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11월을 건넜다. 그러나 공포의 끝은 멀고 깊다. 공포 너머 공포다. 한국전쟁 60년 만에 20대가 사실상 ‘전쟁 세대’를 자처하고 있다. 연평도 공격에 따른 불안과 분노가 가장 거칠게 폭발한 세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평도의 비극은 이것이다. ‘1950년 전쟁 세대’의 깊은 상처를 추스르고 화해하며 남북 정상이 만나기까지 반세기가 걸렸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12월1일 발표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국민 여론에 미친 영향’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20대(35.7%)에서 가장 높았다. 30대(32.5%)는 물론 40대(25.1%), 50대 이상(19.6%)을 크게 앞섰다. 연평도 포격 이후 해병대 지원자(12월1~2일)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가량 증가했다. 가장 위험하다는 수색병과에는 11명 정원인데 이미 66명이 지원했다. 병무청 실무자는 “(추세대로라면) 지난해 12월 해병대 지원율인 2.2 대 1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공교육에서 자유롭고, 21세기 남북 해빙을 청소년기에 목도한 세대다. 이 극적인 변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MB 정부의 대응 불신해
은 20대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을 벌였다. 취업정보기관 인쿠르트에 의뢰해 11월29일~12월2일 20대 394명(남 231·여 163)에게 조사했다. EAI의 설문을 원용해, 전체 세대의 응답과 견주고자 했다. EAI는 전체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하되 20대는 156명만 포함했기 때문이다. 표본을 확대해본 결과, 20대의 ‘공포 지수’는 기성세대의 것과 더 벌어졌다. ‘전쟁 세대’로서의 징후가 더 짙었다.
EAI가 설문한 전체 성인 가운데 지금의 전반적 안보 상황을 매우 또는 약간 불안해하는 이들은 81.5%였다. 하지만 ‘20대만의 설문’에선 356명(90.3%)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불안의 근거는 또렷하다. 전쟁 가능성이다. 전체 세대는 26.8%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고 말했으나, 20대는 2명 중 1명꼴(49.2%)로 ‘전쟁 위협’을 느낀다. 특히 20대 여성들의 전쟁 불안(55.8%)이 20대 남성의 것(44.6%)을 압도했다. 안보 상황에 대한 불안감도 여성은 95.7%였다. 남성의 86.6%를 크게 넘는다.
EAI 조사에는 없던 공포의 이유를 따로 물었다. 20대는 ‘국가의 전반적 위기 관리 시스템 부재’(37.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천안함 침몰 때와도 크게 다른 것으로 보인다. 원인이 명백하고 사상 초유로 언론 중계가 이뤄진데다, 사상자는 적지만 민간인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북쪽 도발로 남쪽 민간인이 숨진 건 1987년 11월 KAL기 폭파와 이명박 정부 시절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사망 사건(2008년 7월)이 마지막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탈냉전 이후 태어난 세대이고 한반도 내부에서 평화 공존의 환경에서 사회화된 세대”로 20대를 규정하며 “연평도 사태는 이들이 처음 경험한 적대적 경험이고 노골적인 민간 폭격으로 충격이 셀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정부의 ‘혼란스러운 대북 대응 방향’에 대한 비판(20.1%)에서 ‘미온적 응징 탓’(19.5%)으로 이어진다. 외교도, 전쟁도 모두 실패한 무능력한 정부를 발견한 데서 온 좌절이 공포의 시작인 셈이다.
‘징집 대상 세대’로서의 불안 확산도 커 보인다. 대학 학보사 기자였던 권소영(22·여)씨는 “학과 친구의 친구가 전사한 서 병장이고, 군대에서 휴가 나오기로 한 친구들이 모두 비상이라며 잠도 못 잔다는 전화를 받거나 하는 식”이라며 “같은 세대로 더 피부에 와닿고, 뭔가 더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설명한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사회학)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추측하건대 군 징집 대상인 젊은 사람들에게 전쟁에 대한 공포가 좀더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며 “그동안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관념적이었다면 이젠 현실적으로 바뀌었고 전쟁 두려움도 현실화됐다”고 분석했다.
