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땅에 정의가 온전히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의가 승리한 적도 드물다. 옳은 자는 이기지 못했다. 강한 자가 이겼다. 그러다 보니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과 재력을 거머쥔 자들은,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고 승리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믿음을 키워왔다.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향한 갈망이 커진 것일까. 정의롭지 못한 자들이 정의의 사도로 포장하고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2010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묻기 시작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무엇이 정의인가?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김영사 펴냄)가 ‘정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인문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30만 부를 돌파했다. 이는 단지 미국 명문 대학의 명강의를 정리한 책이라는 이름값이나 대형 출판사의 뛰어난 마케팅의 힘만은 아닐 것이다.
‘정의 열풍’ 이전부터 조짐은 있었다. ‘잃어버린 10년’을 주장하면서 집권한 세력의 퇴행의 정치를 보면서, 행동하는 양심과 사람사는 세상을 강조했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인권·평화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자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 힘을 실어주는 이들도 늘어났다. ‘정말 이건 아닌데…’ 하고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던 이들이, 아주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온 ‘정의’라는 단어에 끌린 것은 아닐까.
는 정의가 무엇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례를 실감나게 제시함으로써 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샌델 교수와 함께 정의의 딜레마를 고민하고 아리스토텔레스·벤담·칸트·롤스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사를 여행하면서, 추상적인 정의라는 개념의 윤곽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은 그 여정을 반복할 생각은 없다. 대신 2010년 대한민국에서 정의가 무엇인지, 정의가 잘 실현되고 있는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먼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노무현 정부)과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명박 정부)의 ‘정의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각각 진보개혁 진영과 보수 진영의 논객이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국정 운영에도 깊이 간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정의의 원칙이 무너졌을 때 국가권력은 얼마나 어떻게 개입해야 하느냐, 세금과 복지·교육정책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등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정계·학계·문화계·시민사회 영역의 오피니언 리더 37명에게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것이 정의였다. 다양한 대답 속에서 정의는 완성태가 아니라 끊임 없는 지향이고 과정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바야흐로 정치권에서도 ‘정의 담론’이 득세하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허울뿐인 단어였던 ‘정의’가 비로소 본뜻 그대로 살아날 것인가. 이 독자 여러분을 정의의 토론장으로 초대하며 던지는 질문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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