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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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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잊힌 15만 명의 죽음

2년7개월 넘긴 수단 내전, 국제사회는 방관만… 바이든 행정부 수단 특사 “실제 사망자 40만 명 넘을 것”
등록 2025-11-20 21:54 수정 2025-11-23 09:33
2025년 11월16일 수단 북부 알다바에서 신속지원군(RSF)을 피해 북다르푸르주 주도 엘파셰르를 떠나온 피란민 여성이 배급받은 식량을 머리에 올린 채 천막 숙소로 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5년 11월16일 수단 북부 알다바에서 신속지원군(RSF)을 피해 북다르푸르주 주도 엘파셰르를 떠나온 피란민 여성이 배급받은 식량을 머리에 올린 채 천막 숙소로 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년7개월을 넘긴 전쟁은 그칠 줄 모른다. 굶주림과 무한 폭력의 살풍경은 갈수록 강도를 더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적어도 1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단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전쟁은 철저히 잊혔고,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난은 애써 가려졌다. 동아프리카의 수단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독재 뒤 내전으로 1200만 명 피란길

“2023년 4월 시작된 수단 내전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수단은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고통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다. 수단 사람들에게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2025년 11월10일 ‘수단 내전, 무관심 속 잊힌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란 제목의 자료를 내어 이렇게 짚었다. 2019년 4월 독재자 오마르 바시르의 30년 철권통치가 무너진 뒤 이어진 혼란 속에 정국을 장악한 군부의 주도권 경쟁이 부른 내전으로 수단 인구 4900만 명 가운데 약 120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란길에 올랐다. 이 가운데 국경 너머 이집트·차드·리비아 등 주변국으로 몸을 피한 난민만 약 410만 명에 이른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2025년 8월30일치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수단 특사를 지낸 톰 페리엘로의 말을 따 “수단 내전의 실제 사망자 규모는 4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수단 내전은 정부군(SAF)과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의 각축전이다. 정부군 수장은 엘리트 군인 출신인 압델 파타 부르한이다. 신속지원군은 바시르 정권이 키운 군벌 출신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가 이끌고 있다.(제1462호 참조) 신속지원군의 전신인 잔자위드 민병대는 수단 서부 다르푸르 학살(2003~2005년) 당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제2의 바시르’를 꿈꿨던 부르한과 다갈로는 민정 이양과 신속지원군의 정부군 편입 시점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 갈라섰다. 내전 발생 초기만 해도 정부군의 우위가 예상됐다. 신속대응군의 병력이 7만여 명에 그친 반면 정부군은 약 22만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전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예멘 내전에서 후티 반군을 지원하며 실전 경험을 쌓은 신속지원군의 전투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수도 하르툼에서 양쪽 간 치열한 교전이 이어지면서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다. 열세에 몰린 정부군은 결국 2023년 8월 하르툼을 버리고 홍해 연안인 북동부 포트수단으로 퇴각했다. 정부군은 2025년 3월에야 하르툼을 탈환했다. 퇴각에 앞서 신속지원군은 정부 청사와 금융기관 등에 불을 지르고, 병원과 학교 등에 포격을 퍼부었다. 수도를 탈환한 정부군은 신속지원군에 ‘부역’한 것으로 의심되는 주민을 상대로 무차별 폭행을 퍼붓거나 아예 살해했다. 아비규환이었다.

“상대 진영 협조 의심만으로도 살해·고문·성폭행”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9월5일 유엔 인권이사회(HRC)에 ‘수단: 전쟁의 참상’이란 제목의 18쪽 분량 보고서를 제출했다. 정부군과 신속지원군이 자행한 폭력과 만행을 증언을 토대로 조사·정리한 자료다. 보고서는 “교전의 양쪽 당사자인 정부군과 신속지원군 모두 민간인과 주요 기반시설을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주요 공격 목표로 삼았다. 감금·살해·강제이주·성폭행이 만연했고, 의료시설·학교·시장·식료품생산시설·발전소는 물론 피란민촌에도 공격을 퍼부었다. 교전에 가담하지 않은 주민들도 상대 진영에 협조했다는 의심만으로 살해·고문·구금·성폭행의 표적이 됐다”고 고발했다.

보고서는 신속지원군이 2024년 5월부터 봉쇄한 채 무차별 공격을 퍼부은 북다르푸르주 주도인 엘파셰르 일대에서 벌어진 사건을 민간인 표적 공격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신속지원군은 엘파셰르는 물론 샤그라·잠잠 등 주변 지역에도 파상공격을 퍼부었다. 보고서는 “봉쇄 이후 엘파셰르 일대에서만 47만여 명이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엘파셰르 남부 잠잠에서 신속지원군의 공격을 피해 이동한 비아랍계 유목민인 자가와족 출신 목격자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신속지원군은 모든 걸 불태웠다. 정부군하고만 싸우겠다고 말했지만, 공동체 전체를 공격했다. 우리가 속한 종족 때문에 우리 모두를 아예 제거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2025년 11월13일 차드로 건너온 수단 피란민이 난민촌에서 물을 얻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5년 11월13일 차드로 건너온 수단 피란민이 난민촌에서 물을 얻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러던 10월26일 신속지원군이 기어이 엘파셰르를 함락했다. 엘파셰르는 다르푸르 지역에서 정부군의 최후 방어선이었다. 엘파셰르에 진입한 신속지원군은 가택 수색을 벌이며 약탈과 만행을 저질렀다. 저항하는 주민은 현장에서 사살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등의 자료를 보면, 엘파셰르 함락 직후 신속지원군은 어린이·여성·노약자를 가리지 않고 줄잡아 2천 명을 ‘처형’ 방식으로 살해했다. 신속지원군은 인근 지역으로 피란길에 오른 주민들까지 추적해 약탈·살해했다. ‘지옥의 문’이 열린 셈이다.

짙어지는 전운 속 500만 명 만성 영양실조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최신 자료를 보면, 수단 인구 약 4940만 명 가운데 43%에 이르는 2120만 명가량이 만성적인 고도 식량 부족 상태다. 어린아이와 여성, 노약자 500여만 명은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다. 특히 교전과 통행 제한 등으로 접근이 어려운 서부 다르푸르와 중남부 코르도판의 20여 개 지역에선 만연한 굶주림과 영양실조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유엔이 식량위기의 심각도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활용하는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특정 지역의 식량 상황을 ‘정상-경고-위기-비상-재앙·기근’ 5단계로 분류한다. 이 기관은 최신 자료에서 “수단 인구 37만5천 명이 5단계(기근)에 직면했고, 630만 명 가량은 4단계(비상)에 진입한 상태”라며 “전쟁이 지속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는 신속지원군의 엘파셰르 장악 이후 새로 피란길에 오른 주민이 7만1천여 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11월3일 “엘파셰르를 함락한 신속지원군 수장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가 엘오베이드 탈환을 위해 병력을 대거 현지로 보냈다”고 보도했다. 북코르도판주 주도인 엘오베이드는 수도 하르툼과 다르푸르 지역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수단 전역에서 전운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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