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떠난 섬을 개가 지켰다. 주인 잃은 개들이 거리를 배회하다 허공을 향해 짖었다.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 미운 것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개가 짖어대는 하늘은 아직 미명의 낌새도 비치지 않았다. 11월24일 새벽 4시, 연평도는 어둠이었다. 어둠을 밝히는 것은 화약의 잔불이었다. 산마다 불이 붙었다. 전날 낮까지도 연평도 대나루 큰 산에는 갯바람 먹은 솔잎 향기가 그윽했을 것이다. 이제 화약 냄새만 을씨년스럽다.
건물은 찢어졌다. 인간이 만든 삶의 물건은 인간이 만든 죽음의 물건에 간단히 찢겨졌다. 신축 건물 공사장의 컨테이너 사무실도 본모습을 알 수 없게 찢겨졌다. 나중에 이곳에서 민간인 2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새벽의 어둠과 포탄의 잔불에 눈을 빼앗긴 기자는 차가운 죽음의 증거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망자의 주검이 수습된 뒤 그 자리를 다시 찾았다. 주검이 모두 수습된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살점을 보았다. 살점에 포탄 파편이 박혀 있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살점을 보았는데, 어찌 글로 옮겨야 좋을지 산 사람은 알지 못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섭다. 살아남아 대면하는 공포가 죽은 이에 대한 슬픔보다 앞선다. 포탄이 떨어질 때, 연평초등학교 1·2학년 학생은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학교에서 공부하던 3·4학년들은 무서워서 울었다. 대피소로 옮긴 아이들은 오줌을 바지에 지렸다. 아이들을 다독이던 연평초등학교 교무부장 선생님도 “여기 온 지 1년이 안 됐는데, 무섭고 불안하다”고 아이들 안 듣는 곳에서 기자한테만 말했다.
“피란 다녀왔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최경화(65) 할아버지는 예전에 들었다. 부모님의 고향은 평양이었다. 연평도로 들어와 가난한 살림의 둥지를 틀었다. 아들을 낳았다. 6·25 전쟁이 터지자 부모님은 다섯 살 아들 손을 잡고 육지로 피란했다. 부모님은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린 아들은 이제 환갑을 넘겼다. 최경화 할아버지도 어제는 피란을 다녀왔다. 희망근로를 나갔다가 전쟁 났다는 소리에 대피소로 도망갔다. 연평도에서 가난은 대물림됐다. 전쟁만은 대물림되지 않을 줄 알았다.
가난을 피할 것인지 전쟁을 피할 것인지 연평도 주민들은 생각이 많았다. “이제 연평도는 굶어 죽게 생겼어. 외지인들은 아무도 안 올 거야.” 유리창이 모두 깨진 집 앞에서 주민 유현숙(53)씨가 말했다. 이날 오전부터 면사무소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민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생명을 위협하는 이곳에 더 이상 살기 싫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김응곤(53)씨는 “연평도에서 이제 살 수 있을지 무섭기만 하다”고 말했다. 부서진 집 앞에 앉아 사발면을 먹던 60대 노인은 ”여유 되는 사람들이야 나가면 되지만, 우리처럼 여유 없는 사람들은 인천에 나가도 지낼 곳이 없다. 무조건 여기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인은 지난 밤 이후 사발면이 첫 끼니였다.
고심은 풀리지 않는데 날은 속절없이 바뀌었다. 25일 아침, 20평이 채 안되는 연평초등학교 옆 대피소에서는 아직 섬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이 스티로폼을 잠자리 삼아 군용 담요로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나는 무릎이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해. 나는 안 나가도 되죠?” 주황색 점퍼와 헐렁한 일바지 차림의 50대 아주머니는 “나는 안 나가도 되는 거냐”고 기자에게 몇 번을 물었다. “아직 마을에 남은 주민들은 모두 면사무소로 모여주십시오.” 갓 복구된 마을 스피커가 울렸다. 무릎이 아프다는 아주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해경특공대원과 주민대책위원회 주민들은 연평도 남부리와 동부리의 민가 지역을 돌아다니며 남아 있는 이들을 찾았다.
낮 12시, 부두에 주민들이 모였다. 해경 경비정에 올랐다. 죽은 자도 함께 배에 올랐다. 전날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두 명의 관이 배에 실렸다. 육지를 향하는 노인과 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극소수 주민들만 연평도에 남았다. 오후 5시, 이날의 마지막 여객선이 부두를 떠나려는데 40대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배에서 내렸다. “여기 해병대 기지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눈에 밟혀 도저히 못 가겠어요. 전역이 보름밖에 안 남았는데….” 해병대에 아들을 둔 어머니는 남편이 따라 내릴까 걱정하며 몸을 숨기고 떠나는 배를 바라보았다. 부부는, 그리고 모자는 함께 손잡고 섬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빈 거리에 다시 개가 짖었다.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 미운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연평도=사진·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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