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책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더해 4주에 걸쳐 집중보도합니다. 2015년 4월부터 진행한 세월호 탐사보도의 마지막 매듭입니다.
선장의 퇴선 명령이 없고 “선내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적으로 나왔지만 일부 승객들은 배에서 탈출했다. 오전 9시26분 헬기 소리가 들리자 고무호스와 소방호스를 이용해 세월호 우현 쪽으로 올라갔다. 좌현 쪽에 있던 승객들은 물에 잠긴 출입구로 잠수해서 나왔다. 선미 쪽 객실 복도에 있던 승객들은 선미 출입구로 탈출했다. 배 안에 물이 가득 찬 10시22분쯤까지도 승객들은 필사적으로 헤엄쳐 우현 갑판으로 솟아올랐다.
해양심판원 특별조사부는 ‘여객선 세월호 전복 사고 특별조사 보고서’(2014년 12월)에서 “사고 당시 바다가 잔잔하고 수온이 약 12도로 생존에 급박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았고 주변에 구조 세력이 많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고 발생 후 선장 등이 일반적인 선원의 상무에 따라 여객을 적절하게 대피시켰다면 인명 손실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극소수에 그쳤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원의 상무’란 선원이 직무상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를 판단하는 국제 기준이다.
1. 구조할 시간가천대학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 박형주 교수는 세월호에서 퇴선 명령이 이루어졌을 경우 배의 기울기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탈출 경로와 탈출 소요 시간을 예측했다. 승객들이 배정된 객실에서 선원의 안내를 받아 좌현으로 탈출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첫째, 사고 발생 직후인 오전 8시50분에 퇴선 명령이 내려졌다면 승선원 476명은 3층 좌현 갑판으로 5분5초 만에 모두 탈출할 수 있었다. 배 기울기가 30도 정도라 움직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관부 선원 3명은 세월호 맨 아래층에 있었지만 8시55분 기관장 박기호의 “탈출하라”라는 지시를 받고 3층 객실 복도로 올라왔다. 이들을 포함해 기관부 선원 7명은 모여서 3분간 대기하다 서로 손을 잡고 갑판으로 나가 해경 구명보트로 도주해 모두 살아남았다.
둘째, 9시24분 침몰하는 세월호를 지켜보던 유조선 둘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은 “탈출시키십시오!”라고 소리쳤다. “맨몸으로 하지 마시고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을 시키셔서 탈출을 시키십시오, 빨리!” 좌현으로 약 52도 기울어진 상황에서 퇴선 명령이 내려졌다면 어땠을까.
좌현 객실은 출입문이 우현 쪽으로 나 있어 승객들이 방에서 나오려면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했다. 다른 객실 승객보다 60초 정도 늦게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9시45분부터는 3층 갑판으로 물이 들어와 이곳으로 탈출할 수 없었다. 대신 4층(9시42분)과 5층(9시47분) 갑판에서 바다로 뛰어들 수 있었다. 모든 승객이 탈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9분28초. 8시50분에 탈출할 때보다 2배 지연됐지만 적어도 9시35분께에는 모든 승객이 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셋째, 해경 경비정 123정이 세월호 선원들을 데리고 나오던 9시45분, 선장과 선원이 선내 방송으로 퇴선 명령을 내리고 객실에 있던 승객들이 대피를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시 세월호는 좌현으로 약 59도 기울어져 있었고 3층 갑판은 이미 침수됐다. 탈출 경로는 4층 갑판이었다. 5분 뒤인 9시50분 4층까지 잠겼고 이제 5층으로 빠져나와야 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승객이 모두 탈출하는 데 6분17초 걸렸다. 선원들이 홀로 도주하지 않고 제대로 퇴선을 유도했다면 배가 침몰하기 전에 모든 승객이 배에서 나올 수 있었다는 결론이다. 