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선원이 승객 퇴선 명령 없이 탈출한 이유

검찰, 감사원, 특조위가 놓쳤던 핵심 의문에 대해 자료를 뒤지고 퍼즐을 맞추어 정리한 10가지 사실
등록 2016-03-15 14:27 수정 2020-05-03 04:28
이 입수한 기록을 바탕으로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2015년 5월 세월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세월호 기록팀을 구성했습니다. 진실의 힘 조용환, 송소연, 강용주 이사와 이사랑 간사가 기획·진행을 맡았고, 박다영씨, 박수빈 변호사, 박현진씨가 자료 분석과 집필을 맡았습니다. 정은주 기자는 과 진실의 힘을 오가며 이 작업에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받았습니다. 15만 장 가까운 기록과 3테라바이트(TB)가 넘는 자료를 추적·분석한 결실을 이제 세상에 공개합니다. 약 700쪽에 이르는 책 (진실의 힘 펴냄)입니다.
은 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책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더해 앞으로 4주에 걸쳐 집중보도합니다. 2015년 4월부터 진행한 세월호 탐사보도의 마지막 매듭입니다.
취재 정은주 기자, 편집 신윤동욱 기자, 디자인 장광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은 2014년 4월16일, 그날의 기록을 추적·분석해왔다. 그 결과를 <세월호, 그날의 기록>에 담았다. 서해해양경찰청 제공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은 2014년 4월16일, 그날의 기록을 추적·분석해왔다. 그 결과를 <세월호, 그날의 기록>에 담았다. 서해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선장 이준석과 선원들이 침몰하는 세월호에 승객들을 남겨둔 채 도주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1등 항해사 강원식은 “경비정에 승선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승객들에 대한 생각이 났다”고 주장했다. 선장 이준석도 마찬가지였다. 승객을 대피하도록 조치하지 않은 이유는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0분 침몰하는 배에서 도주하기 직전 세월호 선원의 마지막 목소리를 공개하면서 그들의 속내가 드러났다. 선원들은 도주하기 전, 승객에 대해 “생각을 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애초 선원들은 기울어진 배에서 해경을 기다리며 승객의 탈출을 생각했다. 9시10분 조타수 박경남은 진도VTS가 “지금 승선원들은 라이프래프트(구명뗏목)나 라이프보트(구명보트)에 타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아니, 아직 못 타고 있습니다. 배가 기울어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승선원 수를 “450명”이라고 했다가 곧 “총인원 약 500명 정도”라고 고쳐 말했다. “450명”은 승객 수이고 “500명”은 선원들을 합친 수다.

조타수 박경남은 9시22분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을 시키면 옆에서 구조를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진도VTS는 선장이 최종 판단하라고 결정을 미루면서도 “경비정이 10분 내에 도착할 겁니다”라고 알려줬다. 이 소식은 선내 방송으로 승객들에게 전해졌다. 승객에게 탈출에 대비하라고 알린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비정’이 도착하면 승객과 함께 탈출하리라 생각한 듯하다.

9시26분 헬기 511호가 도착한 데 이어 ‘경비정’이 왔다. 선원들은 경비정이 온다는 말을 듣고 “일단 1대가 오고 다른 경비정들도 순차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대가 어긋났다. 100t급 소형 경비정 1척밖에 없었다. 9시40분 1등 항해사 신정훈이 제주 운항관리실과 교신했다. 세월호가 외부와 나눈 마지막 교신이다.

9시40분 제주 운항관리실-세월호
제주 운항관리실  네, ○○님 현재 진행 상황 좀 말씀해주세요.
세월호  네, 경비정 한 척 도착해서 지금 구조 작업하고 있습니다.
제주 운항관리실  예, 지금 P정이 계류했습니까?
세월호  네, 지금 경비정 옆에 와 있습니다. 그러고 지금 승객이 450명이라서 지금 경비정 이거 한 척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추가적으로 구조를 하러 와야 될 것 같습니다.
제주 운항관리실 네, 잘 알았습니다. 지금 선체는 기울지 않고 있죠?
세월호  (대답 없음)

사고 현장에 도착한 소형 경비정은 승객 450명도 구하기 부족했다. 선원을 합쳐 “총인원 약 500명 정도”를 모두 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승객들에게 퇴선을 명령하면 선원들의 탈출 순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선원들의 순서는 승객들을 다 내보낸 뒤에야 오게 돼 있다. 배는 점점 기울어지는데 시간이 없었다. 구명뗏목도 터트리지 못한 상황에서 조타실에 있는 갑판부 선원 등 10명 가운데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은 3명뿐이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았을 때 만약 승객들과 선원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뛰어든다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못한 선원들 가운데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매우 위험했다. 죽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2014년 5월8일 신정훈 6회 피의자 신문조서)

승객들을 먼저 구조한다 해도, 세월호 옆에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있고 곧이어 들이닥칠 어업지도선들과 어선들도 있었지만, 선원들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수온이 12.6도였으므로 바닷물에 떠 있으면 최대 6시간까지 버틸 수 있다는 점도 파악하지 못했다.

