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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세월호 참사 하루 뒤부터 비밀리 선체 인양 추진했다

해경 ‘세월호 인양작업 계획’ 문서 작성하고 구체적 인양 계획 세워

<한겨레21> 단독 입수 ‘언딘 특혜 의혹 사건’ 검찰 수사기록에서 드러나
등록 2017-01-10 07:24 수정 2020-05-02 19:28
2017년 1월1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침몰 해역 인근에서 선체 인양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2017년 1월1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침몰 해역 인근에서 선체 인양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세월호 참사 초기, 정부가 국무총리실 주도로 비밀리에 선체 인양을 추진한 사실이 이 단독 입수한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사건’(언딘 특혜 의혹 사건) 검찰 수사기록에서 드러났다.

겉으론 인양 계획 없다 말해놓고…

김수현 당시 서해해양경찰청장은 세월호 참사 하루 뒤인 2014년 4월17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가족 등에게 “승객 전원의 생사가 확인될 때까지 인양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해경은 이날 ‘진도 전복 여객선 세월호 인양작업 계획’이라는 문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에는 크레인 2척을 활용한 인양 계획 ‘1안’과 3만t급 대형 바지선 2척을 이용한 ‘2안’이 명시돼 있다. 구체적 인양 방법까지 적시된 것이다.

정부 차원의 논의도 바로 이어졌다. 참사 이틀 뒤인 2014년 4월18일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 김윤상 언딘 대표, 해군 관계자 등 25명은 상황 대책 회의에서 세월호 인양 방안을 논의했다. 검찰이 압수한 이날 ‘상황 대책 회의 결과 보고’ 문서에는 세월호 인양에 필요한 장비, 인양 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구체적인 인양 준비가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밝혔다.

수사자료를 보면, 세월호 인양을 추진한 해경의 정아무개 경정은 2014년 7월24일 광주지검에 출석해 “선체 인양 추진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비밀리에 진행된 것이냐”라는 검사의 질문에 “예,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게 진행을 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가족들과 인양 논의가 공식적으로 이뤄진 시점은 2014년 4월20일이다. 이날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가족들과 비공개 면담을 하고 인양 관련 논의를 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구조 작업부터 충실하게 진행해달라고 요구했다. 고명석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은 같은 해 4월29일 기자들이 인양 작업과 관련해 질문하자 “인양은 누누이 말했듯이 가족분들과 여러 가지 인양에 대한 협의를 마치고 수색이 마무리돼야 그런 협의가 시작될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양 준비는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계획은 가족들과 함께 논의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정부가 4월20일부터 세월호 내에 생존자가 없다고 보고 본격적으로 인양을 준비한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경의 신아무개 경감은 검찰 조사에서 검사가 “선박 인양은 언제 계획하는 것이냐”고 묻자 “선박 내부의 생존자들이 전부 사망했다거나 시신을 전부 수습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검사가 “해경 지휘부에서는 4월20일경에 이르러서는 실종자가 살아 있을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시신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되 인양에 관한 계획 수립을 진행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어떤가”라고 묻자 신 경감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해경이 작성한 4월21일자 ‘여객선 세월호 수색 및 인양 관련 쟁점’ 문서를 보면 해경은 4월20일 이미 중국이 보유한 3만t급 인양 장비를 지원 요청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참사 나흘째부터 생존자 없다 판단했나

이같은 빠른 인양 지시의 배경에는 국무총리실이 있었다. 해경의 정 경정은 검찰 조사에서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국무총리께서 해경에서 선체 인양 업무를 맡아 준비하라는 지시를 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나아무개 해경 경감도 같은 해 검찰 조사에서 “총리실 국무조정실의 (2014년 4월) 20일자 (인양 관련) 총리님 지시 보고서를 본 기억이 난다”고 진술했다.

이 밖에 해양수산부가 작성한 2014년 4월22일자 ‘세월호 사고 관련 총리님 지시사항’이란 제목의 문서에는 “대외주의 지시사항” 문구와 함께 “사고 선박 인양은 해경청에서 주관할 것” “해수부는 인양 작업을 독려·촉구할 것” “세월호 인양 추진 발표와 동시에 인양 작업이 즉시 진행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할 것” 등의 지시사항과 함께 “상기 지시사항에 대해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정부가 이처럼 빠르게 인양을 추진했던 것이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로 악화된 여론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도 있다. 2014년 4월25일자 ‘선체인양 추진단 운영방안 검토’란 제목의 문서에는 추진단의 필요성에 대해 “인양계획·일정계획 수립 등 선제 대응을 통해 수색·구조에서 인양 국면 전환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비난 여론 사전 차단”이라고 적혀 있다.

비밀리에 진행된 인양 계획을 책임지고 실행했던 것은 세월호 참사 구조 과정에서 특혜 의혹을 받아온 구난업체 ‘언딘’이었다. 2014년 4월24일 작성된 ‘구조구난업무 일일실적 및 계획보고’ 문서에는 언딘 대표와 해양수산부 장관, 항만국장의 면담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날 면담 내용 중에는 “해수부는 언딘이 국내 중소기업이므로 대국민 신뢰 확보 차원에서 일본 등 선진국 기업과의 제휴 등을 언급하였으나, 언딘 측의 반발과 설득으로 이해”했다고 나와 있다. 해수부가 더 규모가 큰 인양 업체와 언딘의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했으나 언딘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바로 물러선 것이다. 당시 세월호 인양에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올 4~6월 인양 계획 밝혔지만…

정부가 참사 당시에는 실종자 수색이 끝나기 전부터 서둘렀던 선체 인양이 본격화된 것은 2016년부터다. 하지만 이때부터 시작된 인양 작업은 끝도 없이 미뤄지고 있다. 애초 정부는 2016년 6월까지 인양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해가 바뀐 뒤에도 세월호는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 녹슬고 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1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업무보고에서 “세월호 인양에 필요한 선체 받침대 33개가 설치되어 4월에서 6월 사이 인양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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