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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회담’ 트럼프의 말, 씨가 될까

한-미 연합훈련 축소했지만, 북한 “군사연습 본질 달라지지 않아”… 의미 없는 카드일 수도
등록 2026-08-21 15:36 수정 2026-08-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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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14일 뉴욕주 가든시티에 자리한 데이비드 맥 정보훈련센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14일 뉴욕주 가든시티에 자리한 데이비드 맥 정보훈련센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때로 말에도 생명력이 있다. 말이 말을 낳고, 그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뜻을 내비치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를 지시했다. 실제 훈련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낙관론도 없지 않지만, 비관론이 대세다.

 

돌연 나선 트럼프… UFS 조기종료

 

“전쟁을 종식하고,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여정에 나설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상호 위협 의사를 내려놓고, 아주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논의를 시작합시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8월15일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쪽에 종전 선언을 위한 협상을 제안한 셈이다. 북쪽은 반응이 없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나섰다.

“나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좋은 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이 한국과 연합 군사훈련을 하기로 오래전에 합의한 게 전혀 달갑지 않다. 내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한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미국을 존중하는 나라(북한)에 완전히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취소하기는 이미 늦었지만,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한-미 연합훈련 규모를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1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미 양국 군은 8월17일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을 개시했다. 합동참모본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UFS는 시뮬레이션에 기반한 지휘소연습(CPX)과 이와 연계된 야외기동훈련(FTX)으로 구성된다. 지휘소연습은 방어에 중점을 둔 1부와 반격 작전을 연습하는 2부로 이뤄진다. 애초 한-미 군당국은 8월17~21일 1부인 방어 작전을, 8월23~27일엔 2부인 반격 작전을 각각 연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한-미 양국은 논의 끝에 이번 훈련을 1부 방어 작전만 실시한 뒤 마치기로 했다. 기간은 절반으로 줄고, 성격도 방어 위주로 달라졌다.

 

11월 ‘북-미 재회’ 시나리오 거론

 

한-미가 움직였으니, 이제 중국과 북쪽이 나설 차례다. 8월19일 왕이 중국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방한했다. 왕 부장은 조현 외교부 장관을 만나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연속성·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왕 부장은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북-미 정상회담 중재 가능성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결정할 일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대북 적대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게다.

한-미 군당국이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훈련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한 2026년 8월19일 경기도 동두천 주한미군 기지에서 미군 장병이 훈련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군당국이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훈련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한 2026년 8월19일 경기도 동두천 주한미군 기지에서 미군 장병이 훈련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쪽에선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무부장이 나섰다. 김 부장은 8월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주요 국제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중동 정세 △우크라이나 전황 △일본의 재군사화 위협 등을 차례로 거론한 뒤,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훈련 축소를 두고 “평할 가치도 없다고 보며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훈련의 규모나 기일이 줄어든다고 해서 도발적, 공격적 성격의 군사연습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란 이유에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최근 조-미 양국 지도자들 사이에 소통이 있었다는 워싱턴발 소식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며, 아마도 우리 최고 지도부의 대외정책과 관련해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사안일 것이다. 우리 국가수반이 트럼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 밝힌 바 있다. 두 지도자들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

‘알지 못한다’와 ‘의연 훌륭하다’에서 낙관론이 나온다. 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훈련 축소 결정에 이어 9월엔 워싱턴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10월엔 이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11월3일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면 11월18~19일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제33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비회원국인 북한을 개최국 중국이 초청하면, 김 위원장이 선전의 회의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18년의 경험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힘 실리는 비관론, 왜?

 

2017년 5월에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코리아미션센터’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CIA와 남쪽의 국가정보원, 북쪽의 통일전선부가 물밑에서 삼각 대화를 시작했다. 그해 9월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평화’를 무려 30번 언급하며, 평창겨울올림픽(2018년 2월)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지렛대’로 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19일 미국 엔비시(N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연합 군사훈련 연기·중단을 미국 쪽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던 김 위원장은 2018년 1월1일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뜻을 밝히는 것으로 화답했다.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그렇게 성사됐다.

2026년 8월1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딸 주애와 함께 평양교예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년 8월1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딸 주애와 함께 평양교예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관론은 달라진 현실을 기초로 한다. 2018년에 견줘 북쪽의 전략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핵무장 능력은 고도화했고, 러시아와 중국이란 ‘동맹의 양 날개’까지 갖췄다. 우크라이나의 전장에선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어깨를 겯고 싸우고 있다. 달라진 위상만큼 대화의 문턱도 높아졌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당국자 출신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왕이 부장 방한은 시점이 절묘해 보이지만, 계속 미루다 이제야 성사된 것일 뿐이다. 김여정 부장의 입장문은 ‘북-미 공식 채널을 통한 소통이라면 내가 모를 수 없다. 공식 소통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럼 한 다리 건너거나 간접적 소통일 텐데, 의미 있는 접촉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이 진지하게 북-미 대화를 원했다면 연합훈련 축소 카드를 이렇게 사용해선 안 된다. 이란 전쟁으로 전략자산 등 훈련에 동원할 수 있는 전력 상당 부분이 중동에 집중돼 있다. 현실적으로 훈련 축소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북-미 대화 추동의 카드로 활용하려 했다면 치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할 텐데, 그런 과정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던졌다. 정책 결정 구조가 엉망이란 뜻이다.

역으로 김 위원장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한 번 더 만나는 게 ‘마이너스’는 아니다. 국제 무대의 주요 행위자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북-미 정상회담의 변수는 북쪽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다. 회담에 대한 진정성은 있을까? 회담 성사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의제를 준비할 능력은 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공석인 형편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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