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책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더해 4주에 걸쳐 집중보도합니다. 2015년 4월부터 진행한 세월호 탐사보도의 마지막 매듭입니다.
배는 기울어졌다가도 원래 상태로 되돌아온다. 설사 되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그런데 2014년 4월16일 세월호는 기울어지기 시작한 지 101분 만에 뒤집어지면서 침몰했다. 왜 기울어졌을까, 왜 빨리 침몰했을까. 왜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까.
1. 왜 빨리 침몰했나세월호는 오전 8시49분 오른쪽으로 급하게 돌면서 원심력에 의해 15~20도가량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곧 화물이 미끄러지면서 기울기를 보태 약 30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사관 선박이 30도 정도 기운다면 바닷물이 어디를 통하여 선박 내로 유입되나.조○○(세월호 증·개축한 C.C조선 생산부 과장) 세월호에 물이 들어갔다면, 카램프(차량 출입구·패킹이 나쁠 경우)의 틈 및 차량 테크 빌지 배출 구멍(차량 적재 갑판 청소시 물 배출, 직경 약 10cm 좌·우현 각 10개)이 있는데 이곳이 바다 속에 잠기면 물이 들어올 수 있다. 특히 ‘도선사 승선 출입문’이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문(가로 80cm×200cm)인데 흘수선에서 약 3~4m 정도 높이에 있다. 이 문은 선박에서 유일하게 안쪽(수압으로 파손될 경우 해수 대량 유입 가능)으로 열리는 문이다.
(2014년 4월22일 조○○ 경찰 진술조서)
특히 도선사 승선 출입문 등 세월호의 여러 출입문이 출항 전부터 열려 있었다는 점을 은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했다. 1층 옆면 출입구(도선사 승선 출입문)와 3층 로비 출입문, 4층 레크리에이션 출입문, 갑판 출입문도 모두 열려 있었다.
검사 피의자는 세월호가 생각 외로 빨리 침수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박한결(3등 항해사) 잘 모른다.
검사 세월호 좌·우측에 있던 파일럿(도선사) 도어(문)가 열려 있어서 그랬던 것 아닌가.
박한결 접안했을 때만 세월호 옆을 보는데 항상 열려 있었다. 닫힌 걸 본 적이 없었다.
(2014년 4월30일 박한결 검찰 3회 피의자 신문조서)
세월호 1층 갑판이 바다에 닿을 정도로 배가 기울어지면서 이 문으로 물이 들어왔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사고 전날 선미 차량 출입구를 닫았을 때 밀폐되지 않고 빛이 보였다는 증언도 확인됐다.
선장 이준석은 사고 전날인 2014년 4월15일 출항 전 회의에서 “차량 출입구가 낡아서 균열이 있었다. 쉬는 날 공장에 의뢰하겠다고 얘기했다”고 공판에서 진술했다. 차량 출입구에 균열이 생겨 빛이 보일 만큼 틈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차량 출입문이 바다에 닿을 정도로 배가 기울어지면서 그 틈으로 바닷물이 화물칸에 쏟아져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침몰 시간을 더욱 앞당긴 요인은 또 있다. 승객들은 4층 선미 다인실(SP-1)의 벽면 아래에서 물이 스며들었다고 증언했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이 좌현 쪽으로 굴러떨어졌는데 이때 창문에 금이 갔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부실하게 시공한 탓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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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세월호 증·개축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2013년 2월 세월호를 증·개축했다. 유병언 개인 전시실을 만들고 여객실과 화물 적재 공간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B데크(3층)의 선미 부분을 철거하고 A데크(4층)의 선미 2.8m, 갑판 5.6m, 천장 1.6m를 연장해 생긴 공간을 2개 층으로 만들었다. 아래층은 여객실로, 위층은 전시실 등으로 개조했다. 여객실로 개조한 곳이 4층 선미 다인실(SP-1)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KRISO)는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 분석’ 보고서에서 배가 뒤집혀져 가라앉을 때까지의 침수 과정을 추정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이렇다.
오전 8시49분 사고 발생 직후 세월호는 1분여 만에 30도로 기울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서서히 기울기가 증가해 약 49도가 될 때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1층과 지하 화물칸에 물이 차는 시간 때문에 기울어지는 속도가 지연된 것이다.
그 뒤 9시38분(2600~2800초)에 배가 약 54.4도까지 기울어져 2층 선미 좌현 쪽 출입문과 선수 쪽에 있는 환기구로 물이 들어와 2층을 채운다. 선실이 주로 있는 3층과 4층은 9시48분(약 3500초)부터 침수됐고 10시15분에는 물이 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이때 선체가 급격히 넘어가면서 기울기가 90도를 넘어간다. 이후 10시22분(약 5700초)에는 침수율이 거의 100%에 가까워 선체 내에 있던 공기가 거의 다 빠져나간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실제와 거의 일치한다. 해경 123정이 찍은 동영상과 피해자들의 진술을 보면, 9시46분경 3층 복도 난간으로 바닷물이 올라왔다. 곧이어 열려 있던 3층 좌현 출입문으로 물이 밀려 들어와 3층 로비를 채웠다. 4분 뒤 63도 기울어진 세월호의 4층 여객실 좌현 출입문으로 물이 들이쳤다. 9시53분에는 5층에도 물이 보였다. 10시10분 배가 78도 기울어졌고 10시15분 90도, 10시17분 108도 뒤집어졌다. 3층 여객실로 물이 들어온 지 불과 30분 만이었다.