해경이 세월호 조타실에서 선장과 선원을 데리고 나온 직후 이들을 앞세워 다시 선내에 진입해 승객을 퇴선시켰다면 대부분을 구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2. 구조할 세력9시20분경 둘라에이스호는 기울어지는 세월호에 제일 먼저 다가갔다. 진도VTS가 9시5분 구조 협조를 요청해 울산으로 가던 항로를 바꿔 병풍도 부근에 멈춰 있는 세월호로 향한 것이다. 둘라에이스호는 세월호에 약 300m 거리까지 접근했다. 문예식 선장은 세월호가 “거의 복원력을 상실해 회복이 불가능한 심각한 상태”로 보였다. 침몰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 선장은 승객들을 무조건 퇴선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2천t급 규모의 둘라에이스호는 배 길이 105m, 폭 15m로 세월호 승객 전원을 선실과 갑판에 수용할 수 있었다. 기름을 가득 실은 상태여서 해수면과 높이 차이도 1.5~2m로 작았다. 세월호 승객들이 구명뗏목을 타고 둘라에이스호로 다가오면 사다리를 내려 구조할 계획이었다. 문예식 선장의 지시를 받은 선원 8~9명이 선수, 중앙, 선미에 배치돼 구조 준비를 끝냈다. 세월호에서 승객이 쏟아져나오면 15인승 구명뗏목과 구명환 등을 터트리고 라이프라인을 던지려 했다. 그러나 승객들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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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지도선과 어선들이 잇따라 도착했다. 9시40분 전남 707호, 9시45분 드래곤에이스11호, 9시50분 에이스호, 진도호, 전남 207호 고속보트, 10시 이후 전남 201호 고속보트, 진도아리랑호가 도착했다.
그러나 10시18분 해경 100t급 경비정인 123정 부정장 김종인은 어선들을 향해 확성기를 틀었다. “어선들 철수해, 어선들 철수하라고!” 빵빵 기적을 울리며 어선들이 세월호에 다가가는 것을 막았다. 그럼에도 어선들은 세월호에 “이물(배의 앞부분)을 그냥 무조건 들이대고” 승객들을 “끄집어냈”다. 뱃머리가 세월호 난간에 걸려 함께 빨려들어갈 뻔한 위기도 넘기면서 수십 명의 목숨을 구했다.
10시30분쯤까지 50여 척의 어선이 현장에 도착해 대기했다. 당시 해역 수온은 12.6도. 최악의 경우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떠 있기만 해도 최대 6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항공기 703호와 헬기 3대가 표류하는 승객들을 추적할 수 있었다.
구조할 시간도, 구조할 세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은 구할 수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3. 선원은 구할 수 있었다선장은 선박의 최고 책임자로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선원들을 적절하게 지휘해야 한다. 퇴선을 해야 한다면 선장은 ‘퇴선 명령’을 내려야 한다. 퇴선 명령이란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선 ① 선원들에게 운항관리규정에서 정한 비상부서 배치표상 임무를 다하도록 명령하고 ② 승객들을 퇴선 장소인 비상대기 갑판으로 유도한 다음, ③ 구명뗏목과 미끄럼틀(슈터)을 터뜨려 퇴선 준비를 하고 ④ 승객들을 해상으로 퇴선시킨다.
조리부 선원 최○○과 김○○은 승객을 비상대피 장소로 이동시킬 책임이 있었지만 승객과 선원들 통틀어 가장 먼저 9시30분 헬기로 도주했다. 구명뗏목과 미끄럼틀을 터뜨려야 하는 기관부와 갑판부 선원들은 9시39분과 9시45분 구명보트와 123정을 타고 각각 달아났다.
선장 이준석은 퇴선 명령의 첫 단계인 비상부서 배치 명령을 “깜박했다”고 말했다. 도주한 선원들은 선장의 지휘가 없었기 때문에 임무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선원의 임무를 수행한 사람은 사무장 양대홍씨와 여객부 말단 직원 박지영, 정현선, 안현영씨밖에 없었다.
도주한 갑판부 선원 누구 하나라도 비상벨을 누르거나 여객부 선원에게 퇴선 방송을 하도록 지시했다면, 여객부 선원 강○○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려 자발적으로 퇴선 방송을 했다면, 대부분의 승객이 살아나올 수 있었다. 승객들은 선내에 물이 차 파도가 치던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도우며 차례차례 탈출했다. 승객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스스로 탈출하기 전에 미리 퇴선 준비를 하도록 했다면 훨씬 더 많이 살아 나올 수 있었다.
