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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가 올라갈 때 골목은 사라진다

동국대 언론사준비반 학생이 만난 세운2구역 상인들…개발이익과 공동체 해체 사이 복잡한 속내
등록 2026-03-26 21:06 수정 2026-03-31 16:59

서울 종로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동국대와 도보로 10분 남짓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 진행된 재개발을 꾸준히 지켜본 동국대 언론사준비반 학생 세 명(이수안, 조영은, 장한결)은 종묘 앞 세운4구역의 토지 관계를 파헤친 한겨레21의 기사(제1590호 표지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유사한 방법으로 세운2구역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현장에서 만난 여러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과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해 찾아낸 토지 매매 및 소유 현황을 기사로 엮어 한겨레21에 보내왔다. -편집자 주

 

세운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서울 종로구 센트럴관광호텔 외벽에 설치한 펼침막. 이수안 제공

세운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서울 종로구 센트럴관광호텔 외벽에 설치한 펼침막. 이수안 제공


세운지구 2구역(세운2구역)은 크게 8곳으로 구분된 세운지구에서 재개발 삽을 뜨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나머지 7곳(세운 3, 4, 5, 6-1, 6-2, 6-3, 6-4구역)은 철거 및 이주를 마쳤거나, 착공에 들어갔다. 세운4구역의 경우 특정 건설사가 용적률 상향(660%→1094%)에 따른 개발이익을 독식한다는 한겨레21 보도(제1590호 표지이야기)가 나오면서 착공 직전 개발이 멈췄지만, 나머지 구역의 개발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한때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나왔던 세운지구는 1980년대까지 전자·금속 분야가 밀집된 산업 생태계를 유지했지만, 강남 개발과 용산 전자상가 조성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뒤 도시 재생(보전)과 재개발 사이를 표류하다가 202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취임한 뒤 마천루로 탈바꿈하기 위한 재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그런데 그간 재개발 열풍에서 한발 비켜나 있던 세운2구역도 최근 꿈틀대고 있다. 정비구역 지정 뒤 20년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2025년 7월 토지 소유자를 중심으로 여러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설립됐다. 다만 세운2구역도 4구역과 같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데다, 세운지구 다른 구역 재개발로 인해 떠밀려온 상인들의 마지막 정착지라는 점이 재개발에서 주요 고려 요소로 떠올랐다. 이 구역은 서울의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겨레21은 동국대 언론사준비반 세 명(이수안, 조영은, 장한결)의 취재를 기반으로 세운2구역의 재개발을 바라보는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속내를 살펴봤다. 세 사람은 2025년 12월부터 2026년 2월 사이 세 차례에 걸쳐 세운2구역의 골목 구석구석을 돌며 영세상인 18명, 토지 소유주, 재개발 추진위원회를 직접 만났다.

 

떠밀려온 사람들

 

서울 종로구 세운2구역의 한 골목에 전자 금속 부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이수안 제공

서울 종로구 세운2구역의 한 골목에 전자 금속 부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이수안 제공


성인 두 명이 지나가기에도 빠듯한 세운2구역의 좁은 골목에는 햇살 한 줌도 귀하다. 일렬로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이 너도나도 입구에 가림막(햇빛 또는 비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하는 덮개)을 설치한 탓에 대낮에도 어스름한 곳이 많다. 변색된 보도블록, 녹슨 간판들이 개발이 멈춘 지난 2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곳의 상인들은 다른 세운지구가 재개발되면서 “그나마 상권이 보존된 장소”인 세운2구역으로 떠밀리듯 옮겨왔다. 전기·전자 업체들이 모인 골목에서 만난 ‘신성전기’ 대표 김무환씨는 6년 전 세운2구역으로 이주했다. 그는 20년간 세운3구역(입정동)에서 전기부속품을 팔다가 재개발로 인해 서둘러 세운2구역으로 이사했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생존 전략이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근처 거래처와 물건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떠나면 물류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신성전기로부터 도보 2분 거리에 있는 ‘고려전기’ 대표 ㄱ씨 역시 청계천을 끼고 있는 수표동이 재개발되면서 세운2구역에 터를 잡았다. ㄱ씨는 “거래처가 이 일대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수표동 근처에 머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빈자리를 찾아 급하게 세운2구역에 들어왔다”고 돌아봤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가게를 비워야 하는 상인들은 이주비를 포함한 여러 금전적인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천지음향’ 대표 김아무개씨는 “공식적인 보상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해” 보상을 놓친 사례에 해당한다. 세운4구역에서 30년간 음향기기를 제작했던 김씨는 “나중에 보상 안내를 주변에서 어설프게 듣고 뒤늦게 찾아갔지만, 이미 신청 시기를 놓쳐 이사 비용만 받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상인을 여럿 봤다”던 그는 새 임대인으로부터 ‘재개발 진행시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세운2구역에 터를 잡았다.

