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바이든, ‘트럼프 당선’ 엑스맨 될까

팽팽했던 판세, 첫 TV 토론 망친 바이든 여론조사 결과 미세하지만 트럼프에게 기울어
등록 2024-07-05 10:07 수정 2024-07-06 06:05
2024년 6월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대선 후보 토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6월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대선 후보 토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6월27일(현지시각) 열린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81)은 ‘고령 리스크’를 불식하기는커녕 되레 증폭했다. 7월1일 연방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 미국’ 사건 판결에서 대통령의 ‘공적 업무 수행’과 관련해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인정했다. 두 사건 모두 ‘트럼프 집권 2기’에 대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민주당 내부에선 ‘후보 교체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11월 대선까지 넉 달여, 미국 정치권이 격랑으로 빨려들고 있다.

“우리가 느낀 건 충격 아니라 고통”

“(오늘 토론을) 분석하자면, ‘노인과 사기꾼’이라고 하겠다. 정치평론가답게 해설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진심을 말하고 싶다. 바이든 대통령은 좋은 사람이고, 미국을 사랑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밤 그는 국민과 지지층의 믿음을 회복하기 위한 시험을 치렀고, 통과하지 못했다. 그가 ‘다른 경로’를 고민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서 녹색 일자리 업무를 총괄했던 진보적 시민운동가 겸 정치평론가 밴 존스는 6월27일 밤 <시엔엔>(CNN)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8)과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토론이 끝난 직후였다. 그는 “아직 전당대회는 한참 남았고, 바이든 대통령이 허락한다면 민주당이 다른 길로 나아갈 방법을 찾을 시간이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한테 이런 걸 바라지 않았고, 그 때문에 아마 많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오늘 토론에서 우리가 느낀 건 충격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말했다.

이날 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시엔엔> 주최로 90여 분 진행된 토론은 11월 대선에 앞선 첫 번째 토론이었다. 일정과 규칙 등은 이미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쪽이 주도해 양쪽이 합의했다. 대통령선거토론위원회(CPD) 주최 토론이란 전례를 따르지 않고, <시엔엔>과 <에이비시>(ABC) 방송(9월10일)이 각각 토론을 주최하기로 했다. 한 후보가 발언할 때 다른 후보의 마이크는 끄기로 했다. 2016년과 2020년 대선 토론 때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대방 말을 끊거나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방청객 없이 진행하기로 한 것도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야유를 외치는 등 토론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현실은 의도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2024년 6월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대선 후보 토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4년 6월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대선 후보 토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이날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목소리는 내내 쉰 채였다. 때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고 몇 초 끌기도 했고, 가끔 질문과 동떨어진 대답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짓 주장에도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는 분명 ‘노인’으로 보였다.

트럼프, 거짓 주장 30가지 내놨는데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활기와 여유가 넘쳐 보였다. 큰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으로 끊임없이 거짓 주장을 내놨다. <시엔엔>은 이날 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30가지 내놨다고 집계했다. 이를테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웃음거리로 전락했다”거나, “(바이든 행정부 아래서) 불법 이민자가 사상 유례없이 몰려와 미국인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를 부추겨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도 모를 것”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자신이 제안한 토론 규칙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 때 마이크가 꺼져,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반박할 수 없었다. 사회자는 토론에 개입하지 않기로 한 규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바로잡지 않고 ‘성실한 중재자’ 역할만 했다. 바이든 대통령 발언 때 마이크가 꺼져 끼어들지 못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토론 예의’를 갖춘 후보로 비쳤다.

판세는 일찌감치 갈렸다. 토론이 끝난 직후 언론을 도배한 ‘재난’ ‘데프콘-1 상황’ 등의 표현이 바이든 대통령의 ‘ 성적’을 말해준다. <시엔엔>은 “바이든 대통령이 첫 한두 가지 질문에 답할 때부터 민주당 지도부에서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란 말이 나왔고, 토론이 끝날 때쯤엔 ‘대체 어떡해야 하느냐’는 탄식이 들렸다”고 전했다 .

