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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대담한 범죄’에도 면책특권 줘야 하나

미 연방대법원, 뉴욕주 맨해튼 형사법원 등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심리들 시작
등록 2024-05-03 17:45 수정 2024-05-06 08:25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4월30일 재판을 받기 위해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두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4월30일 재판을 받기 위해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두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과 뉴욕주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심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됐다. 대법원에선 2021년 1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의회 의사당 난입 사건을 부추긴 것 등을 두고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공적 행동’이냐 여부를 다툰다. 맨해튼 형사법원에선 2016년 대선 기간에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인물들에게 줄 입막음용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느냐가 쟁점이다. 팽팽한 접전 양상인 2024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통령직 안정성 중요” 대 “절대적 면책특권은 위험”

대법원은 4월25일 오전 10시께(현지시각)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의 면책특권 주장과 관련해 연방 법무부와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 쪽의 구두변론을 진행했다. 통상 대법원의 구두변론은 1시간 남짓 열리는데, 이날 변론은 2시간40분가량 이어지며 양쪽이 열띤 공방전을 벌였다. 대법원 쪽이 공개한 구두변론 녹취 자료는 색인을 포함해 모두 193쪽에 이른다.

앞서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2021년 1월6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 확정 절차를 밟고 있던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과 관련해, “권력을 유지하기로 결심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다른 6명과 공모해 자신이 패배한 9개 주에서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는 혐의 등으로 2023년 8월1일 기소한 바 있다.

먼저 변론에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 쪽 존 사우어 변호사는 “면책특권 없이는 우리가 아는 대통령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234년여 미국 역사에서 공적 행위로 인해 기소된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만약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내린 논란이 있는 결정 탓에 퇴임 직후 기소돼 재판에 넘겨지고 수감된다면, 과감하고 담대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공적 행위’를 두고 대법관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 진보파인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대통령이 통수권자로서 군에 쿠데타를 지시한다면 이는 ‘공적 행위’에 해당하느냐” “대통령이 적대국에 핵무기 수출을 지시하는 것도 ‘공적 행위’로 볼 수 있으냐”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역시 진보파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도 “형사 책임을 물을 가능성을 배제하면, 향후 대통령들이 재임 중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당한 위험이 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사우어 변호사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설령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공적 행위’를 했다는 점이 입증되더라도, 대통령의 ‘공적 행위’는 광범위한 면책 대상”이라고 맞섰다.

이어 정부 쪽을 대리해 변론에 나선 마이클 드리븐 전 법무부 송무담당 차관보는 “절대적인 면책특권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절대적인 면책특권을 인정한다면 전직 뇌물수수나 반역, 선동, 심지어 살인 등에 대해서도 전직 대통령의 형사 책임을 면제해줘야 한다. 이는 헌법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함구령’ 위반은 벌금 9천달러형 선고

하지만 6 대 3으로 대법원에서 우위를 점한 보수파 대법관들은 ‘대통령직의 안정성’ 쪽에 초점을 맞췄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이번 사건은 대통령직과 대통령직의 미래, 나아가 미국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도 “만약 대통령이 퇴임 뒤 정치적 이유로 형사 기소된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기능을 불안정하게 하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결정은 늦어도 하계 휴회 이전인 6월 말~7월 초 나올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법원이 확정적 결론을 내리지 않고 사건을 원심 재판부로 돌려보내면, 재판 속개를 위한 준비 기간에만 3개월여가 소요된다. 물리적으로 11월 대선 이전에 하급심 재판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

4월22일 시작된 맨해튼 형사법원의 재판은 양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후안 머천 재판장은 4월30일 법원의 ‘함구령’을 위반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벌금 9천달러형을 선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재판에 출석한 증인 등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머천 재판장은 향후 다시 ‘함구령’을 어기면 구금하겠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머천 재판장은 2023년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앨런 와이슬버그에게 탈세와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5개월형을 선고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의 ‘재판 전술’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불리한 여론을 피하기 위해 불륜 관계로 의심되는 여성들에게 줄 입막음용 돈을 조성하기 위해 회계 장부를 조작하는 등 모두 34건의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변호인 쪽은 불륜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 초기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한테서 불리한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타블로이드 신문 <내셔널 인콰이어러> 발행인 출신인 데이비드 페커다. 페커는 4월2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불륜 의혹을 덮기 위해 자신이 직접 의혹 당사자에게 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과 긴밀히 연락을 취했으며, “보스가 입막음용 돈도 갚아줄 것”이란 말을 들었다고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이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코언 증인 채택 막으려 안간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코언은 2016년 대선 선거운동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그는 2018년 12월 선거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징역 3년형을 받았다. 그는 수감되기 전인 2019년 2월27일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인종주의자이자 사기꾼”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코로나19 창궐에 따른 감형으로 2021년 11월 출소한 뒤엔 트럼프 전 대통령 쪽과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이 코언의 증인 채택을 막기 위해 맨해튼 형사법원 재판에서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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