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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역에 ‘머스크주의보’…극우화 기세에 돈 정치 가속 페달 밟나

조기 총선 겨냥해 극우정당 노골적 지지… 이탈리아엔 15억유로 통신망 계약 추진
등록 2025-01-11 16:01 수정 2025-01-13 10:43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과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1월19일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의 스페이스엑스 발사장에서 로켓 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과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1월19일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의 스페이스엑스 발사장에서 로켓 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새해를 맞은 유럽 정치권이 떠들썩하다. 미국산 금권정치가 유럽으로 ‘수출’될 기세여서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주이자 ‘세계 1위 자산가’인 일론 머스크가 논란의 맨 앞에 섰다. 2024년 미국 대선 기간에 무려 2억달러(약 2900억원)를 선거자금으로 쏟아부은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자 최측근으로 떠올랐다. 이를 발판 삼아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른바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게 됐다. 돈으로 권력을 산 게다. 유럽에서 머스크는 대체 뭘 하고 있나?

유럽 정상들의 반발

“‘독일을 위한 대안’(AfD)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 머스크는 2024년 12월20일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사민-녹색-자민당 등 이른바 ‘신호등 연정’이 붕괴한 독일에선 2025년 2월23일 조기 총선이 치러진다. 알리스 바이델 AfD 당대표는 곧바로 반색했다. 그는 엑스에 쓴 글에서 “당신(머스크) 말이 완벽하게 옳다”며 “사회주의자 (앙겔라) 메르켈이 우리 나라를 망쳤다. ‘소비에트’ 유럽연합(EU)이 독일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6년여 집권 기간 동안 인권과 복지를 중시했던 메르켈 전 총리는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CDU) 출신이다. AfD는 독일의 유럽연합 탈퇴(덱시트)를 주장한다.

“AfD는 독일을 위한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다.” 머스크는 12월28일 독일 유력 주간지 벨트암존타크에 기고한 글에서 다시 한번 AfD 지지 선언을 내놨다. 이 매체의 오피니언 부장은 머스크의 글이 실린 것에 항의해 사직했다. 머스크는 “독일에 막대한 투자를 했으니, 나도 독일 사회에 대한 발언권이 있다”고 강변했다. 테슬라의 유럽 생산 거점인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기가팩토리는 2022년 3월 가동에 들어갔다. 머스크는 “독일 경제문화가 무너지기 직전이다. 기존 정당은 실패했다. AfD는 주류 정당한테서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수많은 독일인이 공감할 정치적 현실주의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머스크의 잇단 ‘선거개입’ 발언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2024년 12월3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독일의 나아갈 길은 독일 시민이 결정한다. 거대 소셜미디어 소유주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5년 1월6일 엘리제궁에서 열린 행사에서 “1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소유주가 국제적인 반동주의 진영을 지지하며, 독일 같은 나라의 선거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같은 날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도 현지 공영방송(NRK)과 한 인터뷰에서 “막강한 소셜미디어 접근권과 엄청난 재력을 쌓은 사람이 다른 나라 내정에 이 정도로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민주국가, 동맹국 간 관계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23년 12월1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극우파 이탈리아형제당 주최 행사에서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3년 12월1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극우파 이탈리아형제당 주최 행사에서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연설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대응 나선 EU, 트럼프 정부와 충돌 모양새

머스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바이델 AfD 당대표와 엑스에서 1월9일 저녁 7시(독일 시각) 생중계 토론회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개적 지지선언에 이어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AfD 쪽은 환호했다. 파장은 독일 정치권을 넘어 유럽연합까지 번져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1월7일 “머스크의 선거개입 사태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이 법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독일 조기 총선 과정에서 머스크가 극우파 선거운동을 위해 엑스를 불공정하게 활용하는지 여부를 따져볼 것”이라고 전했다.

법적 근거가 있다. 유럽연합이 2020년 12월15일 온라인 불법 콘텐츠 삭제, 이용자 기본권 보호, 사업자 책임 조정 등을 뼈대로 만든 디지털서비스법(DSA)이다. 법 제2조는 ‘불법 콘텐츠’를 “유럽연합 또는 회원국의 법을 준수하지 않은 모든 정보”로 규정했다. 법 제58조는 “집행위원회는 대규모 온라인 플랫폼이 본 규칙의 관련 조항, 임시 조치 명령, 구속력 있는 시정안 중 하나 이상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규정 미준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어 제59조는 “제58조에 따른 규정 미준수 결정시 (해당 기업이) 전년도 전세계에서 올린 매출액의 6% 이하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머스크가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일원이란 점이다. 폴리티코는 유럽의회 관계자의 말을 따 “머스크에 대한 디지털서비스법 위반 여부 조사 착수나 벌금 부과는 유럽연합과 미국 정부가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며 “기술적 증거만큼이나 정치적 의지가 필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독일뿐이 아니다. 머스크는 노동당 소속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연일 직격하며, 극우파인 개혁당을 적극 두둔하고 있다. 그는 극우파 이탈리아형제당을 이끌고 2022년 총선에서 집권한 이후 일약 유럽 극우진영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극우의 기세가 강해지는 유럽 전역에 ‘머스크의 친구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는 뭘 노리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2025년 1월4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회담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2025년 1월4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회담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미국 파시스트에게 유럽 안보 맡긴 꼴”

멜로니 총리는 1월4일 미국을 깜짝 방문했다.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그는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이틀 뒤인 1월6일 머스크는 엑스에 “이탈리아에 가장 안전한 첨단 통신망을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썼다. 블룸버그 통신은 같은 날 “머스크가 소유한 스페이스엑스의 위성통신 자회사 스타링크와 이탈리아 정부 간 15억유로(약 2조2500억원) 규모의 정부 보안통신망 계약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며 “계약기간은 5년이며, 이미 이탈리아 정보보안국과 국방부가 스타링크 위성체계 사용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스타링크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106억유로의 예산을 투입해 2030년까지 사이버 보안위성 네트워크로 개발 중인 ‘아이리스2’ 프로젝트와 엇비슷한 위성통신 체계다. 독일 녹색당 소속인 알렉산드라 게제 유럽의회 의원은 1월6일 소셜미디어 블루에 “이탈리아 정부와 국방부, 군당국의 통신망을 파시스트의 원형 격인 자에게 내맡기는 꼴”이라며 “유럽의 안보가 위태롭다”고 썼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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