4. 해경도 구할 수 있었다호화 여객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11만4147t급)는 2012년 1월13일 밤 9시45분 이탈리아 티레니아해 토스카나제도 질리오섬 근처에서 암초와 충돌했다. 배 왼쪽에 구멍이 생겨 물이 들어오고 불이 꺼졌다. 승객(3216명)과 선원(1013명)을 합해 탑승자가 4229명이나 됐다. 콩코르디아호는 선내 방송에서 “정전이 되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승객들에게 “객실로 돌아가 있으라”고도 했다.
이때 한 승객의 어머니가 리보르노 해안경비대에 신고했다. 경비대원이 연락해오자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는 비상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비대원은 “선박에 급박한 일이 있다는 걸 느꼈”고 긴급 출동 경보를 울렸다. 구조대가 출동한 지 10분이 지난 10시26분에야 콩코르디아호가 정식으로 구조를 요청했다. 사고 발생 41분 뒤였다.
10시39분, 경비정 G104호가 현장에 도착했다. 선원들은 우왕좌왕하고 승객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특히 선장 스케티노는 승객을 내버려둔 채 구명보트로 탈출했다. 밤 12시42분 그레고리오 데 팔코 해안경비대장이 도주한 선장 스케티노를 찾아 전화했다.
경비대장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지금 배로 올라가요. 아직 사람들이 배에 남아 있다고 하잖아요.선장 지금 구명보트에 있어요. 여기서 다른 데로 안 갈게요.
경비대장 더 이상 변명하지 말고 배로 올라가. 이건 명령이야. 당신이 배를 포기했으니까 지금부터는 내가 책임자야. 배에 타, 알겠어?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가란 말이야. 배에 탄 다음 나한테 전화해.
선장 대장님, 저도 배로 가고 싶긴 한데, 여기 다른 보트도 있고, 다른 구조대도 있고, 멈춰서 기다리고 있어서.
경비대장 지금 똑같은 얘기 1시간이나 하고 있잖아? 당장 배로 가. 배를 타란 말이야. 거기 몇 명이 있는지 곧바로 보고해.
선장 알겠습니다.
선장 스케티노는 콩코르디아호로 돌아가지 않았다. 구명보트에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질리오섬 바위에 건너가 있었다. 하지만 리보르노 해안경비대가 배와 계속 연락하며 구조 작전을 지휘했다. 해군 부대, 다른 정부 부처와 민간 부대의 지원도 요청했다. 이튿날 아침 6시17분까지 밤새워 구조 작전을 펼쳐 4197명을 구조했다. 사망자는 32명이었다. 해안경비대가 직접 구조한 인원만 1270명이었다.
신속한 조치로 대부분의 승객을 구조했을 뿐 아니라 도주한 선장에게 “지금부터는 내가 책임자”라고 밝히며 사고 현장을 장악한 팔코 해안경비대장은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어떤 해안경비대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영웅 칭호를 거부했다.
세월호 사고에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해경 지휘부가 없었다. 그 누구도 도주한 선장에게 “당장 배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거나 선장을 대신해 절실한 마음으로 승객 구조를 진두지휘하지 않았다. 무능한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에게 퇴선 명령도 없이 도주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이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발췌·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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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3%%]① 여기 10가지 진실이 있어요
선원이 승객 퇴선 명령 없이 탈출한 이유
해경이 세월호 조타실에 간 이유 드러났다
진도VTS가 승객 퇴선을 명령하지 않은 이유 드러났다
인천해경이 사고를 먼저 알았나
“객실 문이 잠겨 못 나온다”… 119 신고 전화가 사라졌다
② 왜 못 구했나, 왜 침몰했나
도대체 해경은 왜 못 구했나
세월호는 뒤집힐 준비가 돼 있었다
기울어진 세월호는 여전히 항해하고 있었다?
③ 구할 수 있었다
그날, “전원 구조” 오보의 재구성
국정원과 세월호 관계는 비밀?
“배로 올라가. 이건 명령이야. 가란 말이야!”
④ 세월호 특조위 현재와 미래
“청해진해운이 ‘가만히 있으라’ 지시했다”
“3차 청문회, 종합보고서… 비상상황이다”
*각 항목을 누르면 해당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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