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18일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젠제트 시위’가 열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젠제트(Gen Z·제트세대) 시위’가 동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까지 번졌다. 권좌를 지키기 위해 의회 해산령까지 내렸던 대통령은 결국 탄핵돼 줄행랑을 쳤다. 막후에서 권력을 주물러온 군부가 이번엔 전면에 나섰다. 세월을 거슬러 되풀이된 희비극이다.
2025년 10월17일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고등헌법재판소에서 과도정부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군복 대신 말쑥한 양복으로 갈아입은 미카엘 란드리아니리나 대령은 “대통령의 책무를 완전하고 정당하게 이행하겠다. 국가 통합과 인권 수호·강화를 위해 대통령에게 위임된 권력을 행사하고 모든 힘을 쏟겠다고 맹세한다”고 말했다. 10월14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직후 그는 의회, 선거관리위원회, 법원 등 국가기관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그는 “선거를 통한 민정 이양을 위해선 최소 2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 무슨 속셈인가?
란드리아니리나 신임 대통령은 마다가스카르 군부의 정점으로 통하는 ‘캡사트’(CAPSAT) 부대장을 지냈다. 캡사트는 마다가스카르 군의 병참과 급여·인사권까지 거머쥔 막강한 조직으로 이른바 ‘킹메이커’로 통한다. 이번 쿠데타로 축출된 안드리 라조엘리나 전 대통령을 권좌에 올린 것도 캡사트였다. 사연을 들여다보자.
1974년 3월 군부 엘리트 가문에서 태어난 라조엘리나 전 대통령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사업 수완을 발휘해 33살이던 2007년 3월 언론사주가 됐다. 같은 해 12월엔 청년층을 중심으로 변화와 개혁을 내걸고 안타나나리보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거칠 것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은 요구르트 사업으로 재벌이 된 마르크 라발로마나나였다. 라조엘리나와 라발로마나나는 묵은 악연이 있다. 2002년 집권한 라발로마나나가 이듬해 라조엘리나가 소유한 광고회사의 운영을 방해하면서 둘 사이 억하심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2006년 재선에 성공한 라발로마나나는 2008년 12월 “공공안전을 해친다”는 이유로 라조엘리나가 소유한 방송사를 폐쇄했다. 해당 방송사가 은퇴한 군부독재자 디디에 라치라카를 인터뷰한 게 명분이었다.

육군 대령 출신인 미카엘 란드리아니리나 마다가스카르 과도정부 대통령이 2025년 10월17일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고등헌법재판소에서 취임식을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그 무렵 라발로마나나 정권은 두 가지 추문에 휩싸였다. 첫째, 한국 기업 대우로지스틱스에 옥수수와 팜유 생산용으로 전체 농경지의 절반을 임대해주기로 비밀협약을 맺었다. 둘째, 6천만달러를 들여 대통령 전용기를 추가로 구매했다가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자금 지원이 끊겼다. 라조엘리나는 곧바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조직하고 라발로마나나 정권 퇴진운동에 들어갔다.
2009년 2월7일 성난 시위대가 대통령궁으로 들이닥쳤다. 라발로마나나는 경호부대에 ‘발포 명령’을 내렸다. 현장에서 31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쳤다. 민심이 등을 돌렸고, 군부와도 틀어졌다. 그해 3월6일 라발로마나나는 라조엘리나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라조엘리나는 프랑스대사관으로 몸을 피했다. 나흘 뒤인 3월10일 군부가 나섰다. “72시간 안에 혼란을 수습하지 않으면, 군부가 개입하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라발로마나나는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투표를 공개 제안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3월16일 그는 내각 총사퇴와 함께 사임했다. 권력을 넘겨받은 군부는 3월18일 라조엘리나를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지명했다. 캡사트가 주도한 ‘연성 쿠데타’였다.
35살 나이에 군부를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된 라조엘리나를 국제사회는 반기지 않았다. 아프리카연합(AU)은 쿠데타를 이유로 마다가스카르의 회원국 지위를 정지시켰다. 최대 공여국인 미국은 라조엘리나 정부를 승인하지 않고, 필수인력을 뺀 대사관 직원 전원을 철수시켰다. 정치적 혼란은 계속됐다. 2010년 11월 개헌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대통령 출마 가능 연령이 40살에서 35살 이상으로 낮춰졌다. 라조엘리나의 출마가 가능해졌다. 대통령 후보는 선거일 이전 6개월 동안 마다가스카르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항도 신설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라발로마나나의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국제사회의 압박은 계속됐다. 결국 2013년 대선을 앞두고 라조엘리나와 라발로마나나는 상호 불출마에 합의했다. 그해 12월 치른 대선에선 라조엘리나가 지원한 헤리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가 당선됐다. 라조엘리나는 총리직을 원했지만, 새 정부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2014년 1월 과도정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라조엘리나는 2018년에 가서야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라발로마나나를 누르고 5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2023년 부정선거 논란 속에 재선에 성공했다.

2025년 10월17일 육군 대령 출신인 미카엘 란드리아니리나의 과도정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마다가스카르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고등헌법재판소 앞에서 중무장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7월 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젠제트 시위로 셰이크 하시나 총리 정부가 무너졌다. 2025년 9월8~9일 네팔에서 벌어진 젠제트 시위로 샤르마 올리 총리 정부가 무너졌다. 9월25일 젠제트 시위의 열기가 마다가스카르로 옮겨갔다. 툭하면 수도와 전기가 끊기는데 부패한 정치권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폭발한 청년층의 분노에 라조엘리나는 즉각 에너지부 장관을 해임했다.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9월29일 라조엘리나는 내각 총사퇴 카드를 내밀었다. 유혈 진압으로 최소 22명의 시위대가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친 뒤다. 시위는 이어졌다. 혼란은 가중됐다. “ 대통령의 발포 명령을 따르지 말라. ” 캡사트가 움직였다. 라조엘리나가 재선 뒤 캡사트에 ‘ 자기 사람 ’ 을 심으려 하면서 관계가 틀어진 터다. 벼랑 끝에 선 라조엘리나는 의회 해산령을 내렸다. 탄핵을 피하기 위해서다.
10월14일 탄핵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전체 161석 가운데 여당이 84석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찬성표가 130표나 나왔다. 라조엘리나는 아랍에미리트로 도피했다. 2009년 쿠데타를 재연시켜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이번엔 꼭두각시를 내세우지 않았다. 캡사트 부대장 란드리아니리나는 스스로 권좌에 올랐다. 마다가스카르 젠제트의 분노는 그칠 줄 모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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