‘생존 기회’가 희박해 보이자, 기관부 선원들이 먼저 도주했다. 기관장 박기호의 지시를 받아 일찌감치 맨 아래층 기관실을 떠난 기관부 선원 7명은 3층 선미 난간에서 제일 먼저 123정 구명보트를 타고 도망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선장과 갑판부 선원들은 기로에 섰다. 승객을 구조할 것인가, 도주할 것인가. 결국 선장과 갑판부 선원 등 10명은 교신을 끊고 123정으로 옮겨탔다. 소형 경비정만 도착한 것을 확인한 선원들은 퇴선 명령을 내리면 승객들이 바다로 먼저 탈출해 자신들이 ‘구조’되는 기회가 사라질까봐 먼저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세월호 선내에서는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결과적으로 보면, 안내 방송을 통해 승객의 발을 묶어놓은 셈이다.

검사  세월호가 수심 40m의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것이 기정사실이고 그렇게 확신을 하였음에도 승객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고 승객을 구조하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것은 승객들의 죽음을 방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떠한가요.
강원식(1등 항해사)  네, 맞습니다. (이때 피의자는 15분 정도 침묵하다가) 저도 그 아이들이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닙니다.
검사  그 상태에서 승객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승객들이 그대로 수장되어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 않은가요.
강원식  (이때 피의자는 고개를 숙이며 조그만 목소리로) 네, 그 상황이면 수장됩니다.
(2014년 4월29일 강원식 피의자 신문조서)

대법원은 세월호 선장 이준석에게만 살인죄를 인정했다. 다른 갑판부 선원들에게는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뿐 아니라 다른 선원들까지도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책임을 무겁게 물을 수 있는 진실의 한 조각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법원  기록의  시간이  잘못된  이유


실제  시간으로  바로잡다


123정의 첫 현장 보고는 2015년 4월 보도로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그때까지는 오전 9시45분에 한 TRS 교신(“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갖고 현재 못 나오고 있답니다”)이 첫 보고로 알려져 있었다.
1년간 첫 보고가 베일에 싸여 있었던 것은 ‘시간 오차’ 탓이었다. 해경이 본청 상황실 경비전화 음성파일과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붙인 단서 조항이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실제 시간=기록파일 시간-12분”.
해경이 “9시49분”이라고 쓴 경비전화 음성파일과 녹취록이 있었다. 123정 정장 김경일과 해경 본청 상황실의 통화를 기록한 것이다. 기록파일 시간(9시49분)만 보면 첫 TRS 보고(9시45분)보다 늦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 오차를 조정해 실제 시간(9시49분-12분)을 따져보면 이것이 바로 ‘9시37분’의 첫 현장 보고였다. 해경이 표시한 시간에서 오차를 바로잡으니 보이지 않던 진실이 드러났다.
해경은 시간 오차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대신 책임을 모면하는 빌미로 활용했다. 그 누구도 시간 오차를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짚어야 할 의문점을 흘려버렸다.
은 시간 오차를 바로잡았다. 본청 상황실 경비전화처럼 일단 작성 주체가 실제 시간과 기록파일 시간이 다르다고 밝힌 오차를 먼저 고쳤다. TRS처럼 음성파일이 있는 경우에는 일일이 들으며 관련 자료와 대조해 시간을 확인했다. 국회, 감사원, 검찰이 낸 녹취록에 표시된 시간이 다를 때는 관련자 진술을 검토해 실제 시간과 가장 가깝다고 판단되는 시간을 선택했다.
그러므로 이 책에 표시된 시간은 법원 판결문과도, 감사원 보고서와도 다른 것이 많다. 그러나 실제 시간에 더 가깝다. 그렇게 하나하나 뜯어고친 시간에 명암을 넣어 ‘공식 문서’에 나타난 시간과 다름을 표시했다.
바로잡은 또 다른 중요한 시간이 있다. 세월호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지금껏 세월호 최종 항적도는 8시48분44초~8시49분13초 사이의 29초 구간이 누락된 상태로 공개됐다. 검찰과 법원은 항적이 밝혀지지 않은 8시48분부터 배가 급선회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은 2014년 9월30일 해양심판원이 레이더 항적 데이터를 이용해 세월호의 항적을 보완한 것을 확인했다. 해양심판원은 해양 사고를 조사해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곳이다. 이에 따르면 세월호는 정상적으로 변침하다가 8시49분9초~13초 사이에 급선회했다. 이 책에서 사고 발생 시점을 8시48분에서 49분으로 바로잡은 이유다.
침몰 시간은 위성조난신호(EPIRB)를 기준으로 삼았다. 배에 설치된 EPIRB는 침몰하면 수심 4m에서 자동 부양해 조난신호를 발신한다. 해경 위성조난수신소(LUT)에서 최초 확인한 세월호의 EPIRB는 10시30분29초였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발췌·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진실의 힘’ 응원하기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세월호 추적보도  4부  연재  순서


① 여기 10가지 진실이 있어요
선원이 승객 퇴선 명령 없이 탈출한 이유
해경이 세월호 조타실에 간 이유 드러났다
진도VTS가 승객 퇴선을 명령하지 않은 이유 드러났다
인천해경이 사고를 먼저 알았나
“객실 문이 잠겨 못 나온다”… 119 신고 전화가 사라졌다
② 왜 못 구했나, 왜 침몰했나
도대체 해경은 왜 못 구했나
세월호는 뒤집힐 준비가 돼 있었다
기울어진 세월호는 여전히 항해하고 있었다?
③ 구할 수 있었다
그날, “전원 구조” 오보의 재구성
국정원과 세월호 관계는 비밀?
“배로 올라가. 이건 명령이야. 가란 말이야!”
④ 세월호 특조위 현재와 미래
“청해진해운이 ‘가만히 있으라’ 지시했다”
“3차 청문회, 종합보고서… 비상상황이다”
*각 항목을 누르면 해당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