‘후보 교체론’이 곧바로 불거졌다. 2020년 대선 때 사설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을 공식 지지했던 <뉴욕타임스>가 맨 앞에 섰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6월27일 신문에 “미국이 처한 위기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의 11월 대선 승리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남는 한 내년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 오늘 밤 토론으로 분명해졌다”고 썼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도 6월28일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면, 평범한 미국인들이 도널드 트럼프는 절대 할 수 없는 일, 곧 자신보다 국가를 우선시했다는 점에 찬사를 보낼 것”이라고 썼다. 신문은 6월29일엔 “바이든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선거운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전방위 압박’인 셈이다.

2024년 6월28일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4년 6월28일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2020년 1월 의회 난입 사건을 선동한 혐의와 관련해 연방대법원이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행한 공적 행위에 대해선 포괄적인 면책특권이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정을 내렸다. 보수파 대법관 6명이 다수 의견을, 진보파 3명이 소수 의견을 냈다. 진보파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해군 특수전부대한테 정적 암살을 지시해도 면책이다. 권력 유지를 위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도 면책이다. 뇌물을 받고 사면해줘도 면책, 면책, 면책”이라며 “이제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됐다”고 성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공적 행위’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더욱 커졌다.

가족회의 결과 ‘사퇴 불가’

커지는 ‘후보 교체론’ 속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토론 직후 “거짓말쟁이와 토론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러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6월28일 선거 유세에서 “6월에 열린 한 차례 토론회로 대선 결과가 확정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 바이든 대통령은 6월30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가족회의를 열어 ‘사퇴 불가’ 를 재확인했다. 여론은 좋지 않다 .

여론조사 분석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토론을 일주일 앞둔 기간(6월19~26일)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0.1~0.4%포인트 차로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토론 당일부터 일주일 사이(6월27일~7월2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0.1~1.6%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토론 뒤 팽팽했던 판세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격전지(스윙스테이트)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네바다·애리조나·조지아 등 7개 주에선 격차가 더욱 뚜렷하다. 정치 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7월2일 집계한 격전 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위스콘신주에서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동률(47.3%)을 기록했을 뿐 나머지 6개 주에선 1.2(미시간)~6.7(노스캐롤라이나)%포인트 뒤졌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은 조사 대상 격전지 가운데 노스캐롤라이나에서만 패했다. 상황이 엄중해졌다.

주말을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보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둘째)이 2024년 7월1일 워싱턴 외곽 육군기지에 도착해 가족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주말을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보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둘째)이 2024년 7월1일 워싱턴 외곽 육군기지에 도착해 가족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후보 교체는 정말 가능할까? 민주당 대선 후보는 당내 예비선거와 당원대회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 3933명과 당 지도부와 선출직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슈퍼 대의원’(당연직) 739명이 전당대회에서 확정한다. 선출직 대의원은 지지를 약속했던 후보를 뽑아야 하지만, 의무 조항은 아니다. 슈퍼 대의원은 ‘재량 투표’를 할 수 있다. 2018년 바뀐 규정에 따라 1차 투표엔 선출직 대의원만 참여하며, 과반(1968표 이상) 득표자가 후보로 확정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2차 때부터 슈퍼 대의원도 투표에 참여해 역시 과반(2258표 이상)을 득표해야 후보로 선출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경선 과정에서 선출직 대의원의 95% 이상을 확보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결심’이 없는 한 대선 후보 교체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8월19~22일 열린다. 하지만 오하이오주에선 각 당 대선 후보를 8월7일 이전까지 확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후보를 확정 지어야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후보 교체 가능 시한이 불과 한 달 남짓 남았다는 뜻이다.

많지 않은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와선 안 된다.” 로이드 도겟 민주당 하원의원이 7월2일 공개 성명을 내어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 현역 의원이 ‘후보 교체론’을 공식화한 것은 도겟 의원이 처음이다. 같은 날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기자들과 만나 “토론 결과를 두고 ‘한 차례 실수로 끝날 일인지 아니면 바이든 대통령의 상태가 이런지’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토론 직후 바이든 대통령을 옹호한 것과 결이 조금 달라졌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민주당 고위 인사의 말을 따 “이번 토론의 유일한 긍정적 측면은 토론이 10월이 아닌 6월에 열렸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많지 않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