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검찰은 ‘인도 걷지 않은 죄’에 무리한 대응했나… 김경한 장관, 긴급회의 소집하여 직접 진두지휘
▣ 김남일 기자 한겨레 법조팀 namfic@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표지이야기 2부-요동치는 정치권]
검찰의 나라 걱정이 각별하다. 걱정이 지나쳐, 서울 한복판에서 화염병과 보도블록이 날아다니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폭도들이 경찰차를 방화할까 불안해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거리행진과 관련해 2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인도를 걷지 않은 죄’로 경찰에 강제로 연행됐다. 검찰은 이들의 형사처벌 수위 결정을 경찰에 맡기지 않고 직접 챙겼고, 대학생·주부·회사원·자영업자 등 대부분을 불구속 입건하는 강수를 뒀다.
공안검찰 주도? 토대가 없다
검찰은 “도로 점거는 심각한 공안 사안”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국 뉴욕의 슬럼화를 설명하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든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근처의 멀쩡한 건물과 도시로 슬럼화·범죄화가 급속히 확산된다는 이론이다. 시민들이 차도를 걷다 보면 돌도 던지고 싶어지고, 쇠파이프도 들고 싶어지고, 불놀이도 하고 싶어진다는 논리다. 그러니 “불법을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가 된다.
검찰의 이런 ‘소심증’은 이미 ‘인터넷 괴담’ 수사 방침을 세울 때부터 그 증세가 보였다. 보수언론에서 ‘광우병 괴담’ ‘독도 괴담’ 등을 대서특필한 바로 그날 검찰은 발빠르게 처벌을 위한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출처도 불명한 괴담에 혼란을 겪거나 국가 미래가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유언비어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검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우발적인 도로 점거에 공안대책협의회를 열고 갖가지 과장과 거짓이 생산되고 떠도는 인터넷에서 괴담의 ‘배후’를 찾겠다는 검찰의 태도는 ‘오버’다. 한마디로 ‘급’에 안 맞는 수사에 검찰이 전면적으로 나선 것이다.
“10대들이 나서면 보수는 불안해진다. 검찰은 원래 보수에 가깝다.” 서울 지역 검찰청의 한 부장급 검사는 “2002년 효순·미선양 추모 시위의 충격이 컸다. 이번에도 교복을 입은 10대들이 떼를 지어 거리로 나왔는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라고 했다. 깻잎머리를 한 10대들의 ‘준동’이 검찰의 소심증과 불안을 자극했다는 말이다. 거리는 사람들에게 ‘절박한 축제’지만 검찰에겐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일 뿐이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 ‘국가는 우리가 지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런 게 바로 ‘구공안’의 자세라고 말했다. “공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던 시기가 5공”이라는 것이다. ‘구공안’은 김대중 정권 시절에 과거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온 공안검찰 청산론과 함께 나온 ‘신공안’의 상대적 개념이다. ‘질서와 인권의 조화’를 내건 ‘신공안’이 과연 성공했는지에 대해선 의구심도 많지만, ‘좌파 정권 10년’ 동안 공안 수요가 줄며 공안의 입지가 줄어든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지난 대선 이후 부쩍 늘어난 공안 관련 사건을 두고 그동안 질식해 있던 공안검찰이 보수정권 재탄생을 배양액 삼아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시민단체와 야당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공안검찰이 지금의 상황을 주도하는 것일까. 검찰 내부에선 고개를 젓는다. 공안정국을 이끌 만한 공안의 물적 토대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검찰 내 공안 라인을 살펴보면 그 말이 맞다. 박한철 대검 공안부장은 특수·기획통에 가깝다. 김희관 대검 공안기획관이나 국민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도 전통적 의미에서 ‘공안’으로 분류하긴 어렵다. 공안통인 박청수 전 대검 공안기획관(현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이나 임수빈 전 대검 공안1과장(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역시 공안 라인에 배치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DJ 정권이 들어선 뒤로 공안 인맥이 끊겼다. 한 번 공안은 어디 가도 공안인 시절이 있었는데, 보직을 이리저리 섞기 시작하면서 관리가 안 됐다”고 말했다. 대표적 공안통으로 참여정부 시절 연거푸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던 황교안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전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의 검사장 승진 등을 공안의 부활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검찰은 ‘공안정국’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친다. 과거 공안정국으로 분류되는 시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가혹하기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제발 공안정국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 공안이라는 말이 가지는 이미지를 알지 않느냐”고 말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군사정권 시절의 공안이 막 나갔다면, 지난 10년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느슨해진 경향이 있다. 과거의 구공안으로 돌아가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난 정권처럼 해서도 안 된다”며 이른바 ‘공안의 변증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요즘 검찰의 모습에서 변증법적 공안의 실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공안 분위기 조성은 검찰 내부의 동력보다는 외부에서 추동되는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공안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누구일까.
검찰 안팎에선 김경한 법무부 장관을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5월26일 김 장관은 법무부의 모든 실·국장을 서울 세종로에 있는 법무부 분사무실로 호출했다. 새벽 6시30분에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회의에서 김 장관은 “불법 집회·시위를 주동하거나 극렬 행위를 한 사람뿐 아니라 선동·배후조종한 사람도 끝까지 검거해 엄정 처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법무부 장관은 통상 ‘도로 점거’ 정도의 사안에 나서지 않는다. 그런데도 “극렬” “선동” “끝까지” 등의 극한 용어를 써가며 진두지휘를 자처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공안대책협의회가 열렸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불법 집회에 엄정 대처해 법질서 확립과 새로운 시위문화를 찾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고 말했지만, 촛불집회만큼 평화적 시위는 없었다.
“극렬” “선동” “끝까지”
정무직인 법무부 장관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 인사를 직접 관장하고 검찰총장을 간접 지휘하지만 그 경계는 불분명하다. 검찰 관계자는 “법무부가 법질서 바로 세우기를 강조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법무부 장관은 힘이 너무 세다”고 말했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강조되는 검찰 조직문화에서 ‘기수’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사시 19회인데, 김 장관은 무려 여덟 기수나 높은 사시 11회다. 전임 정상명 검찰총장이 사시 17회,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성호 국정원장이 사시 16회였던 것과 비교된다.
검찰 내부에서도 “엄포를 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처벌은 대증요법인데, 상황 인식이 정확해야 대증요법도 정확히 나온다. 발생 원인, 참가자, 모이는 메커니즘이 구닥다리들이 놀 때와 다르다. 한총련, 민주노총의 폭력집회가 아니다. 그런데 옛 공안의 시각에서 대응하다 보니 핀트가 안 맞았다. 공안의 몫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은 다른 해결 장치들을 찾아야 한다. 쇠고기? 검·경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정치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 아닌가.” 공안 경력이 있는 한 검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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