“세월호가 완만하게 항로를 변경해야 하는데 조타수가 급격하게 뱃머리를 우현으로 돌렸다.”
2014년 4월17일, 해경수사본부가 발표한 세월호 사고 원인이다. 검찰도 동의했다. “조타수의 대각도 조타 가능성과 미숙한 항해사의 지휘 소홀” 때문에 세월호가 급격히 우회전했고, 이로 인해 배가 좌현으로 기울어졌다며 3등 항해사 박한결과 조타수 조준기를 기소했다.
검찰은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이 작성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 분석 결과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당직 조타수가 전속 항해 중 복원성이 극히 불량한 세월호를 조타 미숙으로 대각도 조타한 것이 직접적으로 주된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조타수 조준기와 항해사 박한결에게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죄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 조준기와 박한결의 변호인은 전문가 증인을 불러 대각도 조타 가능성이 낮다는 점과 기기 결함 가능성을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변호인(박한결) 당직 조타수가 대각도 타각을 했다고 판단하나.김진동(전 인천해양심판원장) 일반적으로 대각도 전타는 충돌에 임박할 경우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대각도 전타하면 전 선원이 놀라갖고 다 뛰어올라온다. 경사가 되니까. 나도 배를 10여 년 탔지만 대각도 전타한 것은 충돌에 임박했을 때 딱 1번뿐이다.
(2015년 3월24일 김진동 공판 진술)
기관장 경력 30년의 정대진씨는 조타기의 솔레노이드 밸브(전기신호로 작동하는 방향 제어 밸브) 고장 가능성을 제기했다.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되면 조타수가 조타기를 조작하지 않더라도 마치 대각도 조타를 한 것처럼 배가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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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재판부는 1심을 뒤집고 박한결과 조준기의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죄’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서 증언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세월호를 해저에서 인양하여 관련 부품들을 정밀히 조사한다면 사고 원인이나 기계 고장 여부 등이 밝혀질 수도 있다.” 이후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결국 사건 초기 해경수사본부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검찰이 받아들인 “조타수의 대각도 조타 실수” 가설은 인정되지 않았다. 조타기 등 기계 결함이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기 전까지 세월호의 급선회 이유는 ‘아직 모른다’인 셈이다.
3. 왜 기울어졌나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부가 펴낸 ‘여객선 세월호 전복사고 특별조사 보고서’는 세월호가 사고 초기 급격한 우선회로 15~20도가량 기울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횡경사 20도까지는 아직 세월호가 완전히 복원성을 잃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배가 20도가량 기울어지자 선수 갑판에 2단으로 쌓여 있던 컨테이너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바다로 추락했다. 고박(고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고박 장치가 부서진 화물, 차량이 차례로 좌현으로 쏠리거나 넘어지고 짐이 많이 실려 무게중심이 높은 트럭 등도 미끄러졌을 것으로 봤다. 2천t이 넘는 화물이 쏠리자 배가 더욱 기울어졌고, 결국 침수한계선을 넘어버렸다.
검사 증인이 이층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는 것인데, 그때 상황이 어떠했나.이○○(단원고 학생) 처음에 배가 살짝 기울어졌을 때는 그냥 누웠는데 갑자기 쿵 하고 다시 한번 배가 더 기울어졌다.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뛰어내려와서 복도로 나왔다.
(2014년 7월29일 이○○ 공판 진술)
2014년 4월15일 세월호는 오후 1시경부터 화물과 차량 적재를 시작했다. 그날도 로딩플랜(화물 적재 계획)은 없었다. 로딩플랜은 해운사와 선장, 1등 항해사가 어떤 화물을 얼마나, 어떻게 적재할지 세우는 계획을 말한다.
1등 항해사 강원식은 어떤 화물이 운송되는지 목록을 받아본 적이 없어 로딩플랜을 짤 수 없었다. 청해진해운 물류팀이 화물 선적 의뢰를 출항 직전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보다 많은 화물을 적재”할 뿐이었다. 이날도 화물을 “바짝 붙여” 실었다. 과적하려니 고박을 규정대로 할 수 없었다. “고박 규정을 다 지키면 적재 공간이 적게 나오기 때문”이었다.
