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만큼 얘기가 풍성한 먹을거리가 있을까? 등 오로지 평양냉면만 다룬 책도 봇물 터지듯 출간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식탁에 올라 스타가 된 평양냉면은 ‘이젠 비둘기를 대신할 평화의 상징’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월이라도 방한해 남한의 유명 평양냉면집이라도 찾는다면 그 인기는 거의 폭발적일 것이다. ‘면스플레인’(평양냉면에 대해 가르치려는 태도나 마음가짐), ‘평뽕족’(평양냉면에 중독된 이들) 등 신조어도 만들어낸 우리 시대 최고의 ‘핫’한 음식, 평양냉면. 인기의 힘일까, 평양냉면 가격은 꾸준히 올라 2010년대 초반 1만원을 넘더니 최근엔 면의 고급화를 내세우며 1만7천원으로 올린 냉면집도 있다. 물론 싸다고 정직하다든가,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몰염치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적정 가격이 최선이다. 먹는 이나 파는 이나 흡족할 만한 가격은 얼마일까? 2회 걸쳐 고민의 장을 마련했다.
곰탕집 주인 ‘샘이나’씨는 올여름 옆집 평양냉면집 때문에 속이 쓰렸다. 폭염이 몰아쳐 뜨거운 곰탕은 안 팔리는데, 옆집 손님이 자신의 가게 문 앞까지 길게 줄을 섰기 때문이다. 그는 내년엔 평양냉면집이나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만약 샘이나씨가 가게를 연다면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뭘까?
평양냉면의 정수는 육수원재료비와 인건비를 합한 비용을 ‘프라임 코스트’(원가)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프라임 코스트가 65% 넘기면 영업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게 외식업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평양냉면집 원재료의 두 축은 육수를 우리는 데 쓰는 고기와 메밀 등의 가루다. 한 외식업자는 평양냉면집 원가에서 고기가 차지하는 부분이 가장 크다고 한다.
서울 시내 유명 평양냉면집과 신흥 냉면집은 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국내산 한우 사태(다릿살)나 양지(앞가슴부터 복부 아래쪽 살) 혹은 육우, 오스트레일리아산이나 미국산 쇠고기, 국내산 돼지고기, 닭고기, 사골, 잡뼈 등을 쓴다. 고기 종류의 배합은 내밀한 그 집만의 비법이다. 배합에 따라 육수 원가는 차이가 난다. 아무리 예민한 미식가도 육수 맛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긴 어렵다. 수입 쇠고기와 한우의 가격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축산 전문가는 대략 3~4배 차이가 난다고 했다. 한 요리사는 “한우로 우린 육수는 확실히 그윽하다”고 평한다. 냉장이냐 냉동이냐에 따라서도 가격 차이는 난다. 한우를 쓰는 유명 냉면집이 많은 것을 보면, 육수의 기본은 한우인가보다. 입고 가격이 궁금하다.
한 유명 냉면집 A의 8월8일 한우 거래명세서를 보니, 이날 고기 구매액은 563만6400원이었다. 8월은 성수기다. 이 집은 양지나 사태뿐만 아니라 설도(엉덩이 아래 넓적다릿살) 등도 쓴다. 냉동 설도 가격은 59만9200원, 한우 양지는 31만1600원. 나머지가 냉장 한우 사태 가격이다. 8월20일 구매액은 407만원. 약 한 달 전인 7월13일 구매액은 392만6300원이었다가 30일엔 562만4500원으로 늘었다. 서울 강남 새로 생긴 냉면집 B도 여름 한 달 한우 구매액이 약 2600만원이었다고 한다.
면 원가는 한 달 기준 3600만원식당에선 육수용 고기를 수육으로 조리해 판다. 만약 차림표에 수육이 없다면 고기로 육수를 내는지 의심할 만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육 맛을 보면 그 집 고기의 종류나 질을 가늠해볼 수 있을까?
한국의 유명 미식가 예종석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이자 한양대 교수는 “이른바 유명하다는 평양냉면집들은 수육을 꽤 잘 만드는데, 솜씨가 한몫하는 것”이라고 했다. 단적으로 수육과 육수용 고기의 질을 연관짓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 9월30일 찾은 B냉면집 주인은 “수육을 맛보면 그 집 고기의 질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외국산 메밀 20㎏ 가격은 10만~12만원이다. 1㎏당 5천~6천원이다. 국내산 메밀은 더 비싸다. 1㎏당 1만3천원 정도. 20㎏은 100인분의 면을 뽑을 수 있는 양이다. A냉면집에선 여름에 하루 1천 그릇 이상 팔렸다. 대략 추정하면 면 원가는 한 달 기준 3600만원이다.
원재료에 손님 회전율·전기사용료 등 포함 원국내산 메밀을 쓰는 평양냉면집은 매우 적다. 주로 중국산이나 몽골산을 쓴다. 최근엔 미국산 메밀이 인기다. 식당업자 C는 “추운 겨울에 재배된 몽골산 메밀의 질이 좋다. 아예 밀가루나 전분을 섞은 제품을 쓰는 곳도 있다”며 “훨씬 편리하다”고 한다. 메밀과 밀가루, 전분 등을 섞는 비율도 집마다 다르다. 예종석 교수는 “식감이 미끄러운 면은 밀가루 등의 함량이 많을 확률이 높다”면서 “하지만 (메밀 함량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들도 계절에 따라 식감 차이가 난다”고 했다. 식감은 개인 취향이기에 씹히는 정도로 ‘명품’ 냉면의 기준으로 삼을 순 없다는 얘기다. 순면은 반죽하기도 힘들고 손실도 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서울 시내 유명 냉면집을 자주 다닌다는 냉면 마니아 직장인 이준호(59·가명)씨는 “오래된 냉면집은 바뀐 게 거의 없는데 1만원이 훌쩍 넘는다. 노포라는 브랜드 때문인 거 같은데, 좀 심하다고 생각한다. 서민 음식 아닌가!”라고 불만을 토했다. 한 냉면집 주인은 “인건비와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 20년 전만 해도 수익률이 30% 정도였는데 요즘은 15%도 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평양냉면 한 그릇의 가격엔 원재료 외에 손님 회전율, 계절 요인, 전기 사용료 등 다른 요소들이 개입한다. 다음회에도 계속 따져볼 참이다.
글·사진 박미향 ESC 팀장 mh@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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