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27일 낮 12시께 탁신 친나왓 전 타이 총리가 탄 자가용 비행기가 치앙라이 매팔루앙 공항에 착륙했다. 도착이 2시간여 지연됐지만, 지지자 500여 명이 공항에서 열광적으로 그를 환영했다. 타이 일간 네이션은 “탁신 전 총리가 수재민 지원을 위해 치앙라이를 방문했으며, 현지 지역구 의원들이 공항에서 그를 영접했다.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내각 구성이 안 돼) 아직 공식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집권 프어타이당 쪽에서 탁신 전 총리에게 수해를 입은 지역민을 위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전했다. 누가 타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시켰다.
타이 북부 치앙라이는 고향인 치앙마이와 함께 탁신 전 총리의 정치적 근거지였다. 통신 재벌 출신인 그가 2001년 1월 총선에서 창당한 타이락타이당이 친서민 정책을 내세워 첫 집권에 성공했을 때도, 2005년 2월 총선과 2006년 6월 조기총선 때도 타이 북부는 ‘탁신의 텃밭’이었다. 2006년 9월 군사 쿠데타로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출국했던 탁신 전 총리가 귀국길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듬해인 2007년 12월 총선에서 그의 지지세력 연대체인 ‘국민의 힘’이 다시 제1당을 차지했다. 이후 타이에선 친왕실·반탁신 성향인 ‘국민민주개혁위원회’(PDRC·이른바 노란 셔츠)와 친탁신·반군부 세력인 ‘반독재민주연합’(UDD·이른바 빨간 셔츠)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8월27일 탁신 전 총리를 맞이한 치앙라이 수해지역 주민들은 하나같이 빨간 셔츠를 입고 있었다.
쿠데타 뒤 외국을 떠돌던 탁신 전 총리는 2008년 2월 잠시 귀국했다가, 같은 해 8월 재판을 앞두고 베이징 여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명분으로 다시 출국한 뒤 망명을 선언했다. 그가 국외에 머무는 동안에도 탁신계 정당의 승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2011년 7월 총선에서 탁신의 동생 잉락 친나왓이 이끈 프어타이당이 약 48%의 득표율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잉락은 타이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2013년 11월 탁신 전 총리 사면 논란을 시작으로 ‘노란 셔츠’와 야권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른바 ‘방콕 셧다운’ 시위다. ‘빨간 셔츠’도 몰려나왔다. 이어진 6개월여 혼란은 또 다른 쿠데타의 명분이 됐다. 1932년 6월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쿠데타 이후 12번째 쿠데타가 2014년 5월 벌어졌다. 잉락 정부는 축출됐다.
쿠데타를 주도한 건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이다. 왕비 근위부대 출신 왕당파인 그는 육군 중장 시절인 2006년 탁신 전 총리 축출 쿠데타에도 가담했다. 9년여를 집권한 그는 2023년 5월 총선에서 패배한 뒤 권좌에서 물러났다. 당시 총선에선 타이판 국가보안법으로 불리는 ‘왕실모독법’(형법 제112조) 철폐 등 혁신적인 공약을 내건 전진당이 약 39%의 득표율로 제1당에 올랐다. 패통탄 친나왓이 이끈 프어타이당은 약 29%의 득표율로 제2당으로 밀렸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2023년 총선 때 치앙마이에선 지역구 의원 10명 가운데 7명이, 치앙라이에서 7명 가운데 3명이 전진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2019년 선거 땐 치앙마이에서 지역구 의원 9명 가운데 8명, 치앙라이에선 7명 가운데 5명이 프어타이당 후보였다. 탁신 전 총리의 부재 동안 타이 북부지역 민심은 훨씬 더 개혁적 성향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탁신 전 총리가 딸의 총리 선출 뒤 첫 방문지로 치앙라이를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전진당은 집권하지 못했다. 2006년 쿠데타 뒤에도 탁신계 정당이 선거 때마다 승리하자, 군부는 2014년 쿠데타 이후 탁신계 정당의 선거를 통한 집권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기로 했다. 직접투표로 뽑힌 하원의원(500명) 외에 군부가 지명한 상원의원(250명)도 총리 선출 표결에 참여하는 쪽으로 2017년 헌법을 바꿨다. 2023년 7월 실시된 총리 선출 투표에서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는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전진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려 했던 프어타이당은 곧바로 군부세력과 손잡고 정부 구성에 나섰다. 두 차례나 쿠데타로 권좌에서 쫓겨났던 친나왓 가문에서 세 번째 총리가 나온 배경이다.
2023년 8월22일 타이 의회는 부동산 재벌인 프어타이당 소속 세타 타위신을 총리로 선출했다. 이날 타이 대법원은 부패 등의 혐의를 인정해 탁신 전 총리에게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같은 날 오후 탁신 전 총리가 15년여 망명 생활을 접고 자가용 비행기 편으로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불과 13시간여 만에 가슴 통증 등을 호소해 방콕 시내 경찰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가 귀빈실에 입원했다는 입소문이 곧바로 돌기 시작했다. 2023년 9월 마하 와찌랄롱꼰(라마 10세) 타이 국왕은 탁신 전 총리의 형량을 1년으로 감형했다.
감형은 가석방으로 이어졌다. 2024년 2월 탁신 전 총리가 경찰종합병원에서 퇴원했다. 쿠데타 세력과 손을 잡은 직후 ‘귀국-감형-가석방’까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타이 헌법재판소는 8월14일 뇌물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부패 인사를 장관에 임명한 것은 윤리규정 위반이라며 세타 총리 해임을 결정했다. 8월16일 의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패통탄은 다음날 바로 탁신 전 총리를 사면했다. 그의 귀국 1년 남짓 만의 일이다.
가석방 뒤 탁신 전 총리가 맨 먼저 찾은 곳은 고향 치앙마이다. 가석방 상태에선 방콕 바깥을 출입할 수 없다. 그는 친지 방문 등을 목적으로 타이 법무부에 치앙마이 방문을 신청해 허가를 받았다. 18년여 만의 귀향이었다. 3월14일 치앙마이에서 손에 빨간색 장미꽃을 든 지지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목 보호대를 두른 탁신 전 총리를 맞이했다. 입은 셔츠는 흰색이었다.
이튿날인 3월15일 탁신 전 총리 일행이 탄 차량이 지나가는 길목인 치앙마이대학 정문 앞에서 옛 친탁신계 인사들이 시위에 나섰다. 시위대는 빨간색 관과 2010년 반군부 시위 도중 숨진 친탁신계 인사 53명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한 참석자는 경제 전문매체 닛케이 아시아에 이렇게 말했다. “탁신 전 총리는 시위대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관심이 없고, 죽어간 시위대가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나설 생각도 전혀 없는 것 같다. 탁신 전 총리에게 저들의 죽음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건가.” 달라져 돌아온 탁신 전 총리에게, 달라진 타이가 묻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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