세운2구역 상인들은 재개발에 따른 보상보다는 되도록 이 구역에 오랜 기간 머물며 장사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명판 제작업자 양아무개씨는 “애들을 다 키울 때까지만이라도 재개발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운4구역에서 34년 동안 오디오 수리를 하다 2구역에 온 ‘대륙전자’ 성아무개씨도 “일본도 지저분하더라도 전자상가가 그대로 있다”며 “세운2구역은 한국의 최초 전자상가라고 해서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오세훈의 전략, 움직이는 필지

 

서울 종로구 세운2구역 내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이 서로 맞닿은 채 이어져 있다. 이수안 제공

서울 종로구 세운2구역 내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이 서로 맞닿은 채 이어져 있다. 이수안 제공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선은 낙후된 시설로 인한 안전 문제로 ‘재개발은 피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조성돼 있다. 세운2구역은 세운지구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동시에 노후 건축물이 가장 많아 화재 등 여러 사고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운지구 내 노후 건축물(30년 이상 된 건물)은 97%이고, 붕괴와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 비중도 57%에 이른다. 전체 도로 중 소방차 진입에 필요한 최소 요건인 ‘폭 6m’가 안 되는 도로도 65%다.

2025년 1월5일 세운2구역 공구상가에서 불이 나 근처 호텔 투숙객 등 60여 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지금도 화재가 발생했던 인근에는 골목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화학용품을 파는 가게가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거리에는 화학약품 냄새와 함께 매캐한 탄내가 코끝을 찌른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페인트가 갈라진 외벽에는 당시 화재로 인한 그을음이 아직 남아 있다.

토지 소유주들도 재개발이 장기간 표류한 상황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세운2구역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만난 60대 ㄴ씨는 “재개발 지연이 장기화하면서 피해가 심각해 땅을 처분하려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찾았다”고 했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실험도구 제작업을 해왔다는 그는 “건물 내부가 완전히 낡아 있다. 화장실도 없고, 비가 오면 와이파이까지 끊긴다. 비가 새는데도 수리 허가조차 나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세운 상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종묘 입구. 이수안 제공

세운 상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종묘 입구. 이수안 제공


세운2구역과 4구역이 다른 구역에 견줘 재개발이 늦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종묘를 마주하고 있어 다른 구역(1천% 이상)에 견줘 낮은 용적률(600% 내외)을 적용받았고, 시행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참여를 주저하면서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4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세운지구 용적률 규제를 완화해주는 대가로 사업지로부터 기부받은 땅에 녹지·공원을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2025년 10월30일 서울시가 세운2구역 바로 옆 4구역 용적률을 1094%로 올린다고 고시하자, 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에서는 “4구역이 개발되면 2구역도 된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오 시장의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은 세운2구역 토지 매매에 큰 영향을 끼쳤다. 2구역 내 353개 필지의 등기부등본을 모두 떼어 전수조사해보니, 첫 매매가 이뤄진 1920년부터 2025년까지 세운2구역에서 전체 매매 건(313건) 중 오 시장 재취임(2021년) 뒤 체결된 매매 건수는 65건으로 약 20%였다. 오 시장 취임을 기점으로 세운2구역 내 재개발 차익을 노린 개인과 법인의 매수세가 집중된 것이다. 세운2구역의 한 재개발 추진위원회 관계자 ㄷ씨는 “세운4구역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2구역 투자를 결정하려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누구의 이익이고, 누가 떠나는가

 

세운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의 사무실에 걸린 재개발 조감도. 이수안 제공

세운2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의 사무실에 걸린 재개발 조감도. 이수안 제공


세운4구역과 2구역은 시행 주체와 사업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세운4구역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단독 시행자로 지정돼 재개발을 추진하고, 세운2구역은 토지 소유주를 중심으로 한 민간 주도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두 구역의 재개발 모두 종묘의 경관을 해치리라는 우려가 있고, 재개발하면 원주민 공동체가 해체된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세운2구역의 경우 산업 생태계가 살아 있고 세운지구 70년의 역사도 고스란히 품고 있어 4구역과는 다른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26년 3월25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운2구역과 4구역의 초고밀 개발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윤은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부장은 한겨레21과 만나 “공공이 완화해준 용적률과 각종 특례로 막대한 개발이익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익 귀속 구조 및 공공 환수 방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며 “재개발에 따른 부담은 문화유산 경관 훼손과 생활환경 악화, 공동체 해체라는 형태로 시민 전체와 기존 주민 상인이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종묘 인접 지역의 초고층·초고밀 개발 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사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지욱 전북대 교수(도시공학)는 “서울시는 원주민의 이익이나 손실에는 큰 관심이 없다”며 “만약 이들을 보호하려고 생각했다면, 산업 생태계를 살릴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상인들을 위한 통합이주 같은 대비책을 마련했을 텐데 그런 게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개발이익으로 새로 생긴 건물의 분양가를 낮춰 원주민이 정착할 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서울시는 공공임대 상가를 조성해 임차인을 보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세운활성화계획팀 관계자는 “(재개발되면) 임대료가 오르기 때문에 공공임대 상가를 추진할 계획이다. 공공임대 상가의 임대료는 시중 상가 임대료의 70% 수준으로 공급하려 한다”며 “(이주해야 하는 상인들은) 대체 상가로 일단 이주한 다음 세운2구역이 통합 개발되면 공공임대 상가로 들어가면 된다”고 설명했다.

전기부속품 가게가 입점해있는 세운2구역 골목의 풍경. 이수안 제공

전기부속품 가게가 입점해있는 세운2구역 골목의 풍경. 이수안 제공


 

이수안·조영은·장한결 객원기자,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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