인기는 여전하다. 박 연구원은 1인 가구의 증가도 아파트 존속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요인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박 연구원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존 아파트 이용은 비혈연 가구나 무연고 가구처럼 공동주거 형태로 대체되고, 새로운 아파트는 1인 주거를 위한 공동주거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며 “삶의 질을 생각하면 개인별 공간 수요는 늘 가능성이 높다. 소형차보다 여전히 중·대형차가 잘 팔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현재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 대한 비판이 일시적 유행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고령화 시대에 노인 인구의 사회활동과 여성의 경제 참여가 보장되려면 편의성이 극대화된 공동주택이 아니면 안 된다. 아파트 주거에 대한 피로도가 증가했다고 하지만, 이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고 친환경·건강 중심 주택으로의 전환도 여럿이 부담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독주택에서 실현하는 것보다 아파트가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아파트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주거 형태에만 있지 않다. 아파트를 향한 욕망이 환금성과 미래 수익에 크게 기댄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파트 가격을 둘러싼 현재의 거품론은 주요한 변수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월간 에 쓴 글에서 “전세든 구매든 20평짜리 아파트를 수용해야 할 20대가 지급 여력이 없고 1인 가구 형태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순간, 사실상 투기는 종료된다”며 “빚내서 집을 살 수 있는 중산층은 한국 내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우 소장은 이로부터의 공황을 예견하기도 한다. 1980년, 1998년에 이은 새로운 경제위기를 예견하며 “경제에 최악은 없으므로 언제든지 차선책 혹은 최소화 방안이 있겠지만 지금 같은 토건 중심의 경제체제라면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택정책 전환만이 붕괴를 막는다

김수현 교수는 “10년의 여유는 있다”고 전망한다. 아파트 수요가 기존 단독주택보다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당장의 붕괴를 말하기 어렵다는 점, 수도권 인구가 2020년에 가서야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근거에 기반을 둔 전망이다. 문제는 2020년 이후다. 김 교수도 과거의 관성대로 부동산 경기 부양에 매달리고 마구잡이 공급을 한다는 전제 아래 우울한 미래에 동의한다. 그때는 수십 년의 거품이 한꺼번에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을 더한다. 대안은 부동산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며 주택정책 체질 개선에 나서는 것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현재 주택정책의 방향을 돌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불행히도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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