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3월25일 워싱턴에서 열린 공화당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REUTERS
2026년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다. 내세운 제일 큰 명분은 이란의 ‘임박한 위협’이었다. 전쟁 4주째, ‘임박’했다던 위협은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파상공세에도 이란은 무너지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페르시아만) 연안 6개국은 이란의 보복공격 표적이 됐다. 세계 원유 및 천연가스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은 사실상 봉쇄됐다. 전쟁의 파장이 지구촌 전역을 옥죄고 있다. 전쟁으로 세계는 좀더 안전해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간 밝힌 침공의 목적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정점으로 한 이란의 이른바 ‘신정체제’를 무너뜨린다. 둘째, 핵과 미사일 능력을 포함한 이란의 일체 군사력을 파괴한다. 셋째, 헤즈볼라(레바논) 등 중동 일대 이란의 ‘대리세력’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 넷째, 혁명수비대 등 군부의 가세 속에 이란 국민의 봉기로 정권교체를 이룬다. 트럼프 대통령은 침공 열흘째인 3월9일엔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빈말에 그쳤다.
알리 하메네이가 표적 암살된 뒤 그의 아들 모즈타바가 이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신정체제는 굳건해 보인다. 이란은 탄도미사일과 무인기를 동원해 걸프 연안국과 이스라엘을 겨냥한 보복공격을 지속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침공에 맞서 혈투를 이어가고 있다. 독재자는 ‘순교자’가 됐고, 이란 국민은 전쟁의 참화에 허덕이고 있다. 이란에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태도를 바꾼 이유일 게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2025년 2월5일 촬영한 오만만과 호르무즈해협 일대 위성사진. AFP 연합뉴스
“지금부터 48시간 안에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으면, 미국은 이란의 발전소와 에너지 시설을 초토화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21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란은 걸프 각국의 에너지 시설은 물론 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담수화 시설까지 보복공격 대상에 포함할 것이라고 맞받았다. 긴장감이 치솟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후통첩’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3월23일 트루스소셜에 이렇게 밝혔다. “지난 이틀 동안 미국과 이란 양국이 중동 지역의 적대행위를 완전하고 전면적인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한 매우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 이란의 발전소와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5일간 유예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
이스라엘 방송 채널12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은 3월24일 파키스탄을 통해 대화를 위한 30일 휴전을 포함한 15개 항목에 이르는 종전 협상안을 이란 쪽에 전달했다. 먼저 미국 쪽은 나탄즈·이스파한·포르도 등 이란의 주요 핵시설을 폐쇄하고, 영구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라고 요구했다. 또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고, 기존에 무기급으로 농축한 우라늄은 전량 국제원자력기구(IAEA) 쪽에 넘기라고 했다. IAEA의 사찰도 수용하라고 했다. 이어 탄도미사일의 사거리와 보유량을 제한하고, 중동 일대 ‘대리세력’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도록 했다. 이번 협상안에는 전쟁으로 봉쇄된 호르무즈해협 재개방 요구도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럴 경우 미국은 이란에 부과한 모든 제재를 풀고, 부셰르 발전소 등 이란의 민간용 원자력 이용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쪽 요구사항은 2월28일 개전 직전까지 오만의 중재로 진행된 협상에서 사실상 합의에 이른 내용이 대부분이다. 당시 협상에서 이란 쪽은 무기급 핵물질을 절대 보유하지 않고, 기존에 무기급으로 농축한 우라늄은 농도를 낮춰 핵발전용 연료로 쓰겠다고 했다. IAEA의 포괄적인 사찰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침공의 명분 가운데 하나였던 이란의 ‘핵위협’은 협상으로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전쟁 전까지 세계 각국의 상선과 유조선은 평화롭게 호르무즈해협을 오갔다. 그러니 미국은 전쟁으로 무엇을 얻은 건가?
“파키스탄이 전달한 미국의 협상안을 거부한다. 종전 시점과 조건은 이란이 결정할 것이다.” 이란 관영매체들은 3월25일 익명의 고위 당국자 말을 따 일제히 이렇게 전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도 “고위층에 미국의 협상안을 전달했다. 지금으로선 전쟁을 중단할 뜻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아라그치 장관은 3월18일 알자지라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란을 포함한 중동 전역에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전쟁 피해 배상을 협상의 양대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엄청난 승리’를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2026년 3월2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반전 집회에 참석한 여성이 국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REUTERS
“이란도 지금 협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두려움 탓에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란 국민이, 또 미국이 자신들을 죽일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25일 워싱턴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나 평화를 선호한다. 더 이상 죽음과 파괴가 지속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란이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미 군사적으로 패배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게 이란을 타격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빈말하지 않는다. 지옥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이란이 또다시 오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 대규모 지상군 병력이 이란 주변으로 집결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은 3월24일 “이미 중동으로 향하고 있는 2개 해병원정대 병력 약 5천 명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육군 82공수사단 병력 약 2천 명을 추가 투입하도록 명했다”고 전했다. 이 정도 병력으론 이란을 상대로 전면적인 지상전을 펼칠 수 없다. 미국 안팎에선 이란 원유 수출의 심장부인 하르그섬 장악 시나리오가 흘러나온다. 이를 통해 이란에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강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르그섬 장악은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하르그섬은 이란 본토에서 불과 25㎞ 남짓 떨어져 있다. 이란군이 쉽게 공격을 집중할 수 있다. 언제까지 점령할 텐가? 투입된 병력의 식량과 탄약 등 병참은 어쩔 텐가? 미국이 협상 상대로 지목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마즐리스) 의장은 3월25일 “적들이 하르그섬을 점령하면 주변국의 주요 기반 시설을 초토화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침공에 앞서 이란은 여러 차례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걸프 각국에 대한 보복공격을 경고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어이 전쟁을 선택했다. 협상을 원한다며 다시 위협이다. 하르그섬 장악은 침공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발목을 묶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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