강경한 대북 대응 지지도 높아불안 너머 때로 광기가 되기도 한다. 햇볕정책이 현 사태의 원인이라는 보수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몰입한다.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한 사이트에는 ‘연평도 북괴 도발 갤러리’가 11월23일 생겼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 나아가 호남에 대한 지역감정까지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다.
사건 이후 경제교류·관광 등 남북관계 중단을 바라는 목소리도 20대에서 가장 컸다. 전체 세대는 42.5%가 찬성한 반면, 20대는 59.4%가 지지했다. 30대 37.2%, 40대가 40.3%였고, 50대 이상도 46.2%에 그쳤다. 남북관계 중단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20대는 32.5%에 불과해 전체 세대의 53.9%와 격차가 더 컸다.
이 국면에서 누구도 얻을 게 없어 보인다. 가장 탈민족적인 세대가 가장 반북적인 세대가 되었다. 가장 탈정치적 세대가 가장 반정부적 세대가 되었다. 일주일 새의 변신이다.이 국면에서 누구도 얻을 게 없어 보인다. 가장 탈민족적인 세대가 가장 반북적인 세대가 되었다. 가장 탈정치적 세대가 가장 반정부적 세대가 되었다. 일주일 새의 변신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크게 추락했다. EAI의 전체 설문 결과를 보면, 10월 말 51%의 국정지지율은 11월27일 44.2%로 기울었다. 일부에선 1박2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대통령 지지도가 60%대까지 올랐다고 소개되던 차다.
20대의 대통령 지지율 추이는 정밀하게 추적되지 않는다. 다만 ‘20대만의 설문’에서 드러난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26.4%(매우 또는 대체로 잘하고 있다)로 세대별 평가 중 가장 인색하다. EAI 조사에서 전체 지지율은 34.6%였고, 40대는 41.2%, 50대 이상은 62%에 달했다.
20대의 정치·사회적 입장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강원택 교수는 “지금은 용서할 수 없고 화가 나는 상황이라 그럴 법한 반응을 보이지만, 단계적 대응으로서 지속적일지는 두고 봐야 한다”며 다만 “정치·사회적 판단이나 실제 선거 등에서 후보자의 선택 기준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경제가 가장 큰 주제가 되면서 이명박 후보가 떠오른 것처럼 국가 안보가 주요 이슈가 되면 그에 맞는 누군가 떠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냥, 살고 싶은 소시민”
EAI가 2000년부터 당대의 ‘안보 불안감’을 설문한 이래 2010년 11월은 꼭짓점이다.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의 18.9%는 이명박 정권 이후 59.2%(2009년 3월 2차 북 핵실험), 66.8%(천안함 침몰), 81.5%(연평도 포격)로 물 끓듯 비등했다. 이를 20대가 앞장서 체화하는 형국이다. 향후 대북 노선을 ‘강경책’으로 요구한 20대는 70%로 전체 세대의 42.7%를 무색하게 한다. 오늘의 상처가 내일의 남북관계에서 어떤 장애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20대들을 보는 어떤 시선은 그래서 아리다. “난 북한을 옹호하지도 않고 전쟁을 종용하지도 않으며 젊은이들을 깊이 애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멍청함이 북한과의 관계를 망가뜨렸다는 진실과 수많은 주요 이슈들이 오늘의 사건으로 인해 당신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트위터 @more_log)
“전쟁은 현재와 미래까지 지워버립니다. 여러분… 어떻게든 전쟁은 막아야 합니다. 정말 힘들지만, 어떻게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서 사태를 안정시켜야 합니다. 저 좌빨(좌파) 아닙니다. 그냥, 살고 싶은 소시민입니다.” (게임 커뮤니티 ‘루리웹’ 토론방)
공포가 진실을 가릴 때, 가장 공포스러워진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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