검사 고박 규정을 다 지키면 적재 공간이 적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남호만(청해진해운 물류팀장) 예를 들면, 선적 화물 중 가장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화물이 승용차인데, 규정대로 래싱밴드 네 가닥을 모두 고정시키면 두 가닥만 고정시켰을 때보다 승용차 1대당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2014년 5월14일 남호만 검찰 4회 피의자 신문조서)
세월호의 과적과 부실 고박을 방치한 것은 청해진해운만은 아니었다. 물류팀 과장 하○○은 청해진해운 재판에 나와 “국가정보원,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한국해운조합” 관계자들로부터 “사고 당시까지 부실 고박이나 과적에 대하여 지적하거나 지적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정식 선장 신보식 역시 운항관리자에게 “규정대로 화물을 싣게 해달라고 말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해경이 고시한 ‘여객선 안전관리지침’에 의하면, 여객선은 월례점검과 특별점검을 받아야 한다. 월례점검은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자가 하고, 특별점검은 명절이나 봄철 농무기(안개가 많이 끼는 기간), 겨울을 앞두고 해경과 항만청,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 등 관계기관들이 함께 했다. 세월호의 과적이나 부실 고박을 지적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4. 왜 다시 일어서지 못했나배는 흔들의자처럼 파도와 바람에 흔들려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가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도록 설계해야 한다. 배가 기울어졌다가 원래 평형 상태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복원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의 복원성은 증개축으로 악화됐다. 공길영 한국해양대학교 교수의 공판 진술이다.
“세월호는 5층을 더 증축하다보니 상부 구조물이 더 무거워졌을 뿐만 아니라 바람의 영향도 많이 받고 복원성도 급격히 나빠졌다. 우현에 있는 램프도 제거하면서 좌우 균형도 무너졌다. 그 균형을 맞추려면 오른쪽에 항상 물(평형수)을 더 넣고 다녀야 하는데 이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물을 가득 채워놓지 않으면 출렁출렁해 배 복원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복원성을 유지하려면 평형수를 더 넣어야 했던 세월호는 화물을 많이 싣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오히려 평형수를 뺐다. 추가 적재한 화물량만큼 평형수를 줄여야 만재흘수선(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최대 한도를 나타내는 선)을 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운항관리자는 각 선박별로 정해진 만재흘수선을 넘었는가, 넘지 않았는가를 기준으로 화물 과적을 판단한다. 그래서 우선 평형수를 빼고 만재흘수선을 맞춰 출항했다. 그 상태로는 배가 불안정하므로 항구를 떠난 다음 다시 평형수를 채웠다.
검사 화물을 과적해서 많이 싣다보니까 평형수를 더 채우면 만재흘수선을 넘겨버리므로 운항관리자가 운항을 통제할 우려가 있어서 일단은 출항하고 인천대교를 지나서부터 평형수를 채우고 운항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가.신보식(세월호 정식 선장) 예.
검사 운항 중에 평형수를 채우면, 만재흘수선을 넘긴 상태로 운항을 계속했던 것인가.
신보식 예.
검사 다시 제주에 입항할 때가 되면 물을 빼서 마치 만재흘수선 초과 없이 운항한 것처럼 했나.
신보식 예. 그리고 제주항에 입항할 때 지적도 몇 번 받았다.
(2014년 8월26일 신보식 공판 진술)
2014년 4월15일 세월호는 복원성 자료에 따른 적재 가능 화물의 최대치 1077t을 배나 초과한 2142t을 적재하고, 평형수는 최소치 1694.8t의 절반도 안 되는 761.2t만을 실은 채 출항했다.
여객선이 화물을 과적했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는 운항관리자 전정윤은 세월호가 제출한 점검보고서에 승선 인원과 화물량이 빈칸으로 되어 있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서명해주었다. 또 그는 세월호가 만재흘수선을 넘겼는지만 확인하는 것으로 화물량이 과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했을 뿐 세월호 내부로 들어와 실태를 파악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시각인 4월16일 오전 8시49분, 세월호는 11시간46분째 운항 중이었다. 연료유 약 22.2t, 청수 약 67t을 소모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호의 무게중심은 출항 때보다 더 올라가 복원성은 더욱 나빠진 상태였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발췌·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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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여기 10가지 진실이 있어요
선원이 승객 퇴선 명령 없이 탈출한 이유
해경이 세월호 조타실에 간 이유 드러났다
진도VTS가 승객 퇴선을 명령하지 않은 이유 드러났다
인천해경이 사고를 먼저 알았나
“객실 문이 잠겨 못 나온다”… 119 신고 전화가 사라졌다
② 왜 못 구했나, 왜 침몰했나
도대체 해경은 왜 못 구했나
세월호는 뒤집힐 준비가 돼 있었다
기울어진 세월호는 여전히 항해하고 있었다?
③ 구할 수 있었다
그날, “전원 구조” 오보의 재구성
국정원과 세월호 관계는 비밀?
“배로 올라가. 이건 명령이야. 가란 말이야!”
④ 세월호 특조위 현재와 미래
“청해진해운이 ‘가만히 있으라’ 지시했다”
“3차 청문회, 종합보고서… 비상상황이다”
*각 항목을 누르면 해당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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