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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 어찌하오리까

등록 2003-05-29 00:00 수정 2020-05-02 04:23

일대 논쟁 속에 탈퇴자들 행렬… 연민 떨쳐버리지 못한 재가입도 지속적으로 이뤄져

“제발 탈퇴하시는 분들은 조용히 떠나주세요. 못 얻어먹을 밥에 재라도 뿌리겠다는 뜻인가요. 한결같이 공개적으로 ‘노사모를 떠나며’라는 제목으로 ‘지난 대선에서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다니며(혹은 밥 대신 라면을 끓여먹으며) 얼마를 송금했는데… 아까워서 죽겠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제발 부탁드립니다. 부디 떠날 때는 말 없이 떠나주세요.”(노사모 홈페이지 www.nosamo.org의 아이디 ‘독불장군’)

한총련·전교조 발언 등에 실망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가 비판적인 여론에 휩싸이면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극적인 승리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노사모를 비롯한 지지자들 사이에 일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전 파병 결정, 대북송금 특검 결정, 방미 때 이뤄진 ‘정치범 수용소’ 발언, 한총련과 전교조 관련 발언 등에 대해 실망을 나타내면서 최근 노사모 회원들의 탈퇴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핵심 지지층이 내부에서부터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노사모 중앙사무실 온라인 담당 상근자인 조슬기씨는 “‘노짱’이 취임하시고 나서 몇번 비판적인 여론이 일 때마다 많게는 하루에 150명 정도가 탈퇴했다”면서 “특히 방미 발언이 이뤄진 때 가장 탈퇴가 많았다”고 소개했다. 조씨는 그러나 “이라크전 파병 결정 때도 그랬지만 탈퇴가 급하게 이뤄진 뒤 다시 재가입하는 회원이 많아서 전체적으로는 취임 직전과 비교해볼 때 수백명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노사모의 회원 수는 온라인 기준으로 8만3100여명(5월24일 현재)에 이른다.

지지층의 분열 양상은 특히 노사모 등 노 대통령의 지지층과 최근 문제가 된 사안들의 이해관계자가 상당 부분 겹치는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노사모 회원 가운데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나 환경운동과 관련된 이들이 많은데 노 대통령의 전교조 관련 발언을 듣고 지지 의사를 철회하거나,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입장 표명이 늦어지는 것을 보고 노사모에서 탈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노사모 회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한숨과 함께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하다고 지지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노사모 회원인 고광석(41·한의사)씨는 지난 5월23일 열린 경기 고양·파주 지역 노사모 지역총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예전과 달리 분위기가 무겁죠. 노 대통령을 걱정하는 목소리만 계속 나왔습니다. 당선되기 전에는 인기가 없어도 된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옳은 길이라면 그냥 가야 하는데 너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대통령이 되셨으면 말을 좀 조심해야 하는데 말이 너무 나가는 것 같다는 등의 얘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얘기를 계속 나누다보면 서로가 위안거리를 찾죠.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아직 100일도 안 됐는데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임기 말에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게 해주자는 등의 얘기죠. 그래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를 지지한 본질적인 이유는 자존심을 지키고 약자를 배려하자는 것이었는데 최근 들어 이뤄진 감정적인 발언을 보면 그런 ‘정신’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요.”

극단적 입장은 별로 없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탈퇴한 회원 가운데 노 대통령에 대한 연민을 떨쳐버리지 못해 재가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같은 광범위한 ‘동정론’과 ‘이해론’의 배경에는 노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깔려 있다고 지지자들은 말한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노사모 회원은 “대선 직전 며칠 동안 밤을 세워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표를 모았던 이들인데 실패한 대통령이 되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공통의 의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소수 정당 대표로서 다수 야당을 상대하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점, 여당 안에서조차 대통령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을 정도로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 취임 초기부터 북한 핵 위기 등으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던 점 등을 거론하면서 현실적인 한계를 강조하는 이들도 지지층에 다수 포함돼 있다.

“지난번 방미 직전 국회 외교통상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는데 여당 의원 가운데서도 참석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죠.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취임 2개월 된 대통령이 맞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기를 2개월 남기고 레임덕 현상에 허덕대는 대통령에게도 그렇게는 안 할 겁니다.” 민주당에 대한 노사모 차상호 회장의 지적에는 섭섭함과 답답함이 배어 있다.

지난 3월 초 라는 책을 쓴 노사모 회원 윤재해(42·카피라이터)씨는 “회원 전체의 흐름을 보면 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극단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노사모는 5월31일 1박2일의 총회를 통해 최근의 사태와 관련한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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